길 잃은 회개, 중용으로의 귀환

by 뉴욕 산재변호사

우리는 살면서 수없이 '회개'를 말하고 듣는다. 종교적인 맥락에서 특히 그러하지만, 일상에서도 잘못을 뉘우칠 때 회개라는 단어를 사용하곤 한다. 그러나 과연 우리는 회개의 참된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을까? 사도 바울이 설파한 회개의 깊은 의미와 유교에서 말하는 중용의 지혜를 함께 살펴보면, 우리가 놓치고 있는 회개의 본질, 즉 삶의 방향을 바로잡는 지혜로운 균형점을 발견할 수 있다.

많은 이들이 회개를 단순히 '잘못을 뉘우치고 용서를 비는 행위'로 생각한다. 눈물을 흘리고 후회하는 감정적 통회, 혹은 다시는 같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겠다는 굳은 다짐 정도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물론 이러한 감정이나 다짐이 회개의 한 부분일 수는 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이 헬라어 **'메타노이아(metanoia)'**를 통해 강조했던 회개는 훨씬 더 근원적이고 총체적인 변화를 의미한다. '메타노이아'는 '생각을 바꾸다', '마음을 고쳐먹다'는 뜻을 지닌다. 이는 특정 행위에 대한 후회를 넘어, 죄를 바라보는 관점과 사고방식 자체가 완전히 달라지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하나님을 등지고 자신의 욕망을 좇던 삶의 방향에서 돌이켜, 하나님을 향하는 근본적인 전환이 바로 바울이 말하는 회개였다. 이는 단순히 어제를 반성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오늘과 내일의 삶을 새롭게 정립하는 방향성을 포함한다.


이러한 바울의 회개 개념은 유교의 중용(中庸) 사상과 놀랍도록 맞닿아 있다. 중용은 단순히 '중간'을 지키는 소극적인 태도가 아니다. **'중(中)'은 치우치거나 지나치거나 모자라지 않는 '정확한 지점'을 의미하고, '용(庸)'은 그 도리를 상황에 흔들리지 않고 '일관되게 유지하는 평상적인 도리'**를 뜻한다. 중용은 극단으로 치닫지 않고 균형을 잡는 지혜, 그리고 그 균형을 꾸준히 실천하는 덕목을 강조한다.


우리가 회개를 '감정적인 후회'나 '일시적인 다짐'으로만 여긴다면, 이는 중용의 '지나침'이나 '모자람'에 해당할 수 있다. 지나치게 감정에만 매몰되어 본질적인 변화를 놓치거나, 너무 모자라게 피상적인 반성으로 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이 말하는 회개는 죄에 대한 '치우치지 않는 정확한 인식'과 '하나님을 향한 삶의 방향으로 변함없이 나아가는 일관성', 즉 중용의 가치를 내포한다. 죄를 과대평가하여 자신을 비하하거나, 반대로 과소평가하여 책임을 회피하는 극단적인 태도를 피하고,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 안에서 죄의 본질을 직시하는 것이 바로 중용적 회개라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회개의 의미를 잘못 생각하고 있다. 회개는 감정의 소용돌이나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다. 그것은 마치 중용의 덕목처럼, 삶의 방향을 올바른 곳으로 전환하고, 그 방향성을 치우치지 않게 꾸준히 지켜나가는 전인적인 변화의 과정이다. 바울의 회개가 그리스도를 통한 근원적인 변화를 말하듯이, 중용은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 속에서도 변치 않는 도리를 찾아 실천하는 지혜를 요구한다.


그러므로 진정한 회개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그것은 과거의 오류에서 배우고, 내면의 균형을 찾아 삶의 방향을 재조정하며, 그 새로운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중용적인 실천이다. 우리는 이제 겉으로 드러나는 죄의 행위뿐 아니라, 죄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과 태도까지도 '메타노이아'하고, 중용의 지혜로 우리의 삶을 끊임없이 다듬어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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