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힙합을 즐겨 듣는다. 다른 사람들이 내 이미지를 보고는 매칭이 안된다고 말한다. 내가 성실해 보이는 스타일이라서 그런가? 힙합을 좋아한 지는 꽤 됐다. 입문을 쇼미더머니로 했었는데 그 쇼미더머니가 이제는 낡은 프로가 되어버렸으니.. 그것도 참 웃기다. 뭐든지 그런 것 같다. 대중적인 것부터 조금 더 마니아적인 것으로 취향이 바뀌나 보다. 이제 쇼미더머니 같은 곳에서 나오는 힙합 음악은 크게 와닫지가 않는다.
힙합을 하는 사람 중에서 특출한 음악가들이 있다. 아니 처음에는 다들 그런 마음으로 시작한 듯하다. 그런 음악을 듣고 있으면 느낌이 온다. 사회 규범적으로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방식을 사용하고 있지만 결국 자기를 표현하기 위한 수단인 것이다. 이 분야에서도 최고 평가를 받는 사람들은 단지 자기표현 방식이 대중성도 갖고 있을 뿐이다.
이미지에 맞게 나는 정숙한 유교보이(아저씨)에 가까운 것이 사실이다. 문란하고 과장된 자기표현을 듣고 있으면 낯간지럽고 민망하다. 그러나 거기서 나오는 자유에 대한 갈망, 위선적인 사회 규범들, 솔직한 자기 고백 등의 메시지는 또 다른 감동을 준다. 그런 점에서 힙합은 가장 시적인 음악이 아닐까 싶다.
힙합 음악가들의 행태를 살펴보면 자유분방한 힙합 세계도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이다. 인사이더와 아웃사이더가 존재한다.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서 하나의 세계관을 만드는 사람들과 자기만의 묵묵한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 인사이더든 아웃사이더든 정답은 없다. 신념을 따르고 타협하지 않는다고 해서 무조건적으로 성공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한 명의 천재를 탄생시키기 위해 백명의 영재들이 소리 없이 사라져 간다.타협한 사람들 대부분이 처음에는 음악 하나만을 보고 시작했다. 그러나 타협을 한 사람들은 최고가 되진 못한다.
이런 글을 쓰는 나도 타협이 뭔지는 정확하게 설명할 수 없다. 인사이더라고 타협한 것은 아니고 아웃사이더라고 타협하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다. 아마도 자기만의 길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심지어 타협이 나쁘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삶이 가지는 무게를 전부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인생은
여자 꽁무니를 쫓아가든 자기 창고에 돈다발을 쌓아가든 고고한 척하며 안경알을 추켜세우든 뭐 그리 중요하답니까 자기 좋을 대로 사는 게 정답 아니겠습니까
인생은 결국 자기만의 탑을 짓는 것 세월에 무너져 내릴 탑을 세우느라 남 부러워할 필요도 전전긍긍할 필요도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