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번 인생의 터닝 포인트

물음표의 답은 느낌표

by 야초툰

‘그래 당당하게 우리 호텔은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한다던 그 지배인의 모습이 내가 꿈꿔 온 진정한 호텔리어의 모습이었어! 그럼 지금의 나는 죄송합니다만 반복해서 말하는 앵무새와 같지 않을까? “


이미 7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내가 생각한 지금의 나는 어떻게든 우물을 탈출하려고 '팔짝팔짝 뛰고만 있는 개'의 모습과 같았다.


그렇게 뛰어도 보고 썩은 동아줄도 타고 올라가 봤지만, 결국 마주하는 건 우물 안 물이 말라버린 바닥뿐이었다. 그리고 매번 그 우물 안 바닥을 마주하면서 나의 인내심의 바닥을 숫하게 마주치고 있었고 자존심에는 셀 수 없는 스크래치가 그어져 있었다.


그러다 보니 나의 체력도 예전의 내가 아니었다. 20대 때에는 알람 소리가 울리면 로봇처럼 자동 발사하며 일어났던 개는 어느새 사라지고 잠이 쉽사리 깨지 않아 5분만 더라고 외치며 부은 눈을 뜨지도 못하는 개가 다시 소리로만 알람을 다시 맞추고 있었다. 그렇게 겨우 일어나면 뭐 하는가? 그 이후의 모습은 더 가관이다.


나의 두 눈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손으로 안경을 더듬거리고 찾지 않아도 시계를 볼 수 있는 라섹 수술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어둠 속에서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그것은 아마도 미리 예견된 일이었는데, 내가 12시간 이상 컴퓨터를 봐야 하는 직업을 갖고 있었으므로, 수술 부작용인 야맹증이 생기는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그래서 그 야맹증에 수반되는 불을 켰을 때 눈이 시릴 정도로 심한 눈부심 현상으로 쉽게 불을 킬 수도 없게 되었고, 그것이 내가 시력을 찾았음에도 불도 켜지도 못하고 내 집인데도 불구하고 마치 도둑처럼 이곳저곳을 기웃거릴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그렇게 아무 옷이나 집어 입고는 눈곱도 떼지 못한 채 매일 입는 검은색 패딩을 마지막 착장으로 완성시키고 집 밖으로 겨우 나왔다.



새벽 4시 30분


해가 뜨지 않아 아직 차가운 공기를 머금은 새벽 공기가 쓸쓸해 나는 검은 패딩의 양팔을 꼬아 내 몸을 더 움츠린다. 그 모습은 마치 검은 누에고치와 같았다.


그렇게 향한 버스 정류장 앞에는 늘 첫차를 타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검은색 패딩을 입은 단체가 있었다. 그들의 눈은 하나 같이 반쯤 감겨 있었는데 어떻게든 잠을 깨려 핸드폰의 무언가를 보거나 듣거나 읽고 있었다. 그리고 나도 아무렇지 않게 그 무리들에 끼어 오늘 하루의 일당을 어떻게든 채우려 입을 덜덜덜 떨며 눈보다 입술을 먼저 깨우려 깨물고 있었다.


그렇게 첫 버스가 출근용 봉고차가 되어 나를 목적지에 떨궈주고 나면 나는 7년 동안 출근해서 이미 몸이 먼저 가야 할 바를 알아버린 길을 아무 생각 없이 걸어서 직원 출입구를 카드를 찍고 들어간다. 그리고 그곳엔 유니폼실 실장님이 어김없이 나를 반겼다.


“오늘도 똑같은 옷이네 허대리!”


유니폼 실장인 그녀는 유니폼실에서 일하기 때문에 옷에 대한 기억력이 좋은 편이었다. 그녀의 말에 멋쩍어진 내가 "네.. 하하" 웃어 보이니 실장님도 "허허" 웃으며 태연하게 85번 유니폼을 블라우스와 같이 꺼내 내손에 들려주었다.


“이게 유니폼인지 허대리가 입고 다니는 옷이 유니폼인지 모르겠다니까!”


또 한 번 실장님의 비수와 같은 농담에 오늘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감지하고 차마 나의 이를 들어내며 덤비지 못 한채 줄행랑을 치려고 했지만 실장님은 그런 나를 이미 파악하고 냉큼 내가 들고 있던 블라우스 소매를 당기며 경고와 같은 말을 했다.


“아니 그 예약실 부서는 왜 다들 입사만 하면 살이 찌는 거야? 그 유리 대리 있잖아. 홍보 부서로 간 그 사람도 얼마나 유니폼을 늘려대던지 나중에는 훅을 달 때가 없더라고! 허대리도 곧! 이! 야! 살 좀 빼야겠어!”


그런 그녀의 말에 부정도 긍정도 할 수 없었던 나는 어색하게 웃으면서 매일 하는 흔한 거짓말을 했다.


"해야죠... 다이어트 오늘부터"


그녀가 잡고 있던 내 블라우스 소매를 힘주어 당겼다. 어쩌면 실장님도 이제 어렴풋이 눈치를 채고 있는 것 같았다. 예약실에서 전해 내려오는 슬픈 전설을.... 호텔 예약실엔 슬픈 전설이 있었다. “애인이 있었다면 3개월 내에 헤어질 것이고, 살이 안 찌는 게 고민이라면 그 고민도 곧 사라질 것이다” 그 전설이 생긴 이유에 대해서 내가 추리해 보면 먼저 애인이 사라지는 건 예약실은 3교대 근무이기 때문에 같은 서울에 있음에도 발생되는 시차로 인해 애인과 3개월 안에 헤어지게 되었고, 살이 찌는 건... 오징어 짬뽕 같은 날들이 계속되어서 술을 끊을 수 없어서 그 슬픈 전설이 시작되지 않았을까 싶었다. 그리고 이제는 여분의 유니폼들이 없으니 15명 다 다이어트해야 한다고 비수처럼 꽂히는 유니폼실 실장님의 목소리를 뒤를 하고 나는 직원 탈의실로 향했다.


그렇게 소리 지르는 그녀를 보며 어쩌면 우물 안에 개가 우물 안에서 탈출하게 된 것이 본인이 탈출하겠다는 의지가 아니라 더 이상 유니폼이 본인에게 맞지 않아서 그러니까 우물 안에 물이 가득 차게 돼서 어쩔 수 없이 몸이 먼저 떠오르게 된 것은 아닐까 싶어졌다.


어쩌면 나도 곧 뜨겠군 라는 생각을 하며 나는 잠기지 않은 치마 은색 훅을 숨을 참고 힘껏 잡아당겨 간신히 자크를 채우고 사무실로 들어갔다. 어색하게 인사를 하며 들어간 사무실에 3개월 차 신입 직원이 오셨냐며 웃으면서 팩스 머신에서 나온 종이를 두 발로 걸어서가 아닌 의자의 네 바퀴를 돌려서 가지러 갔다가 의자에 앉은 채로 엉금엉금 다시 자리로 돌아가는 네 바퀴 굴리며 보행을 마주하게 되었다.


“제발 걸어서 좀 다녀라!”


어쩌면 오징어 짬뽕 같은 날의 연속이 아니라 그 신입의 모습이 살찌는 실제 문제의 정답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았다. 사실 우리는 한번 앉으면 일어나지 못하는 병을 입사 3개월이 지나면 앓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전염병에 걸린 것처럼 번지더니, 이제는 팩스 소리가 나면 다들 '제가 할게요' 말과 함께 사무실에는 바퀴로 보행하는 소리만 울리게 되었다.


"후드 드드드 드드드드"


그러다 보니 이제는 이 바퀴 보행이 우리 부서 20명의 유니폼을 다시 다 맞춰야 하는 비용으로 점점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되었고 나중에는 총지배인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었다. 그래서 급하게 소집된 예약실 부서 유니폼 비용 절감 방안으로 총지배인과 임원진들은 옥수수 밭에서 옥수수 터는 회의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불행히도 그 탈탈 털린 그 옥수수들이 팝콘이 되어 우리 부서에 날아오게 되었다. 피트니스 센터에서 사용하다가 버리지 못해 내려온 러닝머신이 내 옆자리에 놓이게 되었다.


물론 이유는 명목상 기부였다.


"예약실 직원들의 건강을 위해 러닝머신을 총지배인이 기부함"이라고 써져 있었지만 실상은 "이제 쓰레기를 버리려면 쓰레기 처리 비용을 내야 해서 니 옆에 놓음"였다. 심지어 이 아이디어가 우리 부서의 부서장 입에서 나왔다는 말을 듣고는 '그럼 니 사무실 안에 넣지? 왜 내 집 앞에 쓰레기 처리장을 놓았냐!'라고 반대 시위를 하고 싶어졌다.


하지만 그 마음은 바퀴로 돌아다니는 직원들을 보고 사그라졌다. 아니 팩스를 가지러 걸어가기 싫어서 바퀴 보행을 하던 이들인데 러닝머신을 타러 내 옆자리까지 걸어온다니 말이 안 되었다. 그리고 가뜩이나 바쁜데 러닝머신을 타면서 전화를 받으라니 정말 실현 불가능한 말들이었다. 그렇게 내 예상처럼 켜지지 않은 러닝 머신은 유니폼 걸이가 되어 우리 사무실에서 몇 개월 방치되다가 다른 호텔의 피트니스 센터에 기부되었다. 하지만 러닝머신은 내 옆을 떠났어도 내 마음속에 먹구름을 계속 생겨났다.


"우리 부서는 이렇게 엉덩이 한 번도 못 떼는 바쁜 부서인데, 어떻게 우리 부서의 장이라는 사람이 회의에 가서 러닝머신을 타면서 일할 수 있다며 한가한 부서를 만들어 버릴 수 있지?"


'어떻게?’


그렇게 내 머릿속을 떠다니던 생각은 결국 비구름이 되어 내 마음속에 장마전선을 만들었고 우물 안에서 나올 방법을 몰라 짖기만 했던 개는 어느새 소나기로 채워진 물로 인해 우물 밖으로 둥둥 떠오르게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우물을 밖으로 나와서야 비로소 우물에 비친 변해버린 자신의 모습을 비춰 볼 수 있었다.


“아… 이게 나야?”


우물에 비친 모습은 다크서클이 내려와 움푹 파인 눈에 얼굴에 붉게 홍조가 올라와 있었으며 일을 하기 위해 매일 쓰던 인상 때문인지 미간에 주름이 깊게 파여 있었다. 그리고 컴퓨터만 향하던 나의 목은 이미 휘어서 거북이 목처럼 변해 있었다.


그렇게 큰 바다를 꿈꾸던 그 개는 이제는 새벽에 도둑처럼 옷을 입고 출근해서 엉덩이 한번 떼지 못하고 바퀴 보행으로 사무실을 휘젓고 다니는 거북목을 가진 개가 되어 있었다. 그렇게 그날 나는 김 과장이 출근하자마자 그녀를 직원 식당으로 불러서 조용히 말했다.


"김 과장 나... 이번 달까지만 일하고 싶어..."


영원한 탈출을 선언했다. 그 말을 들은 김 과장은 이런 날을 예상했다는 듯이


"네가 항상 찾던 물음표의 답을 찾았구나..."


나는 못 떠나지만 너는 내가 보내줄게라며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그렇게 내 생애 가장 찬란했던 기억들이 묻어 있는 곳을 떠나게 되었다. 물론 호텔을 나온 뒤로도 여러 호텔로 이직하며 일했지만 GRAND FOREVER FIVE STAR HOTEL 만큼 나를 빛나게 해주는 곳은 없었다. 그래서 떠났음에도 불구하고 그곳의 소식을 들을 때면 나도 모르게 진심으로 응원하게 되었다.

"너 만큼은 항상 찬란하게 빛나는 존재로 그 자리에 있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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