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천씨는 점차 의식을 잃어갔다.
혜옥씨는 갑천씨를 그냥 이렇게 두고 볼 수는 없었다. 서울대병원으로 가자고 고집을 부렸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신경외과 의사에게 갑천씨 머리를 보이기라도 하고 싶었다.
앰뷸런스로 이동한 서울대병원은 크고 넓었다. 건물은 오래되고 병실은 낡았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좋은 병원에서 두 번째 수술을 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신경외과 의사가 뇌종양 말기의 갑천씨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머리를 열었다가 닫아야 했다.
하루하루 스러져가는 갑천씨를 그냥 이렇게 보낼 수는 없었다. 도로 인천으로 가기로 했다. 집 근처 요양 병원으로 갑천씨를 옮겼다. 야트막한 언덕의 작은 요양 병원 중환자실에는 온통 노인들 뿐이었다. 갑천씨는 젊디 젊은 중환자였다.
혜옥씨가 일을 쉬며 갑천씨를 간병했다. 남매는 수시로 드나들며 갑천씨를 살폈다. 친척들이 다녀갔다. 다니지도 않는 교회의 목사님과 신도들이 몰려와 갑천씨의 침대를 둘러싸고 소리 내어 기도했다. 혜옥씨는 낯설고 어색했지만 가만히 눈을 감았다. 갑천씨는 의식이 잠시 돌아올 때면 웅얼거리며 의미 없는 말들을 했다. 어린애같이 투정을 부렸다. 혜옥씨도 딸도 아들도 못 알아보는 날들이 늘어났다. 그리고 마침내, 더 이상 아무런 말도 움직임도 없는 날들이 이어졌다.
계속해서 일을 쉴 수가 없었다. 혜옥씨는 쉬고 있던 일을 해야 했다. 주중에는 갑천씨의 장모가 사위의 수발을 들기로 했다. 콧줄을 통해 묽은 유동식을 밀어 넣었다. 욕창이 생기지 않게 사위의 커다란 몸을 이리저리 뒤척였다. 미동 없는 팔다리를 팔이 빠지도록 주물렀다. 대소변을 받아내고 기저귀를 갈았다.
요양 병원 중환자실 구석진 침대의 창밖으로 새봄의 연둣빛이 물들고 있었다. 삭발한 머리에는 망사 모자를 씌웠고 오뚝한 코에는 콧줄을 달았다. 갑천씨는 초점 없는 눈으로 창밖을 바라보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