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5월 18일도 목요일이었어요.
온종일 흐리고 비가 내렸어요.
대학 축제 기간이었고
이름 모를 하얀 봄꽃들이 흐드러졌었지요.
그리고
아빠가 마지막 숨을 거둔 날이었어요.
해마다 5월이 되면 말할 수 없는 슬픔이 나를 방문해요.
‘그때 내가 이렇게 했더라면,
그때 내가 이렇게 말했더라면,
만약에 그때 내가...’
돌이킬 수 없는 가정법 과거완료의 문장들이 몰려와요.
몰려온 문장들은 아주 오랫동안 내 안을 휘저어 놓곤 했어요.
나를 휘저어 놓던 문장들을 가만히 두었어요.
나의 그림으로 나의 문장으로 정리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어요.
5월이 시작되면서 주중 혼자 있는 시간이면 노트북을 켰어요. 짧게는 30분 길게는 1시간 이상 자판을 두드렸어요. 하얀 용지 위로 커서가 깜빡거리는 순간에도, 막힘없이 줄글을 이어가는 순간에도, 이내 목구멍이 따갑고 눈에는 물기가 차올라 넘쳤어요.
아빠에 대해 아는 것이 너무 없더라고요.
어린 시절은 어땠는지, 학교생활은 어땠는지, 어떤 아들 형 동생이었는지 물어볼 사람이 하나도 없었어요. 어떤 남편이었는지 이여사에게 묻기도 이제는 조금 새삼스러웠고요. 소년이고 청년인 아빠의 모습을 상상했어요. 내가 알고 있는 아빠의 모습을 깊은 곳에서 끄집어냈어요.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아빠의 마음을 내 마음대로 적어 내려갔어요. 어쩌면 내가 듣고 싶은 아빠의 말이었는지도 모르겠어요.
십수 년째 남동생 집에서 지내던 제사를 올해부터는 지내지 말자고 제안했어요. 실제로 본 적 없고 앞으로도 볼 수 없는 시아버지나 외할아버지를 만나는 날이 짐이 될까 귀찮고 싫어질까 염려되더라고요. 대신 기일을 앞둔 주말, 아빠 이름을 모셔놓은 절에 인사를 드렸어요. 딸의 남편과 남매들, 아들의 아내와 남매들. ‘아빠의 딸과 아들은 이렇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라고 속삭였어요.
그때의 이여사 나이를 넘겼어요. 그때의 갑천씨 나이를 향해가고 있어요. 시간이 흐른다고 슬픔은 사라지지 않아요. 옅어지지도 괜찮아 지지도 않아요. 갑천씨의 생을 나의 글로 그려보았어요. 비로소 슬픔의 시간을 마주할 수 있었어요.
앞으로도 해마다 5월이면 어김없이 슬픔의 시간이 찾아오겠죠. 이제는 그 시간을 조금은 담담하게 통과할 수 있는 마음을 다져봅니다.
언제까지나 젊고 잘생긴 갑천씨의 사진 너머로 그 음성이 들리는 것만 같아요.
“괜찮아, 걱정하지 마. 다 잘 될 거야.”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