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환자 며칠 못 산다더라 소리 듣고 내게 와서 엉엉 울던 당신. 그 들썩이는 어깨에 손길 하나 얹을 힘도 없이 흐릿해진 눈만 감았다 떠서 미안해.
매일 일만 해서 미안해. 그때는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했어. 하루라도 내가 운전대를 잡지 않으면 우리 가족에게 큰일이 날 것만 같았어. 공부도 많이 하고 좋은 부모 밑에서 우애 좋은 형제들 있는 당신을, 공부도 많이 못 하고 부모의 사랑과 형제의 우애도 없던 내가 데려 왔지. 내가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건 오로지 온종일 일 하는 것 그것뿐인 줄 알았어.
당신이 산에도 좀 다니고 놀러 다니자고 할 때도 지금은 아니라고, 아직은 애들이 자라는 중이니 돈 벌 때라고 했었지. 단 한 번도 당신 얘기 들어주지 못해 미안해. 이제 슬슬 둘이 손잡고 산에도 다니고 맛있는 것도 먹으며 다니면 되는 거였는데. 이런 큰 병을 키워서 미안해.
암보험을 추천한 제나 엄마에게도 고맙다고 전해줘. 정신을 잃기 전날, 수간호사인 그이가 빙빙 둘러 말했지만 나는 내가 큰 병이라는 걸 짐작할 수 있었어. 실은... 무서웠어. 하지만 당신을 생각하며 마음을 굳게 먹었어. 내가 약해지면 당신이 무너질까 봐 티를 내지 않았어.
단 한 번도 좋은 옷 좋은 가방 못 사줘서 미안해. 이제 애들 다 보내고 우리 둘이 행복할 일만 남았는데 혼자 두고 가서, 옥아, 정말 미안해.
장모님, 우리 장모님.
장인은 나를 반기지 않았지만, 장모님은 나를 내치지 않아서 고맙습니다. 가족을 위한 조용한 희생, 혜옥씨는 장모님을 많이 닮은 것 같아요. 어머니 없던 제게 장모님은 어머니 같고 또 엄마 같았어요.
장인 환갑잔치 때 장모님 볼에 뽀뽀했다가 장인이 노발대발한 일이 갑자기 떠오르네요. 우리 장모님. 말없이 나를 받아 주어서 고마워요. 사위의 욕창 방지 대소변을 받게 해서 미안해요. 귀한 딸을 데려다 고생만시켜서 죄송합니다.
그리고, 먼저 가서 죄송합니다.
아들 거기 있구나.
아들은 오냐오냐 하면서 키우면 안 된다고. 아들은 눈길 한 번 덜 주어야 한다고. 아들은 강하게 키야 한다고 그런 말들은 누가 했던 걸까. 어려서부터 입이 짧은 네가 참 안쓰러웠다. 밥을 안 먹어서 너를 물에 빠뜨리겠다고 겁을 주고 눈을 부라린 일. 지금 생각하면 아동학대에 가까운 말과 행동들이었지.
아들이지만 너보다 누나를 예뻐해서 미안해. 말은 안 했지만 아들이 있어 아빠는 든든했다. 엄마도 누나도 네가 있으니 이제 되었다 싶었어. 교복을 입고 있는 너. 야간 자율학습을 하다가 소식을 듣고 왔을 너. 아빠도 너처럼 교복을 입고 싶었어. 친구들과 공부도 하고 매점에 가서 맛있는 것도 사 먹고 주먹다짐도 하고 선생님께 혼도 나는 학창 시절을 꼭 보내고 싶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