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이 사라진 요금

어디 갔어? 어디?

by 야초툰

그날은 나에게 운수 좋은 날 같았다.

목요일 오전 7시 날씨 맑음 오늘 일이 끝나면 다음날은 쉬는 날이었고 남편도 같이 쉬는 날이라서 오랜만에 '퇴근 후에는 남편이랑 같이 맥주 한잔을 마셔야지!'라는 즐거운 생각으로 출근길을 나섰던 것 같다.


내가 횡단보도를 건너자마자 마치 나를 기다렸다는 듯이 버스가 도착했고 열린 문 사이로 멀끔하게 정장 입은 사람들이 숨 막히는 고속도로를 뚫고 가기 위해 서로가 서로의 버팀목이 되어 서 있는 훈훈한 모습들이 보였다.


그 속을 가방을 방패막 삼아 비집고 들어가니 나도 그 일원이 된 것 같은 느낌에 쿨하게 엄지를 머리 높이 들어 핸드폰으로 메일을 확인을 했다. 읽지 않은 메일 중에 ‘허대리에게 인수인계’라고 적혀있는 메일의 첫마디가 어제는 특별한 일은 없었어임을 확인하고는 이내 안도의 숨을 쉬었다.


매일 사건 사고가 끊이질 않는데 그래도 오늘은 시작이 좋다며 다시 그 메일을 안 읽음 표시를 하고 후다다닥 버스에서 내린 기억까지 모든 게 완벽했다. 심지어 호텔 앞에서 시간을 확인하니, 다소 이른 시간에 직장에 도착해 버린 게 아닌가?


'차암나 이! 나란 성실한 허 대리'에게 칭찬을 하면서, 호텔 근처 스타를 봤을 것 같은 카페에 들어가 오늘은 당신에게 좋은 일들이 생길 것이라는 문구가 나오고 있는 모니터를 보면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하는 그런 행복한 하루를 꿈꾸는 아침이었다.


“여러분 굿 모닝이야~”


야근조 직원 2명과 오전 조 직원 2명이 나를 쳐다보고 인사했다. 그중 한 명이 나에게 “대리님 오늘은 정말 조용한 날....” 갑자기 복합기 소리가 베토벤의 고향곡 5번 운명처럼 요란하게 들렸다.


잉~칙 잉~칙 이이 이잉~ 철컥 철컥


요란하게 울려대는 복합기 소리는 마치 종이를 철컥철컥 체포한 후에 후두두두 종이를 뱉는 것 같은 느낌에 평소에는 하지도 않을 농담을 내 자리에 앉자마자 했다.


“뭐야 ~일 복 많은 내가 출근했다고 알림을 울려주는 건가?"


내 어색한 웃음 연기를 참지 못하고 사무실 막내가 뛰쳐나가 프린트된 종이를 5장을 들고 자리에 앉았다.


“하. 하. 하. 그런가 봐요 대리님!! 다 여행사 예약이네요 제가 빨리 넣을게...”


“넣을게? 반말을 하면 안 되지 신입아 오늘은 내가 기분이 좋아서 그냥 넘어갈게 하하하”


이때까진 정말 기분이 좋았었다. 나는 억지웃음이 어색해서 뒤를 돌아봤는데 신입의 표정이 마치 못 볼 걸 본 것처럼 새하얗게 질려서 여행사 팩스 5장을 들도 있었다.


“대... 대리... 님..... 이.. 방금 들어온 팩스에 0이 하나가 없어요!”


"에이~0 이 하나가 없다니!! 신입아! 0이 도망가기라도 했다는 거야? 거 농담이 너무 심한 거 아니요!

하. 하. 하 "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컴퓨터를 켰지만 등 뒤에 느껴지는 싸한 느낌에 아까 ‘허대리에게 인수인계’ 메일을 다급하게 찾기 시작했다. 불안한 기분에 손가락이 미친 듯이 떨리기 시작 했고 혼잣말로 마치 저주에 걸린 사람처럼 말을 더듬으며 중얼거렸다.


“0 이 없..없..없다니 말이 안되지 그럼 암 그럼”


신입 옆에 앉아 있던 선배 직원이 떨리는 손으로 그 종이들을 가져오면서 다시 말했다.


“대... 대... 리 님... 우리 호텔에 35,000원짜리 객실이 있나요?”


“머?!! 우리 호텔에 무슨 35,000이?”


나는 드디어 직원이 들고 온 종이를 쳐다보았고 일십백천만? 만? 끝인 객실요금 그러니까 떡하니 35,000원 금액이 찍힌 여행사 예약 요청서 5장이 보였다. 말이 되는가? 35,000원이!! 밤 사이에 0이 도망가지 않고서야!! 그 종이를 보고서야 정신이 들었던 것 같다. 이건 실수다 아니 대 재앙이다. 이순신 장군이 되어 다급하게 직원들을 향해 소리쳤다.


“제군들 여행사 사이트 들어가서 요금 당장 다 막아! 5장 모두 같은 여행사 상품이니까 그곳으로 들어가서 빨리 가서 요금 닫으시오!“


“아!! 네..”


네 명의 직원들은 황급히 모두 그 사이트를 클릭하는 갈 확인 하고서야 나는 다급히 그 허대리에게 인수인계라는 메일을 열었다.


DEAR 허대리~

허대리에게 인수인계

나야 염대리!! 어제는 특별한 일 없었어.

그래서 내가 오랜만에 여행사 요금을 7월 말까지 세팅을 해봤어

나 잘했지?ㅋㅋ 알지?

내가 한 거 출근하면 확인해 줘~


어제 본인이 여행사 요금을 세팅했다는 그 앞에 싸한 단어가 불쑥 내 눈으로 튀어나왔다. 나는 조용히 그 단어를 곱씹어 봤다.


'오랜만에'


때 마침 J부장이 사무실 문을 열고 출근했다.


“굿모닝 여러분~! 오늘은 날씨가..”


J 부장님과 함께 여행사 요금 닫기 전에 추가적으로 예약된 요청서 5장이 연속으로 프린트되었다. 그와 동시에 이 사태를 그에게 알려주는 것처럼 용지 걸림을 알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하하 허대리가 나오니까 예약이 쏟아서 들어오는군 아 여기 용지 걸려서 내가 가져다줄게.... 근데... 요금이... 조금 이상한.. 한.. 데?”


나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J 부장을 쳐다봤고 그와 나는 마치 사무실에 공기가 멈춘 듯 숨죽였다.


“부장님 죄송한데 지금은 해결이 먼저여서 해결하고 보고 드리겠습니다!”


“아.. 아.. 아... 어.”


당황스러운 상황에 더 당황한 J 부장은 흔들리는 눈동자를 하고 사무실로 들어갔다. 일단 직원들과 나눠서 여행사 사이트 들어가서 일단 7월 요금을 모두 판매중지 버튼을 눌렀고 불행인지 다행인지 한 여행사 사이트만 0이 없었고, 잘못 들어온 예약 건은 총 10건이었다. 이 사실을 모르는 김 과장님이 굿모닝을 외치며 해맑게 웃는 얼굴로 출근했다.


“모두들 좋은 아침~”


신입직원이 과장님의 얼굴을 보자마자 갑자기 속이 안 좋다며 화장실로 뛰어갔다. 사무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김 과장이 우리에게 물었다.


“다들 얼굴이 왜 그래? 무슨 일.. 이야?”


“과장님... 큰 큰일 났어... 정말 대형 사고야!”


J부장이 자기 사무실에서 큰 소리로 소리쳤다.


“보고 받는 데로 김 과장 내 사무실로 들어와!!”


나는 불현듯 현진건의 소설 운수 좋은 날 구절이 생각났다.


설렁탕을 사다 놓았는데
왜 먹지를 못하니...
어쩐지
오늘은 이상하게 운수가 좋더니만


나에게 자초지종을 보고 받은 김 과장님은 터덜터덜 J부장 사무실로 들어갔다. 과장님에게 처음 본 그 모습 은 마치 자신의 자식이 학교에서 사고를 쳐서 울린 전화를 받고 다급하지만 조용히 교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학부모의 모습 같았다. 그녀는 자신의 등을 곧게 펴지 못했고, 시선은 바닥을 향하면서 조심스럽게 부장님의 사무실 문을 똑똑 두드리고 들어갔다.


보통 호텔에서 작은 여행사 예약 요금은 날짜를 정해서 수기로 한꺼번에 입력을 했다. 그래서 실수를 방지하고자 여행사 요금 준비 파일을 엑셀로 만들어, 셀마다 수식을 걸고 그곳에 숫자를 타이핑하면 수수료를 제외한 입력해야 하는 금액이 나오는데, 그 금액을 복사 붙여넣기 해서 여행사 사이트에 입력한다. 그래서 0을 빼고 넣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사건이 발생되었고 김 과장과 나는 코난 도일이 되어 어제 염대리가 한 일들을 추리해 보았다.


도대체 단추는 어디서부터 잘못 끼워졌을까?



#실수의 첫 단추


여행사 요금 업무를 오랜만에 한 염대리는 엑셀의 준비 파일을 켜지 않았고, 바로 사이트에 입력을 했던 것 같았다.-> 엑셀 파일 업데이트 날짜가 일주일 전 날짜였다.


#실수의 두 번째 단추


어제 너무 한가해서 할 일이 없었으므로, 인수인계장을 적어야 하는데 쓸 말이 없어서 한 줄을 채우고자 그 일이 화근이 된 것이었다.-> 진짜 하려고 했다면 5개 사이트 다 했을 텐데 한 여행사 사이트만 요금 변경했다.




#실수의 마지막 단추


누구나 퇴근하기 전에 급하게 한일은 사고로 이어지기 마련이고, 다음이 또 본인의 쉬는 날이었기 때문에 빨리 하고자 350,000 일일이 입력하는 대신 한번 잘못 입력한 35,000을 복사하여 7월 전체 요금 적용을 눌렀던 것이 문제였던 것 같다. 그리고 신나서 컴퓨터를 끄고 퇴근했으리라 -> 여행사 요금 관리자 목록에 변경된 요금 적용 시간이 17:55 전체 적용이라고 기록되어 있었다.


결국 모든 단추가 잘못 끼어져 있었다. 여기까지 과장님과 내가 생각한 수사의 결과였고, 사고 친 본인의 핸드폰이 꺼져 있었기 때문에 사실을 확인할 수가 없었다.


J부장 사무실에서는 정적이 흘렀고 김 과장의 얼굴이 회색이 되어 나왔다. 그리고 그 뒤로 그 사실을 총지배인에게 보고 해야 하는 J부장의 얼굴이 처음으로 안쓰러워 보였다. 아침 미팅이 길어지는지 J 부장이 내려오지 않았고 혹시 여행사에서 해결해 줄 수 있을까 싶어서 여행사에 전화했지만 돌아온 차가운 답변 “호텔의 실수로 잘못된 요금이 노출되어 들어온 예약 건에 대해서는 호텔이 직접 손님과 연락해서 해결해야 합니다. 였다.


심지어 저희 여행사에서는 요청 주신 건에 대해서는 도와드릴 수 없습니다. 라는 차가운 말투에는 조금 울컥도 했다. ’우리는 예약 대행 수수료도 내는데 문제가 생기면 왜 맨날 호텔에서 해결하라고 하나요?‘라고 생각했지만 입도 뻥긋 못했다.


나 역시도 손님에게 뭐라고 설명할지 답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3시간 후 얼굴이 노래진 J부장이 사무실로 돌아와서 우리를 쳐다보지도 않고 자기 사무실 문을 쾅하고 닫고 들어가서 단체 메일을 보내왔다.


DEAR RSVN TEAMS ,

오늘 저희 부서에서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이 일어났습니다!!! 앞으로는 여행사 요금 업무는 한 사람을 정해서 전적으로 그 사람이 다 하고 요금을 세팅한 후에 옆에 있는 사람이 그 설정된 요금을 재 확인하고 최종적으로 김 과장이 다시 재 확인을 하는 방안으로 앞으로 일어날 일을 방지하도록 합시다. 그리고 들어온 10건의 예약에 대해서는 윗분들의 지침 사항을 아래와 같습니다


- 손님들에게 일일이 전화해서 호텔 시스템 오류로 잘못된 요금으로 예약되었다고 취소를 권유한다.

- 만약 취소를 못하겠다고 하면 호텔 직원가 +클럽 라운지 이용 혜택을 제공한다.

- 그 혜택 또한 거절 시 추가 호텔 포인트 제공까지 해서 어떻게든 그 예약을 취소한다.

- 그 마저 안 되면 다시 확인 후 전화드린다고 한다.


몇 개의 시나리오가 더 있었지만, 나는 마지막 줄이 제일 가슴에 와닿았다. 앞으로 해당 건 관련 모든 손님들 연락은 김 과장이 전담해서 할 것! 그 메일을 읽은 김 과장은 갑자기 긴 한숨과 함께 끊었던 담배를 하나 피고 와야 할 것 같다고 사무실을 나갔다.


그녀가 나간 후 갑자기 내 일이 될 것 같았을 때에 밀려왔던 그 불안함 초초함이 사라지고 김 과장을 향한 측은지심이 몰려왔다.


“불쌍해... 오늘 그녀는 욕받이가 될 거야.... 그래도 그래서 그녀는 오래 살 거야. 오늘 평생 먹을 욕을 먹을 테니까”


한참 후 들어온 김 과장은 마음을 다 잡은 듯 손님들에게 전화하기 시작했다.


-띠 링링 링링-


“아.. 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취소를... 부탁드립니다. 네네..”


그나마 절반 이상의 손님들은 어쩐지 요금이 이상해서 예약해 봤다고 바로 취소를 했고 단, 한 명의 손님만이 완강히 취소를 거부했다고 했다. 그 손님은 의사였고 호텔과 손님의 신뢰가 무너지면 안 된다며 과장님을 한 시간 동안 훈계했다. 그 전화가 끝난 후 과장님은 다시 담배를 하나 더 피고 와야 할 것 같다고 나갔다.



다시 사무실로 돌아온 과장님에게 나는 위로한답시고 크게 소리쳤다.


"아니 3만 5천 원짜리의 그 신뢰 정말 엄청나네. 어! 차라리 10만 원 더 주고, 우리 호텔 연간 회원권을 가입하시면 되겠네 신뢰의 끝판왕 쿠폰 북을 받게 될 것이니~무료 호텔 숙박권이 1장이 나오고 호텔은 20% 항시 할인에 레스토랑 식사 시 3인 식사 시 1명은 무료고요 투숙 시 VIP 대접에 얼마나 좋으냐! 그냥 신뢰를 받는 회원이 되면 되겠네"


그때 과장님의 눈이 빛났다.


"이 미친개 넌...!!"


왕왕 짖어대는 나를 향해 보통 때라면 등짝 스매시를 날려야 할 타이밍였다. 잔뜩 움츠려 그 등짝 스매시를 어떻게든 피하려는 나에게 달려와서 와락 나를 안았다.


“넌 천재야!! 지니어스!!”


영문을 모르는 나는 고개를 갸우뚱했었지만, 이내 과장님과 손님의 통화에서 그 이유를 찾았다.


“아 손님~ 저도 신뢰가 중요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네. 네 그래서 말인데 그런 저희 신뢰를 1년 동안 보여드릴 수 있는 저희 호텔 멤버십이 있는데 이번 예약 취소하시고, 예약하신 금액 3만 5천 원(*부서 비용으로 처리할 수 있었다.) 금액을 뺀 나머지 금액 10만 원만 내시면 가입할 수 있게 제가 조치해 두겠습니다. 추가적인 사항은 메일로 보내드릴게요. 네 맞아요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손님은 예약 전용 특별 라인과 호텔 무료 숙박권도 1장을 받으시는 거예요.”


그렇게 그는 우리 호텔 연간 회원이 되었고 김 과장이라는 전용 예약 라인이 생겼다. 모든 일이 마무리가 되어 우리 10건 다 해결했다고 좋아하고 있을 때“똑똑똑” 총지배인이 우리 부서에 문을 두드렸고 들어오자마자 다짜고짜 소리쳤다.


"아 여기가 3만 5천 원짜리 객실을 파는 3만 5천 원짜리 예약실 인가?”


썩은 미소와 함께 우리를 비웃는 듯한 그의 웃음소리가 사무실 가득 채워졌다. 갑자기 사무실 공기가 싸해졌다. 아무도 말하지 못했다. J부장은 자기의 사무실 안에서 들렸을 그 말을 묵인한 채 조용히 사무실에 앉아만 있었다. 어쩔 수 없이 김 과장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총지배인에게 말을 걸었다


“아 총지배인님 저희가 다 해결을 해서 지금 메일을 쓸려고 했는데...”


“해결이 중요한가 특급 호텔에서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게 중요하지!”


그는 차갑고 냉담한 어조로 대답한 후 아무 말하지 않고 사무실을 쾅하고 닫고 나갔다. 그 순간 최고의 부서에서 일한다는 그 자부심이 한 번의 실수로 '삼만 오천 원짜리 예약실에 일하는 직원'이 되어 나락으로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수치스러움이 목을 타고 머리까지 타고 올라오는 것만 같았다. 나는 그 뒤로는 삼만오천원짜리 부서에서 일 하는 직원이 된 채 한마디도 하지 하지 않다가 퇴근했다. 다음날 집에서 쉬고 있는데 염대리에게 문자가 왔다.


“야 어제 일 들었어 수고했다 그런데 윗분들도 그래 사람이 살다가 실수도 할 수 있지 로봇도 아닌데 그럴 수도 있지 난리가 났었다며?”


그 말에 나는 차마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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