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 배고파

프롤로그

by 야초툰
“밥은 먹었고?"

엄마 전화를 받을 때마다 들려오는 질문이었다. 오늘 하루가 어땠는지, 그 지랄 맞다던 상사는 오늘 괜찮았는지가 아닌 늘 밥을 먹었는지가 먼저 들려왔다. 어쩌면 그 질문은 비록 지금 몸은 힘들어도 따뜻한 밥 한 공기를 후하고 불어서 넘긴다면 모든 게 괜찮아질 거라는 엄마의 현명하고도 마법 같은 주문이 아니었을까?


그 주문은 어느새 아침에 향긋한 올리브유를 뿌려 먹는 사과처럼, 비가 미친 듯이 쏟아지는 그런 겨울날 황급히 들어간 커피숍에서 마시는 코끝부터 따뜻한 커피처럼 엄마만 보면 "엄마 나 배고파"라는 고봉밥 연쇄 살인자가 할 법한 대사를 무의식적으로 하게 만들었다


그건 아마도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지만, 30년 넘게 나에게 힘을 주고 용기를 주었던 엄마가 해준 음식에 대한 기억의 화학적 반응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그 화학적 반응이 맹렬히 폭발했던 기억도 있었다.


어쩌면 "우리가 배달의 민족이라고 불리는 이유가 어머니들이 자식이 어디에 있던 보내주는 택배에서 시작된 게 아니었을까?"라는 의심이 들게 되었던 기억...


두바이에서 호텔리어로 일을 할 때였다. 호텔 직원 식당에서는 외국인 직원들을 배려한다며 매주 금요일마다 그 나라의 음식을 해주곤 했다. 하지만 그 메뉴엔 한식은 없었다. 그리고 호텔에 일하는 한국 직원이 총 4명이었기 때문에 앞으로도 없을 예정이었다.


하지만 누가 아는 맛이 제일 무섭다고 했던가? 비가 푸석푸석 내리는 날에는, 삼겹살에 소주 한잔하고 싶어 미친 사람처럼 허공에 빈 커피잔을 올려댔고, 김치를 먹고 싶을 때는 중국인 친구가 건네주는 고춧가루 간간이 뿌려진 자차이에 간신히 마른 입술을 적셨다.


그렇게 한식 금단 현상으로 인해 두바이에서의 고봉밥 연쇄 살인마가 탈옥을 꿈꾸게 되었을 때쯤, 한국에서 갈색 상자 소포가 도착했다. 혹시나 자신이 보낸 음식이 샐까 봐 테이프가 떡칠된 비닐 사이로 어렴풋이 낯익은 글씨체가 보였다.


“항상 보고 싶은 딸에게 사랑을 듬뿍 담아”

그 글씨에 왈칵 쏟아진 눈물을 룸메이트 한국인 언니에게 들킬까 봐 어설프게 흠치고, 아까부터 그 택배를 보며 며칠 굶주린 개처럼 침을 흘리고 있는 언니를 위해 수술을 시작했다. “메스! 아니 가위 주세요”를 외치고 신중하게 수술을 집도한 결과, 몇 번의 가위질로 익숙하고 강렬한 향이 기다리던 우리들의 코를 매만져 주었다.


그때부터는 누가 먼저였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허겁지겁 봉투에 묻어 있는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냄새만 맡아도 알 수 있는 엄마표 김치였다. 우리는 그렇게 헤어진 연인을 다시 만났을 때보다 격한 반가움으로 언니와 나는 그 빨간빛 도는 봉투를 힘껏 끌어안았다.

얼마나 애지중지하면서 먹었던지, 라면 먹을 때 한 점, 카레 위에 한 점, 자차이에 대한 보답으로 친구에게 한 점, 힘든 단체 행사를 끝내고 숙소에 돌아왔을 때 늦은 저녁에 먹은 김치 한 점은 다음날 몸살로 몸져누워 있었을 휴일을 개운하게 씻겨 주었다.


비록 다른 외국인 친구들이 냉장고에서 마늘 냄새난다고 비난 하듯이 흘겨봤지만 상관없었다. 김치가 냉장고에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난 이미 천하무적이었으니까. 그리고 그 기억들이 이제는 내 몸에 고춧가루처럼 알알이 박혀, 김치 없이 못 사는 한국인을 1인을 탄생시켰다. 그렇게 모든 게 김칫국물에 물들듯 바뀌어 갔다.


어렸을 때는 김치를 물에 씻어 먹었지만, 이제는 세월이 지나 수육과 같이 먹게 양념 듬뿍 묻혀서 달라며 엄마에게 떼를 쓴다던가. 고등학생 때는 아침밥을 안 먹는다며 도망 다니던 딸은 어느새, 새벽부터 일어나 밥 달라고 어둠 속에서 식탁에 앉아 눈에 불을 켜고 소리 있는 농성을 하며 엄마의 방을 째려보게 되었다.


그런 사정을 모르는 아빠는 무엇을 해 준 것도 없는데 저렇게 덩치가 컸냐며 허허허 웃기만 했고, 아빠의 뒤통수 너머에 당신은 아무것도 모른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엄마가 서 있었다.


어쩌면 힘들었던 해외 생활로 지쳐있던 나에게 “이거 먹고 힘을 내!”라고 외쳐주기도 하고, 요리 못하는 딸을 위해 택배박스 가득 채워 보내면서 “황 서방 환불은 안 되네”라고 말하는 듯한 엄마의 음식은, 그냥 목으로 넘기는 반찬이 아니라 아직은 당신에게 어리기만 한 딸을 위해 다정함을 가득 담은 사랑이다.


그리고 이제 그 사랑의 레시피를 항상 배고픈 아들딸들에게 나눠주고자 한다.

온 마음 정성 가득 담아, 소리 질러~

엄마, 나 배고파!


*다음 화 예고:

엄마가 해준 최애 계란말이를 파헤치니…

그 속엔…00이 있었다.

다음 주 일요일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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