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쪽 잇몸 양쪽으로 마취 주사 바늘이 따끔 두 번 꽂혔다. 아이 둘의 진통 1박 2일을 견뎌 낸, 나름 인내의 아이콘이었던 내가 아니었던가. 이 정도 따끔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얼마든 참을 수 있었다. 5분쯤 지났을까. 내 입이 내 입이 아닌 무감각의 시간이 시작되자마자 의사 선생님은 펜치 같이 생긴 기구를 들고 다시 내 옆으로 오셨다. 예의 그 다정한 미소를 마스크 안에서 지으시면서.
"자, 상악 4번 좌우 치아 2개 발치하겠습니다."
차갑게 다정한 펜치가 입안 가득 들어와 위아래로 몇 번 비틀었을까. 통증은 전혀 없었다. 서걱서걱 기분 나쁜 소리가 귀에 들리더니, 내 안의 뭔가 커다란 것이 뿌리째 뽑히는 느낌이 정확하게 강타했다. 뽑힌 건가 확인할 틈도 없이, 바로 이어 다른 쪽의 이가 위아래로 비틀렸다. 이번에도 서걱서걱 에 이어 뿌리째 뭔가가 뽑혀 나가는 생경한 느낌. 이번에는 눈으로 확인하라는 뜻이었을까. 뿅! 하고 날아간 그것을 의사 선생님이 얼른 주워 오셨다. 예의 그 다정한 미소에 당황 한 스푼이 살짝 더해졌다.
"발치 잘 되었습니다. 치료 잘 받으시고 아래 이도 발치하러 오세요."
치아 두 개가 내 손에 들어왔다.
치약 칫솔 광고나 치과 간판에서 볼 수 있던 모습과 닮은 듯 달랐다. 잇몸 깊숙이 박혀 있던 치아 전체의 모습이었다. 눈에 보이던 부분보다 잇몸에 박혀 있던 부분이 훨씬 더 컸다. 멍한 기분으로 치과를 나와 약국에 들렀다 집으로 오는 길, 그제야 멋모르던 눈물이 살짝 맺히더니 마스크 사이로 가만히 흘러내렸다.
멸균가제 솜으로 이가 뽑힌 부위에 접어 틀어넣고 입을 꽉 다물었다. 침대 이불속으로 들어와 누웠다. 통증이 느껴지면 먹으라는 타이레놀 한 알을 먹었다. 식욕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수십 년 간 내 몸 깊숙이 박혀 있는 이를 뽑나. 눈물이 줄줄 흘렀다. 온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꽉 깨문 가제솜이 축축해지고 붉은 기운이 점점 옅어져 갔다. 상실감은 오랫동안 짙은 채 그대로였다.
10월 19일 월요일
교정 치과에 들렀다. 공간이 생긴 위쪽에 장치를 부착했다. 어색하고 불편했지만 생각보다 막 아프거나 하진 않았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활짝 웃으며 셀카를 찍었다. 활짝 웃으면 사진 찍을 그 언젠가를 고대하며.
'굳이 고된 나를 택한 그대여.'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정인의 '오르막길'을 듣다가 다시 울컥했다.
10월 31일 토요일
두 번째 발치, 다시 부부 치과에 들른 주말이다. 이번에는 아랫니 2개를 뽑았다.
두 번째이어서 그랬을까. 처음보다는 충격이 크진 않았다. 경험상 내일이면 괜찮아질 거라는 알고는 있었지만, 피맛의 느낌과 바알간색이 묻어나는 멸균솜과 그보다 큰 상실감은 도무지 적응되지가 않았다. 지난번처럼 이불속에 누워 내내 잠을 청했다. 가족들에게도 자꾸 이유 없이 짜증을 냈다. 잠이 오지 않으면 거실 소파에 누워 텔레비전을 보았다. 괜스레 더 다운되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도 기억하고 있는 10월의 마지막 밤은 그렇게 흘러갔다. 이번에는 타이레놀을 먹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