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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라윤 Oct 23. 2021

계약직이라는 주홍글씨

이 길이 내 길인가?

대학은 삼수를 해서 야간대에 대기자 43번으로 겨우 서울에 있는 4년제에 들어갔다. 삼수 끝에 들어간 대학은 나에게 행복 그 자체였다. 내가 이렇게 멋진 교문에 학생으로 발을 디디고 수업을 듣다니 하루하루가 행복에 겨워 미쳐버릴 지경이었다. 비록 창문 밖은 어두운 별빛이 흐르는 밤에 듣는 수업이었지만 낮에는 과외 알바를 다녔으니 오히려 완벽했다. 수업이 일찍 끝나는 날이면 저녁에도 과외 알바를 했다. 나는 서울대생이 아니니 질보다 양으로 승부를 해야 했기 때문에 하루도 과외를 안 하는 날이 없었고 항상 한 달에 4-5개의 알바를 뛰었다. 초등학생부터 재수생까지 한 달에 20만 원에서 최대 35만 원까지 받았다. 그렇게 학비를 부모님께 손 벌리지 않는 것에 대한 해방감이 하늘을 찔렀다. 하루에 많을 때는 과외가 세 개인 날도 있었다. 그런 날은 길거리에 어묵이나 붕어빵이 보이면 그걸 사 먹으면서 시간을 아껴서 과외를 해치웠다. 


그렇지만 나도 평생 대학생 일수는 없는 법, 취업을 해야 될 때가 왔다. 삼수를 했기 때문에 졸업 후 바로 취업을 한다고 해도 이미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늦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과외하느라 바빴던 나는 다른 학교 친구들처럼 교환학생을 다녀와 본 것도 아니고 쌓아놓은 스펙도 없었다. 친구를 통해 한 회사에서 급하게 파견 계약직 후임자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에 나는 면접을 보았고 뭐가 뭔지도 모르겠는 시간이 흘러 다음 주부터 출근하라는 소리를 들었다. 정말 말도 안 되게 번쩍번쩍한 건물에 내가 사원증을 목에 걸고 출근을 한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계약직 배지는 주홍빛이다. 정규직은 파란색. 계약직이 정규직이 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기 때문에 다들 그 배지를 지울 수 없는 주홍글씨라고 불렀다. 한번 계약직은 영원한 계약직이라는 것이다. 계약이 갱신은 될지언정 정규직으로 전환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듣기만 해도 참 우울한 아이디어로 들렸다. 그렇지만 나는 철없는 20대였고 그냥 아침에 출근할 번쩍번쩍한 건물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심히 행복했다.


껍질을 까고 안에를 들여다보면 현실은 월급 80만 원짜리 파견 계약직이다. 통장에 월급이 이것저것 빼고 나면 대충 80만 원이 통장에 찍혔다. 그렇지만 나는 매일 하는 출근길이 구름 위를 걷는 것 같았다. 마치 꿈을 꾸는 것 같은 하루하루였다. 경력자의 후임으로 갔지만 일은 하나도 할 줄 모르니 매일 울고 혼나고 난리도 아니었지만 그래도 나는 출근하는 내 모습이 경이로울 뿐이였다. 아침 지하철 첫차 나가는 시간에 맞춰서 출근을 했다. 아침 첫차에는 보통 건설업 노동자분들이 계신다. 그 이른 아침 5시에 지하철을 타면 알게 된다. 세상에 부지런하고 열심히 사시는 분들이 생각보다 정말 많다는 것을. 나는 매일 그분들과 아침에 만나기를 고대하며 첫 차를 탔다. 일을 할줄 모르니 아침에 일찍 출근하고도 저녁 늦게까지 회사에 계속 앉아 있었다. 무슨 일이 생기거나 내 답장이 필요하면 바로바로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한 번은 대리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다. 

일은 끝이 없어. 오늘 다 안 해도 돼.


나는 그날의 일은 그날 다 끝내야 하는 줄 알았다. 실력이 없는데 하루에 다 끝내려고 하니 집에 갈 수가 있었겠는가? 그렇지만 야근한다고 끝나는 부류의 일도 그럴 실력도 없었다. 한 번은 싱가포르 지사와 미팅이 끝난 후에 영어 프레젠테이션을 만들어서 보고를 해야 되었었는데 내가 만든 자료를 프린트해서 가져갔더니 그 종이를 하늘에 흩뿌려졌다. 대리님께서 외계어로 할 거면 그냥 한국말로 해오세요.라고 했던 것이 기억이 난다. 아직도 색종이처럼 날리던 A4용지들이 생생하다.


예술을 하겠다던 자유로운 영혼이 회사라는 곳에 들어가서 뭘 하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원이라는 경험은 정말 소름 돋게 멋진 것 같았지만 내가 일을 못해서 영어를 할 줄 몰라서 사람들에게 피해만 주고 매일 혼나고 있으니 더더욱 이것은 내 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sourge of the image: http://www.brunswick.k12.me.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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