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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라윤 Oct 23. 2021

나는 회사원으로 태어나지 않았다.

지금 당장 사직서를 쓰라는 환청이 계속 들리기 시작했다.

"너 왜 거짓말했니?"

"네, 제가 무슨 거짓말을?"

"너 컴퓨터, 엑셀 이런 거 할 줄 안다고 했잖아."

"네"

"근데 너 지금 하나도 모르잖아."


말문이 막혔다. 나에게 컴퓨터를 할 줄 아냐는 말은 컴퓨터를 사용하냐는 뜻이었고 나는 어려서부터 컴퓨터를 써왔다. 비록 유니텔 들어가서 채팅하고 게임하고 노는 것으로 쓴 거지만 나에게 엄연히 그것은 컴퓨터를 사용할 줄 안다는 뜻이었다. 엑셀은 학교에서 과제를 할 때 열어봤고 그런 소프트웨어들의 존재를 알았다. 특히 프레젠테이션은 과제할 때마다 사용을 했기 때문에 내 기준에서 나는 그 놈들을 할 줄 아는 것이었다. 하지만 회사의 기준에서는 그것이 아니었다. 나는 마이크로 오피스를 제대로 사용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것으로 인해 거짓말한 사람이 되었다. 아마 그때가 회사생활 중에서 가장 많이 크게 울고 속상하고 나 자신이 싫었던 날이었다. 처음에 회의실에 불려 가 저 말을 들었을 때는 차장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이해를 못했다. 저게 무슨 말인가? 내가 할 줄 모른다는 말인가? 이 말을 이해하는 데에만 해도 하루가 꼬박 걸렸다. 바로 그 말은 엑셀의 공식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줄 아느냐 피벗테이블을 만들 줄 아느냐는 것이었다. 나는 그들의 존재조차 몰랐기 때문에 무엇이 문제인지도 몰랐다. 영어도 문제였다. 지금도 기억이 난다. 내가 영어로 이메일을 쓰면 차장님께서 수정을 보셔야 하는 몇 가지 중요한 업무들이 있었는데 이렇게 쓰라고 하신 말씀 중에


"여기는 on behalf of를 쓰면 돼. 아, 너  on behalf of  모르지?"

"아, 네."

자리에 돌아와서 영어사전을 뒤져서 뜻을 찾아봤는데도 뜻이 나와있어도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냥 instead 랑 같은 것 같은데 왜 저거를 쓰라고 하시지 생각했다. 이 두 가지는 한국말로만 비슷하고 전혀 다르게 쓰인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다. 누군가 원망스러울 때 상대를 탓한 것이 없다. 네 눈에 그게 안 보일 뿐이라는 것을 기억하자. 그러나 그때는 내가 부족한 것은 알겠는데 정확히 무엇이 그런건지 이해하는데 항상 시간이 많이 걸렸다. 


그렇게 매일이 고난의 행군이었다. 제일 힘든 건 주위 사람들을 내가 힘들게 한다는 느낌, 내가 거짓말한 것 같아져 버렸다는 생각이었다. 나의 차장님이 나를 뽑아주셔서 너무 감사한데 힘들게 해 드려서 너무 죄송했다. 지금도 그때 그 시절을 생각하면 죄송하고 감사하다. 내가 차장님이었으면 차장님만큼 참을성 있게 나 같은 팀원을 대할 수 있었을까? 나는 지금도 그렇게 못할것 같다.


그래서 더욱 사직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마케팅팀의 부장님은 파견 계약직에게는 말도 안 되는 기회인 싱가포르 지사 출장을 고려해 보라고 하셨고 다들 열심히는 하려고 하는 나에게 항상 친절해주셨다. 지하철 첫차를 타고 출근을 하니까 항상 회사 10층의 불은 내가 켰는데 나 다음으로 출근하시는 분이 부사장님이셨다. 부사장님은 날 보고 놀라시고 나는 부사장님을 보고 놀랐다. 나는 매일 6시 넘어서 자리에 앉으니 부사장님은 출근을 하셔야 되는 날에는 나를 항상 보셨다. 나중에 부장님께 저 친구는 뭘 해도 될 거라고 하셨다고 들었다.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그렇게 나는 회사에서 일은 못하지만 모든 사람을 (그들이 파견 계약직이건, 정규직이건 간에) 존경하고 따르며 배우려고 했다. 어차피 그 누구도 나보다 더 많이 알고 다 나보다 대단해 보였으니 당연할 일이다.


다만, 파견직인 사람들은 그 안에서도 계급이 있었다. 파견나가는 고객의 회사로 출근하는 사람과 파견을 주는 모회사 (아데코와 같은) 로 출근하는 사람 그렇게 둘로 나뉘었는데 우리 팀 중 한 분이 외부로 출근하시는 분이셨다. 그리고 그분께서 나에게 기회를 주셨다. 그 기회는 아마 다른 사람들이 그분이 본사로 오실 때 인사를 했거나 커피만 마셨어도 여러 명에게 널리 공유되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그 팀장님은 나에게만 그 기회를 알려주셨다. 그렇게 나는 싱가포르에 있는 우리 회사의 마케팅 에이전시에 면접을 볼 기회를 얻게 되었다.


사직서를 내라는 환청이 여기저기서 쉬지않고 들리던 그 시점에 나에게 기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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