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은 제복 입은 시민'이라는 말이 있다. 엄밀히 말하면 나는 제복 입은 소시민(小市民)이다. 소시민이라 함은 사회 일반 노동자와 자본가의 중간 계급에 속하는 소상인, 수공업자, 하급 봉급생활자, 하급 공무원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니 이중에서도 가장 후자인 '하급 공무원'에 해당하는 소시민이 되겠다.
1945년 10월 21일. 미군정청 산하 경무국이 창설된 이래 올해로 76주년을 맞은 경찰의 날 조차도 철저하게 소시민적인 하루를 보냈다. 이번 주 내내 감기 증상으로 어린이집도 못 보내고 연가, 반가를 써가며 돌본 아이들의 진료를 보러 아침 일찍 채비를 해 소아과에 갔다가 야간근무를 마치고 아침에 퇴근한 남편에게 육아 인수인계를 하고 출근을 하는데 까맣게 잊고 있었던 죽마고우의 SNS 생일 알람이 뜨기에 짧은 축하 메시지와 함께 부랴부랴 기프티콘 하나 보내고 출근해서 민원실 업무를 했다.
경찰서에서 스치듯 마주쳤던 예장을 하고 정복을 입은 지구대장님의 모습을 보고 잠시나마 경찰의 날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지만 평소보다 민원실이 바빴던 탓에 경찰의 날이라고 민원실 동료 직원분의 따님이 보내주신 축하 케이크도 점심때가 되어서야 짬이 나서 초도 불고 커팅도 할 수 있었다.
보통 사람들이 '소방관'이라고 하면 흔히 화재현장에서 방화복을 입고 불길을 진압하는 이미지를 떠올리듯이, '경찰'하면 신고 처리하고 대민활동을 하는 모습을 상상할 텐데 실제 내부행사에서는 민원실, 상황실 같은 대민접촉(민원응대 관련) 부서는 업무공백을 우려해서 많이 배제되곤 한다. 개인적으로 행사 참여보다는 사무실에 박혀있는 쪽이 적성에 좀 더 맞아서 속 편하기는 한데 한편으로는 안타까운 마음도 있다. 경찰서 대표번호로 전화하면 주간에는 민원실이, 야간에는 상황실이 전화를 받는 만큼 어찌 보면 경찰서의 얼굴인데 정작 현실은 눈썹 정도 되는 것 같다. 없으면 허전하고 전체적인 인상을 좌우하기는 하는데 묵묵히 제자리를 지키는 게 본연의 임무라서 평소에는 중요성을 잊고 사는 부서랄까.
오늘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보이스피싱에 울고, 범칙금에 핏대 세우고, 음주운전은 했으나 면허취소처분은 억울하다며 행정심판 운운하는 다양한 군상들을 마주하며 보낸 쏜살같은 하루.
바삐 사느라 시시하게 지나가버린 결혼기념일처럼 딱히 대단한 이벤트를 기대한 건 아니었지만 이대로 흘려보내기는 아쉬워서 혼자 자축하며 질척거리는 중.
평소에는 평범한 기자였다가 옷을 갈아입으면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는 슈퍼맨처럼, 집에서는 그냥 애엄마지만 출근하고 근무복을 입으면 초면인 타인에게 신분증을 요구하고, 범칙금을 부과하고 요건에 따라 상대방이 운전을 할 수 없게도 때로는 할 수 있게도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부여되기에 기껏해야 몇백 그램에 지나지 않는 제복의 엄청난 무게와 상징적인 의미를 다시금 새겨본다. 30분도 채 남지 않은 경찰의 날에 기침 때문에 깊이 잠들지 못하고 밤늦도록 뒤척거리는 아이의 등을 토닥이며 더 멋진 이 조직의, 이 사회의 구성원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