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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로운백년 Sep 18. 2023

체리 맛 결핍을 맛보았다

체리필터


체리 맛 결핍을 맛보았다

체리필터




체리필터 공연에 다녀왔다. 작년 펜타포트, 어스어스 두 페스티벌에 이어 이번 공연은 약 1년 만에 참석한 공연이었다. 체리필터라는 가수를 알고 노래를 들어온 지는 꽤 오래됐지만, 공연에 다니기 시작한 건 작년이 처음이었다. (지금 펜타포트 영상을 다시 돌려보다 보니, 펜타포트에 체리필터가 올랐던 것도 작년이 처음이었다고…)

펜타포트에 체리필터가 온다는 걸 알고, 공연을 즐기기 위해 그간의 페스티벌 영상을 여럿 찾아봤다. 대략적인 플레이리스트를 예습하면 공연을 즐기는 데 훨씬 도움이 됐다. 그래서 보통 잘 모르는 가수나, 잘 알더라도 공연에 가본 적 없어서 어떤 노래를 부를지 예측이 안 되는 상황에선 언제나 예습을 필수로 했다. 그렇게 가게 된 펜타포트에서 물에 흠뻑 젖어가며 체리필터의 노래를 따라 부르고 미친 듯이 뛰다 보니, 잊고 있던 그들에 대한 애정이 새롭게 피어났다.

아주 어릴 때, 그러니까 대충 내가 중학생이었을 때 체리필터를 처음 알게 됐었다. 대부분의 대중이 그렇듯 <낭만고양이>라는 곡을 통해 그들을 알았고, 그 뒤로 히트한 유명한 타이틀곡들은 대부분 좋아했었다. 그리고 점점 방송에서 그들을 볼 수 없게 된 뒤로 내 애정도 점차 식어갔다. 이십 대 후반이 되면서부터는 의식적으로 그들의 노래를 듣지 않았었다. 더는 체리필터의 곡을 들을 나이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고양이나 오리가 나오는 ‘귀엽고 가벼운 체리 같은 노래’는 이제 그만! 그렇게 그들은 플레이리스트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펜타포트에 그들이 온다고 했을 때쯤, SNS에서 우연히 짧은 영상 하나를 발견했다. ‘체리필터 가사가 이렇게 슬펐나?’와 같은 느낌의 제목을 한 영상이었다. 영상에는 체리필터의 <Happy day>라는 곡이 등장했는데, 신나는 곡의 분위기와 상반되는 지극히 현실적이고도 다소 쓸쓸한 가사에 놀란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물론 그중 나도 포함이었다. <Happy day>의 가사는 이렇게 시작된다.

난 내가 말야 20살쯤엔 요절할 천재일 줄만 알고 어릴 땐 말야 모든 게 다 간단하다 믿었지

체리필터의 노래를 듣던 시절은 딱 저랬다. 재능이 충만하지만, 아직 드러나지 않은 것뿐이라고 생각했다. 아마 대부분이 그렇지 않았을까. 누구나 자신을 별이라 여겼을 시절. 남들은 몰라도 나는 반드시 성공할 것만 같은 기대감. 이유 모를 자신감에 차 있었다. 그런 시절이었다. 그리고 후렴에서 가사는 이렇게 이어진다.

찬란하게 빛나던 내 모습은 어디로 날아갔을까 어느 별로 작은 일에도 날 설레게 했던 내 안의 그 무언가는 어느 별에 묻혔나

맞는 말이라며 소리쳐 공감하고 싶었다. 내 얘기 아니냐며. 나도 대체 그 시절의 반짝이던 내가 어디로 사라져 버렸는지 모르겠다. 그때의 자신감은 언제 그렇게 다 사라져 버린 걸까. 완전하진 않아도 반짝이던 시절이 있었던 것 같은데.

30대가 되어서야 그들의 가사를 처음으로 제대로 이해한 셈이었다. 이전까지 나에게 체리필터는 그저 즐기는 음악이었다. 신나고 활기차고 재미있고, 그리고 한편으로는 가볍고 유치하다 여겼었다. 무척 어리석은 시절이었다. 그제야 체리필터의 다른 곡들 가사를 다시 살펴봤다. 체리필터의 가사를 제대로 읽어 본 건 처음이었다. 그들의 은유적인 표현에 숨겨진 가사의 의미를 모두 이해하자, 마냥 밝고 희망차다 생각했던 노래들이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낭만고양이>의 가사를 가만히 보고 있자니 ‘외톨이’라는 가사가 가슴에 박혔고, ‘깊고 슬픈 나의 바다’에서 마음이 저릿했다. 더러운 뒷골목의 어느 쓸쓸한 길고양이를 떠올렸다. 그리고 이 도시에서 소외된 수많은 이들을 떠올렸다. 낭만과 자유를 희망하지만, 결코 그곳에 닿을 수 없을 이들을.

‘날아올라 하늘의 달이 되고 싶다’던 <오리날다>의 가사에서는, 아무리 노력해도 끝끝내 날아오를 수 없었을 오리를 떠올렸다. 수없는 날갯짓에도 결국 날아오르지 못해, 달을 만나지 못해 절망에 빠졌을 모습이 눈에 선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을 꾸는, 허황한 꿈을 좇는, 이 사회에서 어리석다고 여겨지는 여러 이들이 또다시 눈에 떠올라 노래를 마음껏 즐길 수 없었다.

체리필터의 노래에서는 말하자면 ‘결핍‘ 같은 것이 느껴졌다. 외롭고 소외된, 그 누구보다 낮은 존재들이 생각났다. 딸기향 해열제 같은 환상적인 해결책을 밝은 멜로디로 노래하지만, 돌아보면 그 모든 게 결국 이루어질 수 없는 해결책이라 생각하니 더없이 서글퍼졌다. 아무래도 고양이는 여전히 도시를 벗어나지 못한 외톨이로 살았을 테고, 오리는 의미 없는 날갯짓으로 하늘의 달을 평생 우러러보기만 했을 것이며, 찬란한 시절은 절대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체리필터의 노래를 들으면 희망차다. 외톨이 고양이는 바다로 떠날 수 없어도 자유를 노래하는 낭만을 가지고 있고, 오리는 누군가는 평생 가지지 못한 꿈을 간직하고 있으며, 나는 그럼에도 다시 찬란한 날을 꿈꾸며 살아가길 포기하지 않으니까. 결코 희망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대책 없는 희망을 기대하게 만든다. 아무리 생각해도 왜 나만? 이라는 의심을 품을 만큼 서글프고 소외되고 쓸쓸한 모든 결핍들에게 무모하지만, 반드시 포기하지 않아 마땅한 용기를 심어준다.

뒤늦게 체리필터에 빠져 덕질을 시작했다. 그래봤자 대단한 덕질이랄 것까지야 없이 몇몇 공연에 다니는 정도지만, 이렇게 주기적으로 공연을 찾아다니는 가수가 몇 없으니 이 정도면 내 선에선 덕질이랄 수도 있겠다. 체리필터의 공연이 좋은 건, 아무래도 나이가 들면서 결핍이 많아져서일지도 모르겠다. 그들의 가사와 마찬가지로 거칠 것 없던 찬란한 시절을 다시 찾을 수 없는 서러움에, 작은 일에도 행복했던 예전 모습에 대한 그리움으로.

그러니 현실의 결핍에 허우적거리고 있다면, 딸기향 해열제 같은 환상적인 해결책으로 체리필터의 노래를 들어보는 게 어떻겠는가. 현실이 바뀌지 않는다고 해도, 말도 안 되는 뜬구름 잡는 소리 같아도, 그들의 노래에는 당장의 슬픔을 치유할 힘이 있다. 구덩이에 빠진 당신을 끌어올릴 충분한 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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