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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킨타 Oct 07. 2021

에밀의 책임

근대 초기 자유주의 사상의 영향으로 프랑스 혁명을 비롯한 시민혁명이 봉기되어 봉건제가 붕괴되고 근대국가가 성립하였다. 프랑스혁명의 특징적인 편린을 짜맞추어 보면,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서로 평등하며, 한편으로는 이성적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이기적인 추상적 개인’을 이념적 인간형으로 하여 이를 출발점으로 삼고 있다. 새로운 질서하에서 인간은 자유를 획득하는 대신, 모든 경제관계를 자기 스스로의 책임하에 처리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개인을 보호해주던 공동체라는 울타리가 사라져버렸다. 그러한 공동체 해체를 바탕으로 하여, 18세기 후반 산업혁명의 기치아래 기술혁신과 그에 수반한 사회 경제구조상의 변혁이 일어났다. 더불어 산업자본주의의 절대적 보호라는 당시의 사회적 이데올로기가 구현되었다.       

  봉건적인 구속에서 해방된 개인들은 자신의 경제활동이 보장되기를 희망하였다. 이를 반영하여 자유주의 이데올로기는, 경제적 영역에서 국가가 개인의 자유로운 경제활동의 장을 보장하고, 경제활동을 용이하게 하도록 권력을 행사하고, 그 이상으로 개인의 자유를 제한해서는 안 된다는 이념으로 나타났다. 자유주의의 결실로 개인들 사이의 사적인 관계에 관하여 규칙을 정하는 것이 제도화되었다. 그 결과 운동선수들이 해당 운동경기의 규칙을 준수하면서 자유로이 경기에 임할 수 있는 것처럼, 거래에 임하는 당사자는 법과 제도의 테두리 내에서 자유로이 재화 또는 용역의 거래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근대의 공교육(public education)은 위의 자본주의 제도에 기여하도록 짜여져 있었다. 전체 사회에 조화롭게 기여할 예비 사회인을 양성하는 것으로 목표로 하여 평균적인 교육내용을 실시하였다. 즉 위의 운동선수를 양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그들이 공동체에의 소명을 다할 수 있도록 교육하였다. 이러한 시스템에서는 피교육생의 개성에 맞춘 개별화된 교육을 당초 염두에 두지 않았고, 학습이 지진한 학생들에게 조차도 특별학급제도를 활용하여 학습능력의 차이를 보완할 수 있다고 이해하였다.     

  시공을 초월하여 현재를 넘어서서 미래를 앞당기려는 조급한 열정을 갖춘 선도적 부류에 속하는 소수는 늘 있어 왔다. 공교육의 이념과 가치를 앞장서서 실현하는 관계자에 대하여 교육정책은 차갑기 그지없었다. 공교육 일변도의 정책에 정작 교육 관계자는 애처롭기만 하였다. 이 또한 그들만의 리그였다. 매년 6만 명이 넘게 양산되는 학교 부적응 학생과 그들 부모를 포용하고 부적응 학생을 교육하는 시설은 헌법상 기본권을 보장하는 ‘제도적 보장’이고, 그들에게는 이미 교육 너머 생존의 문제로 다가 와 있다. 이 와중에 학력인구 절벽을 맞이하고 있는 대학관계자는 국민을 상대로 겁박하고 살려달라고 애원하고 있다. 에밀이 작금의 한국에 온다면 뭐라고 질타할 것인지 심히 궁금하다. 개인적으로는 에밀에게 무한 책임을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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