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媤)집에서 시(詩)를 읽다

가을 글방 #1 시를 읽는 소감

by 씬디북클럽

시(媤)집에 시집(詩集)을 들고 왔다.

2박 3일을 위해 시집 소설 에세이 한 권씩을 챙겼다. 최근에 접한 책들은 들쳐 업은 갓난아이 마냥 떨어질 줄 몰랐다. 마음이 쉴 수 있는 책을 읽고 싶었다. 말 그대로 연휴니까.


유튜브를 보고 했더니 맛이 별로라 하시며, 어머님은 잡채 한 접시를 상에 올리셨다. 수개월 전 큰 수술을 두 번이나 치르신 어머님. 어머님표 음식을 다시 먹을 수 있을까 눈물짓던 순간이 당면과 채소들 위로 스쳐 갔다. ‘빨리 회복하셔서 정말 다행이에요.’ 맛있게 먹었다. ‘이렇게 좋아지셔서 정말 감사해요.’ 온 힘을 다해 소복이 쌓인 잡채 접시를 비웠다. 어머님은 비워낸 접시를 다시 수북이 채우셨다.

맛있는 잡채는 이어진 끼니 네 번 연속으로 등장했다. 젓가락들이 오간 두 접시 중 덜 남은 쪽이 더 남은 쪽으로 합쳐졌다. 랩으로 씌워져 냉장고에 들어간 잡채는, 다음 끼니에 전자레인지로 이동했다가 김을 모락 거리며 상에 올라왔다. 식구들이 남긴 국을 다시 냄비에 넣고 끓여, 짜질 대로 짜진 탕국도 여러 번 동반 출연했다. ‘와 이리 애볐노? 더 쫌 팍팍 떠 묵어라.’ 배려와 염려의 말씀에 다행과 감사의 마음은 점점 새들해졌다.


시집에서 시집을 펼쳤다.


‘시’를 떠올리면 자연스레 중학교 국어 시간이 떠올랐다. 자유시 정형시 서정시 서사시 잘 구분하라고, ‘님의 침묵’의 ‘님’이 함축하는 의미를 빨간 볼펜으로 별표 5개 치라고, 윤동주의 ‘서시’는 꼭 나오니까 달달 외우라고 하던, 두꺼운 안경테의 국어 선생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윤동주의 시들을 찾아 펼쳐 보았다. 나라 잃은 그는 저 머나먼 만주에서 ‘남쪽 하늘 저 밑에 따뜻한 내 고향’ (고향집 中)을 불렀다. ‘어린 영(靈) 쪽 나래의 향수를 타고 남쪽 하늘에 떠돌 뿐’(남쪽 하늘 中) 이라고도 노래했다. 그는 절절히 남쪽의 고향을 그리워하고 노래했다. 나는 그를 대신해 지금 이곳 남쪽으로 남쪽으로 내려와 있는 것인가. 내 고향은 이곳이 아닌 저 위 북서쪽이거늘.


다른 페이지들을 넘겨 보았다. 가을 시화집이라서 그런가. ‘추석’이나 ‘달’이란 단어가 들어간 시들이 보였다. 눈으로만 읽다가 조그맣게 소리를 내어 읽어 보았다.

‘둘이서 함께

바라보고 또 바라보던

가을 보름달

혼자 바라보게 될

그것이 슬퍼라’ (사이교의 시)


“엄마 책 읽어?” 아이가 물었다.

“엄마 시 읽어.” 눈을 맞추고 살짝 웃었다.


시를 읽는 내 목소리는 참 많이 낯설다. 눈으로 읽혀 입으로 나온 구절은 다시 내 귀로 향한다. 눈에서 출발한 시가 마음으로 도착한다.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음에도 처음의 뾰족함은 다소 둥글어져 있다.


시집에서 시집을 곁에 두고 잠을 청한다.


아직 두 밤이 남았다. 바래진 꽃무늬 표지 가을의 시들이 새들해진 마음을 토닥토닥해 줄 것이다. 두 밤 후에는 지금 이 순간도 새들해지길.


새들하다 [형용사]

1. 풀이나 꽃 따위가 시들어서 생기가 조금 없어지다.

2. 마음에 차지 아니하여 조금 내키지 아니하다.

3. 별로 대수롭지 아니하다.


열두 개의 달 시화집 가을, 윤동주 외, 저녁달고양이,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