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나무 <LOVE IN CAMPUS>
2022년 10월의 마지막 주말이자 핼러윈, 이태원에서 큰 사고가 있었다. 그 누구도 예상 못 한 사고였다. 어떤 이는 매일 같이 아무렇지 않게 걸어 다니던 골목이었고, 언젠가 한 번은 핼러윈을 즐겨봤을 거리였다. 그저 핼러윈 밤을, 젊음을 즐기고 싶었던 150명가량의 청춘이 그렇게 허무하게 떠날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허무한 죽음 이후 수개월이 지나고, 이태원에서는 떠난 이들을 추모하는 행사가 열렸다. 이태원 일대에서 열린 ‘렛 데어 비 러브, 이태원!(LET THERE BE LOVE, ITAEWON!’ 캠페인이었다. 이태원 일대 특히 그 골목을 중심으로 음악 공연과 모금 행사, 플리마켓 등이 펼쳐졌고, 희생자에겐 추모를, 이태원과 남은 이들에겐 사랑과 희망을 전하는 취지의 행사였다.
사고 당시 실시간으로 뉴스 속보를 시청했다. 어차피 이태원에 있을 만한 지인도 없었고, 나와 거리가 먼 얘기였다. 그렇지만 그 골목을 걸어봤다는 이유로, 하필이면 비슷한 나이대의 청춘들이기에, 언젠가 한 번은 스쳤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뉴스를 외면할 수 없었다. 한동안 이태원은 고요하게 가라앉았고, 추모 행렬이 계속되었다. 무사한 지인들에게 다행이라는 안부를 전하면서도, 쉽게 웃을 수도, 마음 놓고 안도할 수도 없었다. 늦은 저녁 산책에선 구청 앞에 분향소가 설치되는 광경을 봤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반드시 해야 할 것도 어차피 없었다. 나는 그저 그러한 흐름을 가만히 지켜봤다. ‘렛 데어 비 러브, 이태원!’ 행사에 참여한 것도 누군가를 추모하거나 이태원에 대단한 애정이 있어서는 아니었다. 행사 참가비가 무척 저렴했고, 권나무나 오열 같이 좋아하는 가수들의 공연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어서였다. 그만큼 가벼운 마음이었다. 그저 돌아오는 주말을 즐기기 위한 하나의 재밋거리 정도.
가장 보고 싶었던 권나무는 포크계에선 유명한 싱어송라이터다.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포크 노래 2회 수상에 빛나며, 담백한 목소리가 매력적인 가수다. 에둘러 표현하지 않으며 직설적이고 때론 얼음장 같이 차갑고 냉철하지만, 근원을 파고들면 그 누구보다 따뜻한 위로를 담은 가사도 그의 특징 중 하나다. 권나무를 좋아한 건 꽤 오래됐다. 우연히 <어릴 때>라는 곡을 듣고 그를 알게 됐고, 꾸밈없이 거칠게 마음을 감싸는 소리가 마음에 들어 다른 곡도 모두 들었었다. 권나무를 좋아하는 이유를 묻는다면 나는 두말할 것도 없이 가사를 꼽는다. 권나무는 한글 가사의 아름다움을 잘 표현하는 가수 중 한 명이다. 불필요한 영어로 가사를 낭비하는 일 없이, 마치 한 편의 시를 쓰듯 보통의 언어로 가사를 쓴다. 매우 예술적으로.
권나무의 곡 중 <어릴 때>나 <나의 노래>, <사랑은 높은 곳에서 흐르지>와 같은 곡을 좋아했다. 아련하고 순수한 감성이 좋았다. 하지만 이태원 공연에서 의외로 가장 좋았던 곡은 <LOVE IN CAMPUS> 였다. 이 곡은 권나무의 예전 공연에서 미발매 곡 중 하나로 처음 접했었다. 처음 노래를 들었을 당시엔 한글의 자음을 활용한 가사가 기발하다 생각했고, 후반부로 흘러갈수록 고조되는 그의 목소리와 비올라 연주가 좋았다. 그뿐이었다. 연주가 좋은 곡. 라이브로 듣기 너무나 좋은 곡. 나중에 해당 곡이 수록된 앨범이 나오고 LP까지 샀지만, <LOVE IN CAMPUS>보다는 다른 곡들을 더 좋아했었다. 그렇게 스쳐 지나갔던 곡이 이태원 공연에서 특별하게 다가온 이유를 꼽자면, 이번에도 역시 가사 덕분이었다.
과연 <LOVE IN CAMPUS>에 ‘사랑’이라는 단어가 몇 번 나올까. 총 54번 등장한다. 이전에는 이 노래가 그토록 사랑을 부르짖는 노래인지는 몰랐었다. 이태원 공연 중 이 곡이 시작되며, 권나무는 늘 그렇듯 차분하게 노래를 이어갔다. 처음 ‘사랑을’이 등장하는 부분에선 모두가 가만히 노래를 감상했고, 두 번째 ‘사랑을’이 등장하는 부분부턴 하나둘 노래를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마지막 ‘사랑’이 30번 등장하는 절정 부분에서는 공연장 내에 있던 모두가 사랑을 부르짖었다.
아마도 나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공연장에 온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술집에서 맛있는 술과 안주를 먹으며, 적당한 마음으로 공연을 즐기고 이태원의 주말을 즐기기 위한 마음으로. 확실했던 건 「LOVE IN CAMPUS」 노래의 전과 후로 공연장의 공기가 사뭇 달랐다는 사실이다. 공연이 열린 술집은 무척 현대적이고 힙한 감성의 인테리어에, 따지자면 차가운 분위기에 가까운 곳이었다. 하지만 노래가 흘러나오고, 모두가 ‘사랑’이란 단어를 외치고 난 후 아주 작은 온기가 피어나기 시작했다. 사람과 사람 사이로 잔잔한 마음이 전해지는 것을 느꼈다. 가벼운 마음을 훈훈하게 데우는 온기였다.
우리가 했던 건 단순히 노래를 따라 부르는 행위가 아니었다. 그 누구도 아무 생각 없이 ‘사랑’이란 단어를 외치진 않았을 테다. 모두가 각자 사랑을 전하고 싶은 이를 생각했을 것이 분명했다. 안타깝게 떠나간 사람에게, 남은 이들에게, 여전히 웃지 못하고 어쩌면 앞으로도 쉽게 웃을 수 없는 누군가를 위해. 또 누군가는 더는 보지 못할 직접적인 지인을 위해, 또 누군가는 일면식도 없지만 그저 마음을 담아.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제각각 모였지만, 마음만은 같았다. 사랑을 전하고 싶었다. 그날 우리가 모인 이유도 결국 사랑 때문이었다. 서로 사랑을 전하고 느끼기 위해서였다. 사랑이 사라졌다고 생각한 슬픈 세상에도 여전히 사랑은 존재한다는 걸 모두가 느끼고 싶었기 때문에.
그쯤 나에겐 크고 작은 여러 불행이 일어났었다. 오랜만에 들른 도서관에선 다른 책으로 착각해 지난번에 읽은 책을 그대로 빌려오고 말았다. 책을 읽으려고 펼쳐서야, 이상한 기시감에 확인해 보니 그랬다. 요리하려다 감자 칼에 베였고, 잘 쓰던 포크도 갑자기 부러졌다. 무척 이상하게 쓸데없는 불행이 몰아쳤고, 무너질 정도의 불행은 아니었지만, 평소 같았으면 불행을 온몸으로 끌어안은 하루라 스스로 자책하고 상심했을 터였다. 하지만 이미 바깥은 비교 불가한 불행이 넘쳐흐르는 때였다. 차라리 내 작은 불행으로 불행의 어떠한 총량을 채울 수 있다면. 얼마든지 더 불행해도 될 것 같았다. 그렇게 해서 세상의 불행을 조금은 상쇄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그리고 앞으로 매년 이날을 웃으며 보낼 수 없는 누군가를 처음으로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