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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라윤 Oct 08. 2021

식권이 없어서 재수생이 되다.

공부 다 시켜주셨는데 지방대 가서 죄송해요.

방과후 어깨에 화통을 둘러매고 입시미술학원으로 향하는 친구가 멋져 보였다. 그런 지우는 나에게 자기가 그린 그림도 보여줬는데 지우의 나비 그림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그 환상적인 그림에 홀려 나도 미대를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마음을 먹자 웃기게도 하나둘씩 이유를 만들어냈다. 나는 예술을 하려고 태어난 사람이 아닌가? 하는 확신이 드는 지경에 이르렀다. 나는 항상 튀는 아이였고 그것을 즐겼다. 친구들이 모두들 나를 독특하다고 할 때 나는 내가 자랑스러웠다. 남들과 비슷한 것은 만족스럽지 않았다. 그래, 역시 나는 예술가로 태어났어. 이런 나의 평범하지 않은 생각 체계와 표현력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것이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야 라고 믿었다. 그때가 고3. 미술실기시험을 준비하기에는 많이 늦은 시기였다. 곧바로 지우를 따라 미술학원을 다니기 시작했지만 나의 그림은 늘지 않았고 여전히 형편이 없었다. 그래서 되지도 않는 그림실력을 차치하고서 나는 내 수능성적만으로 갈 수 있는 미대를 알아보며 미래의 예술가를 꿈꾸었다.


미대만 가자. 어느 대학이든 대학 이름 이나 간판 따위 중요치 않아.
하고 싶은 공부를 할거야! 그게 대학이지.

그렇게 되뇌이며 찾은 내 수능성적만으로 미대에 갈 수 있는 대학은 세명대뿐이었다. 그렇게 나는 제천에 있는 세명대 미대에 입학을 하게 된다. 


호기롭게 예술가를 꿈꾸며 들어간 첫 수업은 충격이였다. 너무 실망스러운 내용과 가르침과 구닥다리 책에 실망의 정도가 넘어서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날의 교수님 말씀이 지금도 생생하게 라디오처럼 귓전에 들린다. 

여러분, 빨강과 초록은 서로 보색 관계라 촌스러워예~ 같이 쓰면 안 됩니더.

버스 타고 4시간 걸려 정작 이것을  공부하러 왔단 말인가. 정말적이었다. 왜 어른들이 대학 간판을 따지는지 이해가 조금은 가기 시작했다. 대학과 그 전공선택은 대부분의 경우 그 과목을 공부하겠다고 온 사람들이 가는 곳이 아니었다. 그냥 성적과 실력에 맞추어 입학하는 것이다. 내 동기들의 대부분은 그들의 수능성적으로 갈 수 있는 4년제 대학의 선택지가 많지 않아서 온 친구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미술실기를 준비했거나 데생을 해본 친구들이 반도 안되었다나처럼 예술이 내 인생이다 라는 생각에 학교 온 친구는 없었다. 난 참 바보 같았고 순진했다. 미대는 미술 하고 싶은 사람들이 오는 곳인 줄 알았다. 최소한 나랑 비슷한 생각과 야망을 가진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희망이 없었다.


기숙사비는 첫 학기라 부모님께서 주셨지만 부모님이 원하시는 대학에 간 것도 아니고 대학 가서도 손을 벌리는 것이 죽을 만큼 싫었다. 아르바이트는 버스를 타고 읍내까지 나가야 했고 시간과 버스비를 계산하면 안 하느니만 못한 그런 일들뿐이었다. 한 번은 용돈이 다 떨어져 그냥 밥을 굶고 있었다. 초중고는 부모님 덕에 잘 다녔지만 대학은 내 실력으로 가는 곳이다. 다 키워놨더니 결국 간 곳은 지방대. 거기에 더 보태서 밥값조차 혼자 벌지 못해 또 손을 더 벌리는 것이 죄송했다. 차라리 굶고 다음 주에 용돈 받으면 그때 밥 먹어야지 생각했다. 그렇게 학생식당을 떠나려던 찰나 친한 친구가 식권을 꺼내는데 그 장수가 많았다. 배가 고파서 나도 모르게 아무 생각 없이 물어보았다. 혹시 괜찮으면 다음 주에 줄테니까 한 장만 빌려줄래? 그 친구는 나에게 식권 살 돈도 없냐고 했다. 농담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는 농담이었어도 그 말이 괜찮지 않았다. 네가 그러고도 친구냐고 했다가 학생식당에서 큰 소리를 내고 말다툼이 났다. 다른 친구들이 말려서 대강 마무리가 되고 혼자 나는 터덜터덜 기숙사까지 걸어들어왔다. 피곤한 몸을 침대에 뉘었다. 배고파서 힘도 없고 싸우느라 지쳐서 눈물을 눈꺼풀로 막으며 누워서 조용히 잠을 청했다. 엄마는 무슨 촉이 오셨을까? 그 순간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내 목소리를 속일 수는 없었고 뭔가 이상한 낌새에 엄마가 자꾸 무슨 일 있냐고 물어보셨다. 좋게 잘 설명해야지 하다가 나도 모르게 밥을 못 먹은 게 서러워서 결국 울음이 터졌다. 그 일로 엄마는 바로 돈을 보내오셨지만 그 뒤로 계속 마음이 좋지 않았다. 엄마도 그러셨으리라 생각한다. 처음으로 기숙사에서 떨어져 살면서 거기에다 괜한 걱정을 얹어드린 셈이다.


 그렇게 한 학기를 보내고 나니 여기에 더 이상 내 시간과 학비를 쏟아부을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부모님께 말씀드리고 자퇴서를 냈다. 


내가 제일 두려웠던 것은 이 안에서 내가 꿈을 잃을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처음에 입학했을 당시의 나는 내가 그곳에 간 이유를 알았다.

내가 무슨 공부를 하고 싶은지 어떻게 할지가 그려졌다.

하지만 나라는 인간은 나약해서 시간이 지나면 그것조차 흐릿해질 것을 알았다.


지금은 내가 수업의 내용과 미술에 뜻이 없는 사람들로 둘러싸인 환경을 참을 없지만

시간이 지나서 동기들과 술 먹고 어울리며 꿈을 잃고 그냥저냥 다니다가 졸업할 것을 알았다.


그래도 4년제 아닌가? 졸업하면 방법이 있겠지 라고 나를 위안하며 시간이 흐를 것을 알았다. 

지금은 내가 내 이상과 맞지 않는 것에 날을 세우지만 나중에는 그것도 무뎌질 것이 두려워 빠져나왔다.

이도 저도 아닌 인생을 살 수 없겠다 싶어서 그렇게 재수를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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