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타라윤 Oct 23. 2021

삼수생 랩소디

할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 할 수 없다고 하는 사람 둘 다 옳다.

비록 내가 재수를 하지만 꿈을 향해 가고 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벅찼다. 미대 입시 실기반과 수능을 위해 독서실에서 공부하는 것을 병행했다. 미대 입시 실기반은 한 달 수업료가 어마어마하다. 나는 돈을 못 내거나 늦게 내거나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끝내는 돈을 몇 달을 못 내고 더 이상 갈 수가 없게 되었다. 어차피 내가 봐도 내 그림실력은 나아질 기미가 안 보였다. 잘하려고 들면 나아질 법도 한데 실력이 뛰어난 친구들의 그림과 내 그림을 비교하는 사이 그 큰 간극에 나도 모르게 "난 그림은 안돼"라는 생각을 이미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처음 들어간 미대에서 쓴맛을 보았기 때문에 이번에는 무조건 인 서울에 아무 미대라도 가고 싶었다. 그래서 조소에도 손을 대보았다. 입시 미술반에서 그림실력은 나아 질기 미가 안 보였지만 그나마 조소를 할 때는 "하면 될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소는 재미가 있었고 계속하고 싶었었다. 한 달만에 꽤 괜찮은 결과물이 나왔고 선생님께서도 가능성이 있다고 하셨다. 실력의 차이는 결국 자기 신념에서 온다. 스스로 된다고 가능하다고 생각하면 되고 내가 안 될 것 같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된다. 지금도 나는 어려운 것 같은 일이 닥치면 공자가 한 이 말을 떠올린다. 

할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 할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하는 사람. 둘 다 옳다.


그렇게 재수를 했지만 지원한 그 어느 곳도 합격하지 못했다. 사실 그때 서류를 제대로 쓴 건지도 모르겠다. 재수했는데도 안될까 봐 두려움에 휩싸인 시기였다. 실기 실력도 안되지 실기한다고 수능 공부도 고3 때처럼 하지 못했다. 두려움이 가득한 시기였다. 그렇게 나는 자연스럽게  삼수의 길로 가게 되었다. 하지만 더 이상 미술학원을 다니도록 손을 벌릴 수 없었다. 다시 수능만으로 대학을 가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다. 공부는 이미 사둔 책들을 보면 돼서 독서실 외에 돈이 안 드니 차라리 마음이 편했다. 그렇게 세 번째 수능을 마쳤다. 부모님께서는 사수를 하지는 않을 거지?라고 하셨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대학원서를 넣어야 하는 결정적인 시간이 왔다. 포함해야 하는 서류로 고등학교 성적표가 있어서 모교에 찾아가서 선생님께 말씀을 드렸다.


"저 미대 가려고 삼수까지 하게 되었는데요. 아무래도 실기 때문에 미대에 바로 갈 수는 없고 영문학과 가서 영어 공부해서 편입으로 유학 가서 미술 공부를 하는 방향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당시에 돈은 없었지만 나는 원래 그런 조건 같은 건 나중에 생각하는 편이다.)  그래서 다행히 성신여대에  야간대로 영문학과가 있던데 여기면 제 지원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타라야, 선생님이 입시만 30년인데 이 성적으로는 안돼. 게다가 삼수잖니, 사수 할거 아니잖아. 독문학과 넣으면 될 수도 있어. 독문 야간을 넣어라."


그 이야기를 듣고 원서 접수하러 성신여대까지 지하철을 타고 오면서 내내 생각했다. 독문이라 독문... 제2외국어로 한 독문이 얼마나 싫었는지가 생각이 났다. 난 독어의 그 발음이 나는 정말 싫은데 독문을 가야 하나. 그렇게 복잡한 머리를 하고 노랫소리 시끄러운 대학교 먹자골목을 지나 성신여대의 정문 앞에 섰다. 내 마음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나는 독문학과는 결코 가고 싶지 않아. 

무엇에 홀린 것인지 나는 아무 계산 없이 사수를 할수도 있다는 현실적인 계산에서 오는 두려움은 뒤로 하고 담담하게 영문학과에 지원을 했다. 그렇게 발표날이 되었다. 2003년 그 해는 다들 안전 지원하느라 독문학과의 경쟁이 최고였고 오히려 영문학과가 경쟁률이 제일 낮은 해가 되었다. 2002년에는 그 반대였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기 번호 43번이었다. 이것도 사실 굉장히 불안한 대기번호다. 그렇지만 다행히 결국 합격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입학했기 때문에 신입생 오리엔테이션도 가지 못했지만 그렇게 드디어 삼수 끝에 대학에 입학한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내가 만약에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독문을 넣어서 안 되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나 같은 성격의 사람은 아마 폐인이 되었을 거다. 내 인생의 결정을 남에게 맡겼기 때문이다. 영문으로 넣은 것이 안되었으면 나는 또 룰루랄라 사수를 했을 거다. 하지만 행복했을 거라는 것을 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