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어머니와 살고 있어요."
요양보호사 공부 1
요양보호사 공부를 시작했다.
어르신을 돕는 직업을 위한 자격증을 위한 수업에 어르신 학생들이 수두룩하다. 어르신 학생들은 수업 시간에도 쉬는 시간에도 적극적이시다. 열정적이시다. 최연소 학생은 한눈팔 겨를이 없다.
뇌졸중은 흔히 ‘중풍’이라고 불린다. 뇌졸중은 뇌혈관이 막힌 뇌경색과 뇌혈관이 터진 뇌출혈로 구분된다. 뇌졸‘증’이 아니라 뇌졸‘중’이라는 것을 수업을 들으면서야 알았다. 올해 초 시어머니의 병원 진료에 여러 번 함께 했으면서도 말이다.
고혈압 당뇨는 완치 가능한 질병이 아니다. 평생 관리해야 하는 질병이다. 고단백 저지방 식사 조절이 중요하다는 부분에서, 지난 주말, 남편에게 집밥을 챙겨주지 못한 미안한 마음이 든다.
매 시험에 꼭 나온다는 '욕창’ 부분을 공부할 때는 마음이 더없이 무거웠다. 그 단어를 들을 때마다 마음은 자꾸만 한 겨울이 된다. 의식 없는 강서방의 커다란 몸을 이쪽저쪽으로 힘겹게 옮기던 홍여사의 모습이 떠올라서이다. 사위의 굳어가는 몸과 멈춰가는 정신을 바라보는 장모의 마음은 감히 상상할 수 조차 없다.
“네 할머니의 마지막을 집에서 모시지 못한 게 후회된다.”
홍여사를 요양병원에서 보내 드리고, 이여사는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이여사는 요양보호사 일을 하고 있다. 본인이 근무하는 요양병원에 홍여사를 모시고 간병했다. 홍여사를 두고 집으로 퇴근하는 발걸음은 돌덩이를 매단 듯 무겁기만 했단다. 볕이 안 드는 작은 집이지만 방 한 칸을 내어드리고 집에서 돌봐 드릴 걸, 더 자주 눈을 맞추고 말 걸어 드릴 걸. 두고두고 한이 되었던 마음을 딸 앞에서 펼쳐 낸다.
이여사의 그 말이 시작이었을까. 시어머니의 뇌경색 수술이 자극이 되었을까. 정부 지원금을 받으며 가족을 집에서 요양할 수 있다는 얘기에 결심을 굳혔을까. 아니, 그저 자격증이라도 하나 따 놓자는 단순한 생각이었던 걸까. 나는 여전히 답할 수가 없다.
어르신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도 어르신 교수님들의 몫이다. 이여사 나이쯤 되셨을까 싶었는데 그보다 훨씬 많으신 여자 교수님도 계시다. 대학병원과 보건소에서 근무하신 경력을 소개하는 음성에 자부심이 묻어난다. 자전거와 수영을 즐기시는 일상도 얘기하신다. “나도 노인네지 뭐.” 하는 말씀은 정말 ‘그냥 하는 말씀’ 임에 분명하다.
“저는 치매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어르신 교수님 가운데 한 분은 첫 소개부터 강렬했다. 내게는 친근하면서도 멀게만 느껴지는 사투리 억양과 말투 때문만은 아니었다. 치매 부분은 그 교수님이 전담해서 강의했다. 시험에도 꼭 나오고 문제풀이도 쉽지 않다고 한다. 이론은 이론대로 시험에 나온다는 부분을 딱딱 짚었다. 실제는 실제대로 본인의 경험을 덧붙여 이야기했다. 벽에 똥칠하고 버럭 화를 내고 온 집안을 어질러 놓은 어머니 이야기를 한다. 문득 강풀의 만화 ‘그대를 사랑합니다’의 한 장면이 겹쳐진다.
그녀는 퇴근 후 간병인과 교대를 한다. 어머니는 그녀를 보자마자 종종 밖에 나가자고 한단다. 그녀는 옷만 갈아입고 어머니의 손을 잡고 산책을 나간단다. 어머니와 함께 오래오래 있고 싶다고 말하는 그녀의 목소리에 왠지 숙연해진다. 겪어낸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다. 오늘 이 수업이 마치고 집으로 퇴근하면 일어나는 그녀의 일상이다. 현실이다.
어르신 학생들 가운데 시인 한 분이 계신다. 자작시든 명시든 거의 매일 시를 낭독하신다. 교수님이 권하시기도 시인 학생이 자청하기도 한다. 오늘 시인 학생이 낭독한 시의 제목은 ‘나를 사랑하라’이다.
당신은 이미 중요하다.
당신은 당신이다.
당신 본연의 모습으로 존재할 때
당신은 비로소 행복해질 수 있다.
(어니 J 젤린스키의 시 ‘나를 사랑하라’ 中)
꼿꼿한 자세로 두꺼운 뿔테 안경을 고쳐 쓰며 시인 학생은 시를 낭독했다. 낮고 깊은 음성. 어르신 교수님도 어르신 학생들도 눈을 감고 음미한다. 최연소 학생은 꿈뻑꿈뻑 낯선 분위기에 웃음이 터질 것만 같다. 하지만 이내 시가 마음속으로 들어온다. 슬그머니 눈을 감아 본다. 내가 지나 온 시간만큼을 더 지나오신 시인 학생의 낭독은 단단하다. 울림이 있고 여운이 있다.
“변호사는 사람이잖아요. 판사나 검사하고는 달라요.
같은 ‘사’자 돌림이라도 판사랑 검사는 ‘일 사’자를 쓰지만 변호사는 ‘선비 사’자를 쓰죠. 판사랑 검사한테는 사건 하나하나가 그냥 일일지 몰라도 변호사는 달라요. 우리는 선비로서, 그러니까 한 인간으로서 의뢰인 옆에 앉아있는 거예요. ‘당신 틀리지 않았다.’‘나는 당신 지지한다.’ 그렇게 말해주고 손 꽉 잡아주는 것도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인 거죠.”
여름 내내 애정을 갖고 시청한 드라마의 대사가 떠올랐다. 바로 찾아보았다. 요양보호사의 ‘사’자는 ‘선비 사’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