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한 민원인과 범칙금 관련 통화를 하는데 다짜고짜 먹고살기 힘드니 범칙금을 좀 깎아달라고 하는 것이었다. 노점상에서 물건값 흥정하는 것도 아니고. 어이가 없었지만 왕왕 있는 일이라 일단 저는 그럴 권한이 없고, 장애인이나 기초수급자 등 감경 관련 근거서류가 있으면 도와드릴 수 있으며, 납부금액과 계좌를 문자로 발송해드릴 텐데 xx월 xx일까지 납부를 안 하시면 또 가산이 되니 참고하시라고 안내하고 전화통화를 마무리했다.
그런데 끝까지 언성을 높이며 서민들 고혈 빨아먹으려 혈안이 된 탐관오리 취급을 하기에 대체 얼마나 단속이 돼서 저러는지 전체 과태료, 범칙금 내역을 들여다봤다.
알고 보니 속도위반, 신호위반, 안전벨트 미착용 등으로 웬만한 직장인 한두 달치 월급이 미납에다 즉결심판 대상까지 된 상황.
추측컨데 운전을 업으로 하는 사람인데 즉결심판까지는 면해보고 싶어서 그랬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즉심은 벌금, 구류, 과료 20만 원 미만의 약식재판으로 불출석 개정도 가능한데 법원에서 재판받는다고 한 달에 한 번씩 대상자들한테 안내문 보내면 보통사람들은 구속이라도 될 것 같은지 납부 문의전화가 쇄도함)
내가 봐도 차곡차곡 쌓인 범칙금, 과태료들을 한 번에 납부하기는 부담스러웠을 것이고, 미루다 보니 설상가상 가산까지 돼서 금액은 더 커진 데다 경찰은 즉심 회부한다고 협박(?)까지 해대니 없는 살림에 하나라도 내보겠다고 나름대로 타협을 하자고 해본 것인데 너무 매몰차게 한 것 같아 미안한 마음까지 들 지경이었다. (하지만 애초에 단속이 안 되었으면 피차 곤란할 일도 없었으니 자승자박인 셈)
어제는 첫째 아이가 거실에서 둘째하고 놀다가 갑자기 손으로 동생 눈을 찌르고 둘째는 온몸으로 거부하며 울길래 쫓아가서 지금 뭐 하는 거냐고 다그치며 물으니, 동생 눈곱을 떼주려고 했다며 억울해했다.
실제로 둘째가 감기 기운이 있어 눈곱이 많이 끼어있길래 첫째에게 멋쩍은 사과와 함께 가제 손수건을 건네며 살짝 물을 묻혀 살살 닦아주라고 부탁했다.
이렇듯 다른 사람의 행동의 이면에 숨은 선의를 모르고 내 멋대로 행위를 해석해서 괜히 내 화를 내가 자초할 때가 종종 있다. 오늘은 두 살배기 둘째 아이가 언니가 먹다 버린 도넛 상자를 들고 가더니 쓰레기통이 아닌 싱크대에 갖다 버리는 모습을 보고 우리 꼬맹이가 평소 다 먹은 간식 그릇을 설거지통에 넣는 것을 주의 깊게 보다가 기특하게 잘 치워주었다고 생각하고 아이를 칭찬해주었다. 이렇게 좀 더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바라보면 사소한 것일지라도 고맙고 감동적인 일이 더 많을 텐데.
해야 할 일은 많고 마음의 여유가 없어져 쉽게 예민해지는 요즘, 내 화를 다스리기 위해서라도 좀 더 따뜻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