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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성윤 Oct 15. 2024

순수함의 양면성


순수함. 어떤 시인은 그것이 시인의 바탕이라고 말한다. 물론 내가 시를 쓰고 있어서 순수한 것은 아니다. 아마 유전적으로 물려받은 듯하다. 우리 외가는 나이에 비해 많이 어려 보이고, 정신도 순수한 면이 있다. 나도 그것을 닮았는지 나이에 비해 많이 순수하고 순진하다. 아직도 나의 정체성은 사회적 평균에 비해 10년 가까이 어리게 느껴진다.


그런데 마음의 순수함이 인식의 순수함까지 보장하지 않는다는 점이 참 힘들다. 모두가 나와 같이 생각하지는 않는다. 내게는 다른 사람들을 조종하려고 하거나 조금 속여먹으려고 하는 면들이 잘 보인다. 착한 마음을 가졌지만 귀찮아하거나 자기 생각만 하는 사람들도 많이 보인다. 현실과 마음속의 열망이 다르게 느껴지니 상처를 많이 받는다.


의도적으로 순수한 척을 하지는 않는. 그러나 순수함이 가져오는 결과들을  많이 경험했기 때문에 이제는 하나의 방어기제로 활용하기도 한다. 착한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순수한 행동을 봤을 때 공격적으로 대하지는 않는다. 이들은 행위가 정당하지않다면 부끄러움을 느낀다. 반면에 못된 사람들은 점점 더 함부로 대한다. 나는 인식까지 순수하지는 않기에 그것을 금방 알아챈다. 세상 사람들은 그래도 착한 사람이 많기 때문에 순수함이 많은 도움을 준다. 못된 사람은 피하면 그만이다. 순수함은 연약한 내게 세상을 살아가기 위한 보호막이 된다.


때로는 결핍과 열등감을 드러낼 때 순수함을 이용할 수도 있다. 못된 사람은 아니지만, 결핍과 열등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그 의도를 감추고 못난 행동을 한다. 무의식이라는 것은 스스로도 잘 모르고 매우 개인적인 것이기 때문에 쉽게 접근할 수 없다. 그럴 때 순수한 질문을 통해 최대한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선에서 그들의 무의식적인 편견들을 건드려 이 사람들의 실제 의도를 파악하고 스스로 잘못을 돌아보게 할 수 있다.


어릴 때는 누구나 순수함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 어른이  되면서 억압에 의해 찢기고 짓밟히면서 순수함은 점점 묽어진다. 나는 다행히도 유전적으로 민감하고, 순수함을 잃지 않으려는 집착 때문에 아직도 그것을 갖고 있으나, 축복이라고 말하기에는 다른 사람들처럼 짓밟힌 채로 가슴 깊은 곳에 숨겨놓은 것이었다. 이제와서는 그게 나만의 무기가 되었지만 어쩌면  세상이라는 게, 물든 채로 살아가는 것이 더 행복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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