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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씬디북클럽 Sep 29. 2022

하늘에 닿을 만큼

가을 글방 #2-2 글로 그리는 사진

“하나 둘 셋 하면 둘이 같이 점프하는 거야, 알았지? 자, 하나 둘 셋!”


  카메라를 든 엄마의 신호에 남매가 폴짝 뛰었다.     


  푸르른 가을의 한 복판에 가족이 걷고 있다. 요새는 쉽게 경험할 수 없는 시골집을 옮겨 놓은 듯한 경기도 외곽의 한 농장. 남매는 이곳에서 반나절을 보내는 중이다. 유치원 견학 때 이곳에 와 보았다는 누나는 동생을 데리고 이곳저곳 보여주며 종알종알 말해준다. 마차도 타고 말도 탔다. 소에게 풀도 먹여주고 소젖도 짜 보았다. 직접 짠 우유를 휘젓고 얼려 만든 하얀 아이스크림도 먹었다. 가을볕 더위에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도 잊힐 만큼 시원하고 달콤했다.      


  이번 주 내내 아빠는 야근을 했다. 아내가 예약했다는 농장 체험 시간을 낼 수 있을까 싶었지만, 이 핑계로 잠시 숨을 돌린다. 출퇴근길 지하철과 담배 연기 가득한 사무실을 벗어난 게 얼마 만인지. 아이들 모습을 보니 잘 나왔다 싶다. 머릿속에 가득한 내일 회의 준비는 잠시 지우개로 쓱쓱 지워본다.     


  월요일마다 유치원에서 발표하는 주말 지낸 이야기 시간은 엄마들의 숙제가 되곤 했다. 이번 주말에는 어딜 가서 무얼 하나 고민하던 차에 이웃 엄마의 카카오스토리에서 보고 예약한 곳이었다. 발표에 쓰일 사진을 내내 찍다가 잠시 숨을 고른다. 트레이닝복을 세트로 맞춰 입은 남매가 손을 잡고 앞서 걸어간다. 뒷모습을 찍는 손길에 미소가 번진다. 옆에 서 걷고 있는 남편의 손을 잡아볼까 하다가 그냥 둔다.


  폴짝폴짝. 누나에게 맡긴 손에 반동이라도 주듯 하늘을 향해 높이 뻗은 다른 편 손. 마차를 탈 때 선물 받은 카우보이 모자는 마음에 들었는지 벗질 않는다. 모자 아래로 며칠 전 싹둑 짧게 자른 앞머리가 보인다. 앞을 보려 애쓰지만 살짝 겁먹은 눈빛이 땅을 향한다. 벌어진 입 속에 하얀 이도 겁을 잔뜩 먹었다.     

  폴짝폴짝 포올 짝. “내가, 내가 더 높이 뛸 거야.” 누나는 동생의 오른손을 꼭 잡았다. 연보라 트레이닝복에 달린 후드는 아이가 점프할 때마다 따라서 춤을 춘다. 동생과 같은 옷은 절대 입지 않겠다겠지만, 똑같은 모자를 쓰고 있으니 쌍둥이 같기도 하다. 양 갈래로 묶은 검은 생머리가 물결치듯 바람에 날린다. 모자챙에 가려져 두 눈은 보이지 않는다. 오뚝한 콧날 아래로 활짝 웃고 있는 입, 벌어진 그 안으로 앞니가 가지런하다.


  파란 물감을 뿌려놓은 듯한 하늘이라고 하려다 물감으로는 저 색깔을 못 낸다는 것을 알았다. 전에 먹었던 그 커피, 바다 라테 색깔! 초록창에 검색해보니 블루 큐라소 시럽이라고 했다. 어려운 이름의 시럽이 우유와 섞여가는 순간의 색깔이다. 크고 작은 가을꽃들이 활짝 폈다. 빨간색과 노란색 색연필 두 자루만으로 여러 번 덧칠해서 만든 듯한 색깔이다. 연한 베이지색 흙길엔 돌멩이 하나 없다. 남매의 그림자 두 개가 땅에서 붙었다 떨어졌다 한다.      


  “내가 하나 둘 셋 하면 아까보다 더 높이 뛰는 거야, 알았지?”

  “응, 알겠어. 누나.”

  “하나, 둘, 셋!”     


  손을 꼭 잡은 남매가 한 번 더 높이 폴짝 뛰어오른다. 파란 하늘 끝에 두 개의 모자가 닿을 것만 같다. 두 개의 마음은 더 높이 날아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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