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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씬디북클럽 Apr 02. 2024

어서 와, 공룡 이빨은 처음이지?

나의 치아 교정 일기 #2 준비



2020년 2월


처음에는 우한 폐렴이었다. 생소한 이름으로 시작된 전 세계적 전염병이 세 계절을 관통했다.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이름으로 모두의 생활 깊숙이 들어와 앉았다.


하루에도 수시로 오르내리는 확진자 숫자에 마음이 졸일 대로 졸여졌다. 학교는 문을 닫았다. 가정에서의 온라인 학습으로 전환되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확진자 숫자가 문자로 떴다. 확진자 동선이 공지되면 내 일이 될까 걱정했지금은 일단 내 일이 아님에 안도했다.


단 한 번도 집 밖을 나가지 않는 날의 횟수가 자연스레 늘어갔고 그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은 일이 되어갔다. 누구도 그 끝을 단언할 수 없었다.







마스크가 일상이 된 가을, 6학년 딸이 치아 교정 얘기를 꺼냈다. 친한 친구의 생일 파티에 다녀온 아이는 친구의 환한 미소를 여러 차례 이야기했다. '우리 집 형편에'라는 말을 삼키고 일단 상담이라도 받아 보기로 했다. 딸 친구가 교정 치료를 끝낸 치과에 추천을 받고 상담 예약 날짜를 잡았다.








2020년 9월 11일 금요일


아주 대학교 주변에 병원이 이렇게나 많았나. 많고 많은 건물들 가운데 특별히 크고 화려할 것도 없는 평범한 것들 중 한 건물의 5층의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조용하고 어둑한 조명, 편안한 소파, 직원분의 친절한 응대, 원장님의 다정한 상담이 중식당 코스 요리처럼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따님보다 어머님이 먼저 하셔야겠어요."


가장 기억에 남은 한 마디였다. 60대 환자분도 계시다고 덧붙였다. 멋쩍게 웃었지만 부끄럽고 창피했다.


딸아이의 정밀 상담이 이루어졌다.


정면, 비스듬하게, 측면을 입 다물고, 입 살짝 벌리고, 활짝 웃으며 사진을 찍었다. 입안 가득 차갑고 물컹한 느낌의 석고를 담아 치아 모형틀을 찍어냈다. 딸아이는 힘들어했지만 행복해했다. 겁이 많은 아이인 줄로만 알았는데, 오동통한 볼살과 활짝 웃는 모습에 여러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복잡한 마음은 목구멍에 걸린 생선가시 같았다. 치과 원장님의 말씀이 메아리처럼 귀에 울렸다.

 

20대에 미루고 30대에 못하고 40대가 된 나였다. 울퉁불퉁 덧니는 평생 콤플렉스였다. 고민 끝에 남편과 이야기를 했다. 나 이거 너무 하고 싶다고, 이번에 못하면 50대가 되어 또 후회할 것 같다고. 남편은 여유 없는 미소로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이 한 번에 큰 비용이 들기는 힘들 테니, 엄마가 먼저 시작하고 딸은 나중에 하자고 했다. 딸아이의 표정이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진 보름이 지났다.







2020년 9월 28일 월요일


딸의 상담이 엄마의 상담으로 이어졌다. 딸의 교정은 보류되고 엄마의 교정이 시작되었다.


엄마의 정밀 상담이 이루어졌다.


정면, 비스듬하게, 측면을 입 다물고, 입 살짝 벌리고, 활짝 웃으며 사진을 찍었다. 입안 가득 차갑고 물컹한 느낌의 석고를 담아 치아 모형틀을 찍어냈다. 힘들었지만 가지런한 이를 드러내고 활짝 웃는 나의 미소가 떠올라 행복했다.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졌던 딸아이의 표정도 함께 떠올랐다.


다시 남편에게 이야기했다. 이왕 이렇게 된 것, 우리 둘 다 함께 치아 교정을 시작하겠다고. 당신이 많이 힘들겠지만 도와 달라고. 어차피 들 비용, 미리 시작해서 하루라도 일찍 활짝 웃고 싶다고, 함께 웃게 해 달라고.  남편은 체념한 미소로 그러라고 했다. 그의 어깨에 내려앉은 무거운 짐을 잠시 모른 척해야만 했다.






2020년 10월 8일 목요일


마음을 먹었는데 왜 이리 떨리는 걸까.

아무것도 안 했는데 왜 이리 무서울까.


치과 진료 의자에 눕듯이 앉은 자체만으로도 겁이 났다. 조금 있으면 임플란트 할 나이에 무슨 교정이냐고 속 모르고 웃던 지인이 떠올랐다. 교정해 봤자 관리 못 해 도로 다 틀어졌다는 친구 얘기도 생각났다. 이 나이에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내 덧니를 누가 그리 신경 쓴다고, 물음표와 말줄임표가 두서없이 반복되었다.

 

석고로 본을 뜬 치아 모형을 만났다. 박물관에서 보던 티라노 사우르스의 이빨 화석이 이런 모양이었을까.


마음을 다잡았다.

마음속 그 문장에 느낌표 세 개를 쾅쾅쾅 찍었다.  




잇몸은 좁은 데 나와야 하는 영구치들이 다 나와 자리를 잡느라 틀어지는 것이 덧니. 나는 위쪽 2개, 아래쪽 2개, 총 네 개의 치아부터 뽑고 나서 본격적인 교정 치료를 시작하기로 했다. 다음 진료부터는 딸과 함께 오기로 했다. 딸은 일단 진행 상황을 보고 발치는 추후에 결정하기로 했다.


교정만 전문으로 하는 치과라고 했다. 발치는 집 가까운 아무 치과에 가서 하면 된다고 했다. 원장님의 공손한 문구 사인이 담긴 발치 의뢰서를 살짝 열어 보았다. 함수 그래프 가로축 세로축 마냥 그려진 십자가  모양선. 그 각각의 네 사분면 칸에 숫자 4가 네 번 쓰여 있었다.







2020년 10월 12일 월요일


발치 의뢰서를 들고 동네 치과에 갔다. 치과 검진이나 스케일링 치료를 위해 두어 번 방문했던 곳이었다. 종교 서적과 아프리카 아이들 사진이 대기실에 가득한, 인자한 인상의 부부 치과 선생님이 운영하시는 병원이었다. 교정 전 스케일링을 하고 주말에 발치 약속을 잡았다.



그리고

내 인생 가장 최대 상실의 날이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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