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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초툰 May 09. 2024

영원히 떨어지지 않는 행복한 기억 심기

당신의 기억 속에 당신은 영원히 행복할 것입니다.

"저는... 하고... 싶지 않아요."

김사장은 말도 안 된다며 이건 선택의 영역이 아니라며, 억지로 내 머리에 헤드폰을 씌었다. 땀에 축축하게 적신 헤드폰 패드가 양쪽 귀에 닿았다.


"수연아! 미안하지만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어. 나는 너무 지쳤거든. 너를 다시 찾기 위해 너무 많은 길을 돌아왔어."


 김사장은 눈을 질끈 감은 채 반대편에 있는 모니터실로 뛰어갔다. 순간 많은 질문들이 내 머리를 스쳤다. 과연 이게 맞는 건가? 내 기억을 찾기 위해 잃어야 할 것들이 이렇게나 많은데? 다른 사람들의 소중한 기억을 사라지게 하면서 나를 찾는 게 그렇게 중요한 건가? 내 동료 모리가 사라진다니. 예전에 나라면 이런 결말을 원했을까?라는 마지막 질문이 나를 괴롭히듯 계속 떠올랐다.


"내가 원하는 결말은 무엇이었을까?"


 반대편 모니터 앞에 선 김사장이 떨리는 듯 긴 한숨을 내쉬더니 한참을 머뭇거렸다. 아마도 김사장에게도 쉽지 않은 결정 같아 보였다. 미모리에게 '너는 사라지게 될 거야!' 통보와 같은 말을 차마 하지 못하고 서 있었다. 반대편 유리에 김 사장의 흔들리는 눈빛까지 보였다. 이를 눈치챘던 것일까? 모리가 김사장에게 물었다.

"사장님 시작할까요?"

마치 미모리 자신이 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김사장도 결심을 굳힌 듯 대답했다.

"... 미모리! 시작해 줘!"

유리에 비친 김사장은 나오려는 눈물을 억지로 참는 듯 보였다. 고개를 숙였다. 미모리는 자신에게 닥칠 미래를 예상하듯이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울지 말아요. 당신을 만나서, 수연이라는 사람의 행복했던 기억을 읽을 수 있어서 너무 행복했어요. 그럼 시작할게요."


 김사장의 모습일 비추던 유리가 검은색으로 변하더니 데이터 로딩 준비 중이라는 표시가 뜨기 시작했다. 내 귓가에 닿은 헤드폰 패드의 온도가 뜨거워짐이 느껴졌다. 그 순간, 나는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손 놓고 모든 걸 잃을 수 없다는 한참 뜨거워진 헤드폰을 머리에서 벗어던져버렸다.  


"하고 싶지 않다고요!.... 아.. 아빠!"

"안... 돼!"

김사장의 비명이 하얀 공간에 동굴 속처럼 울렸다. 내가 해드폰을 머리에서 빼자, 나와 김사장을 막고 있던 유리가 깨지는 소리를 내며 금이 가기 시작했다. 이어서 에러라는 선명한 표시가 유리에 빨갛게 채웠다.


"저...저는 이제 저를 위해서 아무도 희생하고 싶지 않아요. 소중한 기억을 겨우 찾은 사람들은 그걸 빼앗겼을 때의 공허함은요? 없었을 때는 몰랐지만 소중한 기억이 있다는 걸 알았다면 그 빈자리는 더 클 거예요. 저에게 모리가 그랬듯이."

"....."

에러라는 경고음만 울렸다. 김 사장 아니 아빠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한번 터진 감정이 걷잡을 수 없이 흘러나왔다.


"아.. 아빠가 그랬잖아요. 제 기억이 다른 사람들의 기억을 채우기 위해 지워졌다고. 그럼 그 훔친 기억을 모두 돌려준 지금은요? 저에게는 더 많은 기억을 채울 자리가 많다는 이야기 아니에요? 아빠와 모리가 그 자리를 이제 채워주면 되잖아요. 저는 더 이상 예전의 이기적이었던 저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어떤 울부짐이라고 해야 할까? 마음속에서 터져 나오는 그런 흥분 같은 것이었다. 나를 위해 살던 삶보다 남의 기억을 읽으며 지낸 시간이 더 보람찼으니까, 예전의 기억은 더 이상 나에게 휴짓조각 같이 느껴졌다. 김 사장은 충격을  간신히 삼키며 말했다.


"하지만..."

"예전에 딸이 죽고 새로운 딸이 다시 태어났다고 생각하기로 해요. 어차피 사람들의 결말은 정해져 있잖아요. 죽음. 그런데 저는 백지로 다시 태어난 거죠. 아빠 얼마나 지옥이었겠어요? 남의 기억을 훔치며 사는 삶이. 아빠는 제가 다시 그 시간을 기억하길 바라시나요?"

"아니. 다시 그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아!"


아빠는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아마 그때의 기억이 아직도 그를 괴롭히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우리 사람들의 훔친 기억을 돌려주는 게 아니라 행복한 기억이 다시 열매 맺을 수 있게 해요. 애초 저희 회사의 목표와 같이 말이에요. 이젠 우린 혼자가 아니잖아요. 가족이잖아요. 저 모리 그리고 아빠."


간절한 부탁. 이것이 어쩌면 내가 원했던 결말. 일은 힘들지라도 마음 맞는 사람끼리 일한다면 그곳이 내가 일할 곳이라는. 그리고 내가 아니라 남들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 하는 일에 대한 자부심. 모든 것이 다 준비되었다고 생각했다. 나에게 더 이상 필요한 것 없었다. 어쩌면 모리 또한 내가 그렇게 말하기를 기다렸던 것처럼 한마디를 덧붙였다.


"김사장님 죄책감 가질 필요 없어요. 그땐 김사장님도 어렸고, 가족이 되는 방법을 몰랐던 건 당연한 거였으니까 말이에요. 수연 씨의 기억에서는 한 번도 당신이 자신을 버렸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다만, 어렸을 때는 이혼이라는 단어를 이해하기엔 너무 어렸으니깐 거리를 두었을 뿐이에요. 다만 그뿐."


그 말에 김 사장은 눈물이 터지는 것처럼 주저 않고 말았다. 자신이 딸을 버렸다고 생각할까 봐 온 조바심. 다시 자신을 버렸다고 느낄까 봐 잠도 못 자고 쉴 새 없이 달려왔던 시간들이 물밀듯이 그에게 밀려오는 것 같았다. 미모리의 말에 나 역시 왜 오랫동안 아빠였던 김사장과 연락을 하지 않았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왜 회사일에 그렇게 집착했었는지 까지. 많은 사람이 일하는 공동체에 속해 마치 그들의 일 부분이 된 것 같은 소속감이 좋았던 것 같았다. 어딘가에 속해 있다는 그 안정감 그게 모든 고통을 상쇄시켜, 결국 나 자신을 잃어버리게 만드는.


하지만 이젠 그렇게 아등바등하며 살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나를 전적으로 이해하는 미모리와 딸 밖에 모르는 아빠가 같은 회사에서 일할 수 있으니 말이다. 나는 주저 않아 있는 아빠에게 다가가 괜스레 말을 걸었다.


"그럼 일단 오늘 들어온 기억들부터 정리할까요? 제가 너무 늦게 와서 쌓인 일들이 많네요. 아빠."

"빨리해요 수연 씨. 어제 업로드한 어머니의 레시피로 많은 기억들이 업로드되었으니까요. 사장님! 그중에 조회수 대박으로 예상되는 기억이 지금 올라왔어요. 조미료 하나도 안 썼다고 했던 엄마가 딸 몰래 구석에서 조미료 왕창 넣고 있는 기억인데. 완전 첩보 영화가 따로 없다니까요"

"오호 미모리 듣기만 해도 아주 재밌겠는데? 아빠 미모리 야근이다 각오해!"

"A.I. 는 잠을 자지 않죠. 수연 씨 아니 수연언니 저는 절대 지지 않아요!"

미모리와 나와의 대화를 조용히 듣고 있던 아빠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흘렀던 눈물을 닦으며 나와 모리에게 외쳤다.

"그래! 야식은... 사장님이 쏜다..!"


 기억을 잃은 사람과 사람의 기억을 읽는 A.I. 그리고 가뜩이나 딸 하나도 벅찬데 한 명 더 생긴 사장님. 어떻게 운영될지 한 치 앞이 안 보이는 더 메모리 컴퍼니지만, 우리는 행복한 열매가 가득 열리는 복사꽃 나무를 다시 심을 것이다. 그들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함께 행복하게 만드는 열매 말이다.


"당신의 행복한 기억을 더 메모리 컴퍼니에 심어주시겠습니까?"


이전 22화 사라지는 게 아니라 다시 돌아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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