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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씬디북클럽 Apr 09. 2024

치아 상실의 시대

나의 치아 교정 일기 #3 발치



2020년 10월 17일 토요일



"자, 살짝 따끔하실 거예요."


앗, 따가워. 말씀은 한 치의 오차 없이 들어맞았다. 따가웠고 살짝이었다.


위쪽 잇몸 양쪽으로 마취 주사 바늘이 따끔 두 번 꽂혔다. 아이 둘의 진통 1박 2일을 견뎌 낸, 나름 인내의 아이콘이었던 내가 아니었던가. 이 정도 따끔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얼마든 참을 수 있었다. 5분쯤 지났을까. 내 입이 내 입이 아닌 무감각의 시간이 시작되자마자 의사 선생님은 펜치 같이 생긴 기구를 들고 다시 내 옆으로 오셨다. 예의 그 다정한 미소를 마스크 안에서 지으시면서.


"자, 상악 4번 좌우 치아 2개 발치하겠습니다."


차갑게 다정한 펜치가 입안 가득 들어와 위아래로 몇 번 비틀었을까. 통증은 전혀 없었다. 서걱서걱 기분 나쁜 소리가 귀에 들리더니, 내 안의 뭔가 커다란 것이 뿌리째 뽑히는 느낌이 정확하게 강타했다. 뽑힌 건가 확인할 틈도 없이, 바로 이어 다른 쪽의 이가 위아래로 비틀렸다. 이번에도 서걱서걱 에 이어 뿌리째 뭔가가 뽑혀 나가는 생경한 느낌. 이번에는 눈으로 확인하라는 뜻이었을까. 뿅! 하고 날아간 그것을 의사 선생님이 얼른 주워 오셨다. 예의 그 다정한 미소에 당황 한 스푼이 살짝 더해졌다.


"발치 잘 되었습니다. 치료 잘 받으시고 아래 이도 발치하러 오세요."


치아 두 개가 내 손에 들어왔다.

치약 칫솔 광고나 치과 간판에서 볼 수 있던 모습과 닮은 듯 달랐다. 잇몸 깊숙이 박혀 있던 치아 전체의 모습이었다. 눈에 보이던 부분보다 잇몸에 박혀 있던 부분이 훨씬 더 컸다. 멍한 기분으로 치과를 나와 약국에 들렀다 집으로 오는 길, 그제야 멋모르던 눈물이 살짝 맺히더니 마스크 사이로 가만히 흘러내렸다.


멸균가제 솜으로 이가 뽑힌 부위에 접어 틀어넣고 입을 꽉 다물었다. 침대 이불속으로 들어와 누웠다. 통증이 느껴지면 먹으라는 타이레놀 한 알을 먹었다. 식욕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수십 년 간 내 몸 깊숙이 박혀 있는 이를 뽑나. 눈물이 줄줄 흘렀다. 온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꽉 깨문 가제솜이 축축해지고 붉은 기운이 점점 옅어져 갔다. 상실감은 오랫동안 짙은 채 그대로였다.










10월 19일 월요일


교정 치과에 들렀다. 공간이 생긴 위쪽에 장치를 부착했다. 어색하고 불편했지만 생각보다 막 아프거나 하진 않았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활짝 웃으며 셀카를 찍었다. 활짝 웃으면 사진 찍을 그 언젠가를 고대하며.

'굳이 고된 나를 택한 그대여.'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정인의 '오르막길'을 듣다가 다시 울컥했다.









10월 31일 토요일


두 번째 발치, 다시 부부 치과에 들른 주말이다. 이번에는 아랫니 2개를 뽑았다.

두 번째이어서 그랬을까. 처음보다는 충격이 크진 않았다. 경험상 내일이면 괜찮아질 거라는 알고는 있었지만, 피맛의 느낌과 바알간색이 묻어나는 멸균솜과 그보다 큰 상실감은 도무지 적응되지가 않았다. 지난번처럼 이불속에 누워 내내 잠을 청했다. 가족들에게도 자꾸 이유 없이 짜증을 냈다. 잠이 오지 않으면 거실 소파에 누워 텔레비전을 보았다. 괜스레 더 다운되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도 기억하고 있는 10월의 마지막 밤은 그렇게 흘러갔다. 이번에는 타이레놀을 먹지 않았다.








11월 2일 월요일


다시 교정 치과에 들렀다. 이를 뽑은 빈자리는 여전히 허전하고 낯설기만 하다.

같은 방식으로 아래쪽에 장치를 달았다. 이제 위아래 제대로 철길을 깔았다.

마스크 속으로 혼자서 입 벌리고 미소 짓는 연습을 하다가 다시 셀카를 찍었다.

치과에 오는 날마다 셀카를 찍어야지 문득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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