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드라마 필동 story
E.F 비 오는 소리
남 어이 좋은 오후
여 지금이 몇 신데 이제 출근하세요? 그리고 뭐. 가 좋아요 비가 이렇게 오는데?
남 ……. 누가 보면 내가 알바고 네가 사장인 줄 알. 겠다.
여 어휴 아침부터 의뢰인이 디자인 시안 달라고 벌써 몇 번이나 전화 왔었다고요.
남 그것 때문에 어제 늦게까지 야근해서 늦은 거. 라고요.
여 그럼 디자인 끝내셨냐고요?
남 ……. 그게 하루 만에 뚝딱 나오냐고요? 잘 알면. 서 그래 너는? 아 진짜 할렐루야다.
여 사장님
남 왜?
여 사무실에서 술 드셨죠? 밤새?
남 아니. 그게 (생각해 보니 화난다) 야. 여기 내 회사야. 내가 네 보스야.
브릿지음악
여(N) 대학 졸업한 지 2년 하고도 4개월이나 지났. 지만, 코로나 이후 신입사원을 모집하는 변변. 한 회사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고, 백수 아닌 백수생활을 이어가던 어느 날. 내 처지. 를 딱하게 여긴 어릴 적 소꿉친구 연주는 사. 촌오빠가 운영하는 작은 인쇄소에 알바자리. 를 소개 해주었다.
친구가 아르바이트하라고 소개해준 곳은 남. 산자락에 위치한 인쇄소였다. 뭐라도 해야겠. 다는 생각에 큰 기대 없이 출근한 첫날, 난 이. 곳이 너무 마음에 들게 되었다. 남산이 훤히 보이는 아름다운 골목, 잘 정리된 거리, 예쁜 카페와 숨은 맛집 식당들. 무엇보다, 필동로 쪽으로 쭉 올라가다 보면 남산공원으로 올라. 가게 되는데 계절마다 바뀌는 풍경이 너무나 아름다운 곳이라 내 우울한 미래에 위로가 돼. 었다. 그렇게 조금씩 정을 붙여가며 근무한 지도 어느새 10개월이 넘어가고 있다.
E.F 비 오는 소리
남 5월에 장마라니? 뭔 비가 이렇게……. 난 비가 너무 싫어
여 모르세요? 우리 사무실 바쁠 때마다 비 온다. 는 사실?
남 정말? 뭐야?……. 에이 됐고, 옆집 백반 집 점심 메뉴가 뭐래?
여 몰라요.
남 아 좀 식당에 물어봐. 맛없으면 비 오는데 칼. 칼한 칼국수 먹으러 가게.
여 뭘 멀리 나가서 먹어요. 비 오는데. 표지디자. 인 얼른 컴펌해주세요. (사이) 얼른요
남 나 참 상전이 따로 없네. 따로 없어.
여(N) 친구 사촌오빠지만 엄연한 사장님이신데 가. 끔 내가 너무 무례하게 구는 거 아닌가 싶을 때가 있다. 가끔 엉뚱한 개그코드에 내가 맞. 장구 쳐주지 않으면 삐치기도 할 만큼 격이 없이 해주시는 덕분에 재미있게 일을 배워가. 고 있었다.
E.F 전화벨
남 나 거래처에서 일 보고 바로 퇴근하니까 시. 간 되면 정리하고 퇴근해
여 내일 늦지 마세요. 마감할 것 많아요. 술 드. 시지 마시고요.
남 내가 뭐랬지? 나는 너의 뭐다?
여 사. 장, 님
남 다시
여 ……. 보. 스
남 그렇췌~ 참 문자로, 링크 하나 보냈으니까 얼른 확인해 끊는다.
E.F 전화기 끊어지는 소리
여 링크?
여(N) 사장님이 보내 준 링크는 디자이너라면 누. 구나 입사를 꿈꾸는 국내 굴지의 디자인 회사에서 3년 만에 새로 신입사원을 모집한. 다는 공고문이었다.
여 ……. 하 놀리시는 건가?
브릿지음악
남 정리해라 퇴근하자.
여 저기 보스 저 월급 잘 못 주신 것 같은데요.
남 왜?
여 더 들어왔어요.
남 적게 들어간 게 문제지. 더 들어간 게 문제야?
여 예?
남 이번 달은 네가 마감 쳐내느라 수고 많이 했어. 인센티브라고나 할까?
여 알바가 인센티브가 어디 있어요?
남 보스마음이다 왜? 앞으로도 더 잘해 알았어? 잔소리 좀 그만하고.
여 고……. 고맙긴 한데……. 그래도 회사형편 빤. 한데 너무 많이 주셨어요.
남 고마우면 이따 퇴근하고 밥 사. 비 오는데 삼. 겹살 어떠니?
E.F 비 오는 소리 삼겹살 구워지는 소리 오버랩
남 역시 밥은 얻어먹는 밥이 최고야
여 자꾸 편하다고 편의점 삼각 김밥, 컵라면 드시. 지 마시고 식사 좀 잘 챙기세요.
남 또 시작했네. 그건 됐고, 놀라지 마시라.
큰 건 하나 수주 했다. 교육청에서 발주 한, 대. 형 인쇄프로젝트 우리가 받았어.
여 어머 정말요?
남 이렇게 오글거리는 말은 원래 내가 못 하는데,
네가 고생한 덕분이야. 내일부터 연주도 나와. 서 일 도우라고 했어. 좀 바빠질 거야. 야근도 수시로 할 테니까 각오해. 지금까지 한 것처럼 잘 부탁한다.
여 …….
남 얘가 불안하게 왜 말이 없어?
여 드릴 말씀이 있어요.
남 왜 또 잔소리하고 싶어서 입이 근질근질해?
여 저……. 합격했어요.
남 무슨 합격? (사이) 설마 너?
여 예
남 정말이니? 축하한다. 축하해
여 미리 말씀드렸어야 하는데…….
남 야 정말 잘됐다.
여 고맙습니다.
남 고마운데 표정이 왜 그래?
여 미안해서요.
남 뭐가 미안해?
여 보스 저 없으면 이것저것 잘 못 챙기시잖아요. 큰 프로젝트 수주도 받으셨는데
남 웃겨? 너 없을 때도 잘 해왔거든.
여 거짓말 마세요.
앞으로 바빠지실 텐데……. 걱정이네요.
제가 가기 전에 야근해서 디자인 초안 다 잡아. 놓고 갈게요.
남 게으르다, 늦게까지 술 먹는다 잔소리할 때는 언제고.. 너 요즘 유행하는 말 몰라?
“자신만 생각해요.”뭐 이런 말 못 들어봤어?
여 뭐래요?
남 걱정 마! 이제 나도 좀 집중해서 해야지
여 사장님
남 보스! 몇 번을 말해? 건배나 해. 오늘은 내가
쏠게. 축하하는 의미로. 뭐 하냐~ 고기 탄다.
여 예 보스!
여(N) 그렇게 고대하던 회사에 취직을 하게 되어서 너무나 기뻐 마음이 얼떨떨했지만, 마냥 기쁜. 척 못했던 건 힘든 시기를 잘 버티게 해 주며 응원해 주었던 보스를 마치 전쟁터에 동료를 놔두고 도망가 버리는 심정인 것 같아 마음이 영 불편했던 것이다.
브릿지음악
여(N) 얼마 뒤 나는 꿈같은 새 직장 생활을 시작했. 고, 새로운 일들과 사람들에 치이면서 바쁘. 게 하루하루를 지내다 보니 어느덧 필동의 예쁜 거리와 아르바이트를 했던 작은 사무. 실, 아담했던 내 자리, 그리고 보스에 대한 기억이 사라져 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큰 비가 예고된 금요일 퇴근 무렵, 서둘러 퇴근을 하는 직원들 속에서 나. 는 갑자기 정겹던 그 골목의 인쇄소가 떠올. 랐고, 보스도 생각이 났다.
나의 발길은 그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늘 다정스럽고 좋았던 골목을 걸으며 행복감에 취해있을 무렵, 다행히 길에서 바라본 사무. 실 창은 불이 켜져 있었다.
E.F 사무실 문 열리는 소리
여(N) 아무도 없는 사무실. 오랜만이지만 낮 익은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책상 위와 탁자에는 여러 서류가 정리 정돈 안 되어 있었고, 겹겹. 이 쌓여있는 컵라면 용기와 종이컵들이 그 어지러운 광경이 나를 반겨주었다. 피식 웃. 음이 났다. 반갑기까지 했으니까. 나는 알바. 생일 때처럼 옷을 걷어 부치고 청소를 하기 시작했다.
E.F 사무실 문 열리는 소리
남 어? 이게 누구야?
여 보스
남 어쩐 일이야? 소식도 없이? 회사 잘렸어?
여 뭐래요? 아니 사무실이 이게 뭐예요. 그때그때 좀 치우시라고 그만큼 말씀을 드려도 아이고 정말 못살아. 연주는 뭐 한데요? 청소도 안하. 고?
남 야 너 오랜만에 만나자마자 바로 잔소리 시작. 이니? 연주는 땡 하면 집에 가기 바빠. 너 만한 아르바이트생도 없더라. 하 그래도 오랜만에 듣는 잔소리가 싫지 않고 반갑네.
근데 너! 이야! 이젠 제법 직장인 같아 보인다. 멋지다.
여 놀리지 마세요. 저녁은요?
남 (손에 든 컵라면 봉지) 편의점에서 이거 사오. 는 길이야.
여 밥 잘 챙겨 드시라니까 정말. 못 살아. 이거 치. 우고 나가요. 제가 저녁 사 드릴게요.
남 우와 그런 말도 할 줄 알아? 진짜 다 컷 네.
여 뭐래 진짜.
여(N) 말은 그렇게 했지만 왠지 기분이 좋았다. 함 께 좁은 사무실을 청소하기 시작했다.투덜 거. 리면서도 열심히 걸레질을 하는 보스의 모습. 이 귀엽기도 하고 짠하기도 하고 그 모습을 보며 웃음이 나왔지만 들키지 않으려고 노력. 했다.
일이 많아져서 조만간 조금 더 큰 사무실로 옮기기로 한 이야기. 직원들을 정식 채용 하겠다는 이야기, 까다로운 거래처 이야기, 인쇄 기계 바꾼 이야기 그리고 새로운 아재개. 그까지 그동안 있었던 이야기를 즐겁게 늘어. 놓는 보스의 말과 웃음이 좋았다.
여 이거 봐요. 얼마나 깨끗해요.
남 아! 내가 그때 링크 안 보냈어야 하는데
여 어머 웃겨! 뭐 그랬음 아직까지 보스 졸병 노릇. 하고 있으라고요? 싫거든요.
남 섭섭하네. 스카우트하려고 했는데 안 되겠다.
여 저 이제 몸값 비쌉니다.
남 (웃음)
여 왜 웃으세요?
남 그냥! 귀여워서.
여 예?
남 (본인이 말하고도 어색하다)
어서 가자. 우리 가던 삼겹살집 오늘도 여전히 늘 맛있겠지?
여 (어색함에) 얼른 가요. 늦게 가면 자리 없어요.
남 그래 나가자. 아! 맞다. 나 우산…….
여 제 거 써요. 같이 쓰고 가면 돼요.
남 ……. 그럼 그럴까? 비 오니까 참 좋다.
여 언제는 비가 그렇게 싫다고 하셨으면서…….
남 그러게 (웃음) 나가자. 우산 줘. 내가 들게
여(N) 우산을 받쳐 든 보스와 함께 걸어 내려가는 동안 필동의 정겨운 골목길은, 떨어지는 빗소. 리로 더욱 운치 있었고, 걷는 발걸음과 장단. 을 맞춘 듯 리드미컬하게 들렸으며, 저 멀리 빗속에 보이는 남산타워의 불빛이 더욱 예쁘. 고 선명해지는 것 같았다.
M. raindrops keep falling on my head
write안건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