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천씨의 병명은 뇌종양이었다.
인천에서 가장 큰 병원에서는 6개월을 넘기지 못할 거라 했다. 혜옥씨 혼자서 남편의 시한부 선고를 들었다. 갑천씨는 병원에 입원했다.
송년회에 나간 딸과 독서실에 있던 아들을 불러 앉혔다. 33평 아파트의 천장이 무너지는 듯했다. 때 묻은 지폐들로 쌓아 올린 벽이 흔들리는 듯했다. 이제 대출금도 다 갚고 빚 하나 없는 생활이 시작되려던 참이었다. 남매를 독립시키고 둘이서 산에 다니고 노래방이라도 하며 소박하게 살고 싶은 꿈을 꾸려던 참이었다.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렸다.
혜옥씨는 오열했다. 발버둥을 치며 나뒹굴었다. 짐승처럼 울부짖었다. 같이 울고 있는 남매가 보였다. 혜옥씨보다 커진 딸과 아들을 부둥켜안았다. 할 수 있는 일들을 해야만 했다.
갑천씨 머릿속의 암덩어리는 혜옥씨가 할 수 있는 일들의 범위가 아니었다. 혜옥씨의 일가친척을 수소문해 우리나라에서 가장 좋은 대학교 병원에서 수술 일정을 잡았다. 제나 엄마가 갑천씨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갑천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나 아빠의 도움으로 앰뷸런스를 타고 서울의 병원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내일로 수술 날짜가 잡혔다.
인천 병원에서의 마지막 밤이었다.
혜옥씨는 병원 생활 짐을 챙기고 하루라도 다리 뻗고 잘 겸 집으로 갔다. 딸이 갑천씨 옆에서 잠을 자기로 했다. 갑천씨는 자꾸만 몸이 간지러웠다. 입원이다 검사다 며칠째 지낸 병원 생활은 견딜만했지만 마음대로 씻지 못하는 것은 고역이었다. 머리도 가렵고 특히 자꾸만 온몸에서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딸에게 샤워하러 가겠다고 했다.
딸이 간호사에게 허락을 받고 왔다. 딸의 부축을 받으며 병원 목욕실로 향했다. 목욕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갑천씨는 딸에게 벗은 몸을 보이기 싫었다. 딸은 유리문 하나 건너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딸이 자꾸만 “아빠, 괜찮아?” 하고 불렀다. “응, 아빠 괜찮아.”라고 대여섯 번 대답했을까.
갑천씨는 자꾸만 잠이 쏟아졌다. 더 이상 갑천씨의 대답이 들리지 않았다. 딸이 문을 열고 들어왔고, 정신을 잃고 쓰러진 갑천씨의 큰 몸을 흔들며 소리쳤다. 딸은 휠체어를 가져다 갑천씨의 큰 몸을 싣고 병원 복도를 달렸다.
연락을 받은 혜옥씨가 도착해 보호자 수술 동의가 이루어졌다. 수술이 시작되었다. 갑천씨가 서울대병원으로 이동하기로 예정되어 있던 그 시간, 인천의 병원에서 갑천씨의 첫 번째 수술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