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후, 10년 후, 20년 후, 30년 후를 생각해 보고 나는 어떤 모습일지 기록해 보는 것이다.
꽤나 오래도록 나는 그 로드맵대로 살아보려 했었다. 그러나 그대로 된 것은 없다.
자신의 미래를 상상해 보는 것이 굳이 나쁘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절대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요즘에는 자소서대로 사는 청소년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삶의 다양한 상황을 그렇게 통제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지 확신하기 어렵다.
사는 것이 어떻게 어릴 적 꿈꾸던 꿈쟁이의 기대처럼 되는가 말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안정이 아니라 불안정하고, 결과를 예측할 수 없으며, 원인과 결과가 복잡하게 얽혀있고, 때로는 이것이 정답인지도 확신하기 어려운 시대를 살아간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이런 상황에 저항하려 한다.
단호한 말투로 답을 제시해 주는 사람이 뜬다. 그의 이야기가 정말 그러한가를 고려하지 않는다. 유명인과 달변가를 맹신한다. 변수가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 듯 무한 의존을 보인다. 포괄적으로 던진 말에도 위로를 받는다. 제한적 상황에서 적용되어야 할 말을 모든 상황에 적용하려고 애쓴다.
이제는 정답이라고 말하는 인생의 지혜에 토를 다는 습관이 생긴 듯하다.
인생에 정답이 어디 있나. 그런 속임수로 나의 시야를 시꺼멓게 하지 못하도록 스스로 방어한다.
정답이라는 하나의 길에 내 삶을 쑤셔 넣지 않으려고 한다.
여러 가지 옵션과 다양한 선택지가 있음에도 말해주지 않은 세상의 얕은 침묵을 거부한다.
많은 이들이 말하듯 불안은 극복의 대상이고 정답은 필요조건이었나?
확실하지 않은 삶, 선택한 것이 제대로 작동할지에 대한 불안감이 덮친다.
불안은 불면으로 불면은 무기력으로 확장한다. 모든 것을 놓아 버리고 싶은 순간이 쑤욱 올라온다.
삶의 불안과 동행하는 상상의 삶에 대하여 제대로 알려 주지 않았다.
정답에 기대어 살며 수많은 절망을 맛보는 것이 차라리 익숙하다.
불안을 극복하고 확실한 정답을 추구하는 것을 미덕이라 추켜 세우는 주변의 이야기에 나도 동참해 왔다.
과거 너의 10년 후 20년 후에 대한 답을 정하고 그대로 사는 것이 성공적인 삶이라는 무언의 강요에 속았다.
계획대로 되지 않아도, 불안의 시간을 보내고 있더라도 그것이 괜찮다는 말, 삶이란 불안과 함께 사는 것이라는 지혜를 왜 감추었을까.
중요한 것은 그 계획이라는 것이 한 번도 알려진 적이 없다는 것이다.
선택과 결정의 주체를 혼동하며 무작정 하나님의 계획, 하나님의 정답에 목매달았던 시간이 아쉽다.
불안과 동행하며 기다림과 설렘, 상상과 예기치 못한 기쁨을 누리는 것이 삶이다.
정답을 찾으며 허비한 시간을 만회하고자 상상과 몰입의 시간을 더 많이 가져보려 한다.
중년이 넘어서야 그런 삶을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