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를 학교 앞까지 태워주는 등굣길 아침, 차창 너머 유난히 맑고 파란 하늘과 하아얀 구름이 몽실몽실 피어올랐다. 빨간 불에 멈춰 서야 핸드폰 카메라로 저 모습을 담을 텐데, 오늘따라 재깍재깍 바뀌는 초록불에 눈으로만 담고 입으로는 감탄을 뱉는F 엄마를,T 딸은 도통 이해할 수 없는 눈치.
"저기 좀 봐봐. 구름 너무 예쁘잖아.
어? 살살 옆으로 움직이는 거 안 보여?"
"보여. 보인다고. 또 '구름아, 안녕!' 해야지."
지난 주말 나들이에서 "안녕, 광화문!", "안녕, 세종문화회관!" 했다고 놀리더니 이번엔 구름이다. 쳇, 맘껏 놀리라지. 엄만 구름 좀 볼 거야. 가버리기 전에, 사라지기 전에. 저 봐 저 봐, 얘기하는 사이 벌써 저만큼 가버렸잖아.
결별이 기약 없는 헤어짐이고, 이별이 어찌할 수 없는 헤어짐이라면, 작별은 서로 인사를 나누고 헤어지는 일을 가리킨다. 미리 준비한 인사를 전하고 잘 보내주는 일, 그리하여 다음을 기약하는 일. (중략) 그렇다면 처서란, 저무는 여름과 시간을 들여 인사하고 천천히 작별하는 과정이겠다. p203
카메라를 향해 온갖 애교 담긴 포즈를 취해 주던 다섯 살 딸과 결별했다, '어머니 사랑해요'라는 제목으로 시를 써 주던 아홉 살 아들과 이별했다. 사춘기를 통과하는 남매의 사십춘기 엄마는 수시로 좌절했다. 내가 원하는 대로 자라지 않는구나. 내가 바라는 대로 향하지 않는구나. 스스로 자라고 향하는 중이구나.
김선우 시인의 '꽃받침에 대하여'라는 시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꽃이 예쁘게 피는 건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꽃받침이 든든하게 받쳐 주는 걸 아니까 꽃은 더 활짝 맘껏 예쁘게 필 수 있는 거다
김선우 詩, 꽃받침에 대하여
어렵게 얻은 아이였다. 씨를 품어 볕과 곁을 내주고 온기와 애정을 쏟았다. 싹이 나고 잎이 나는 자체 만으로도 미소가 퐁퐁 솟던시절이분명 있었다.
그 시절과 작별하는 중이다. 봉오리가 맺힐 수 있도록, 아름답게 피어날 수 있도록, 보이지 않는 곳에서 든든하게 받쳐주는 꽃받침을 자처한다. 또 다른 시절을 기약하고 기다리고기대해 보면서.
몸서리치게 혐오하던 이 계절도 그리울 날이 올까. 네 번째로 좋아하는 (이라고 쓰고 제일 싫은) 계절의 끝과 작별하는 중이다. 다시 펼쳐보고 싶지 않은 끈적임과 마음의 옥죔이 있었지만, 이 역시 기억이 되리라 추억이 되리라 믿어보면서.
제목도 표지도 글도 우아하고 아름답다. 한정원, 내가 네번째로 사랑하는 계절
그렇다고 눅눅한 마음마저 거짓이었던 것은 아니다. 여름의 우리에겐 너무 많은 일들이 있었다. 속을 다 꺼내놓고 말할 수 없을 때 말릴 수라도 있다면, 한지로 만들어진 듯 습기에 약한 마음은 햇빛과 바람을 필요로 한다. 그러니 옷과 책뿐만 아니라 마음도 햇볕 좋은 시기에 정기적으로 말릴 일이다. p207
모처럼 일찍 퇴근한 처서의 이른 저녁, 해지기 전 성곽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몇 달만의 밤 산책인가. 몇 주만의 따뜻한 커피 한 모금인가. 뽀송뽀송하지는 않지만 더는 숨 막히지 않은 밤공기를 조금 더 들이키며 집으로 향한다.
여름 내내내외했다. 서걱거리는 이불이 몸에 닿는 것도 질색인데 내 팔뚝이건 그 팔뚝이건 말해 뭐 하랴. 오늘밤은 슬며시 곁에 가 누워볼까. 계절 내 두었던 거리를 좁혀볼까. 진정한 처서 매직의 밤이 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