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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씬디북클럽 Oct 19. 2022

아홉 살 시인 열두 살 래퍼

시 '어머니 사랑해요'





어머니 사랑해요     

어머니 나의 어머니 사랑하는 내 어머니

내가 제일 사랑하는 어머니

어머니도 날 좋아하시네

왜냐하면

내가 팔 꼬락내가 나니 거실에서 자려해도

꼬옥 ㅡ

끌어안아 주시네.

내가 어렵고 창피하고 힘들 때 항상 도와주시던 어머니

어머니를 위해 이 한 몸 바칠 수 있습니다.

오늘도 나와 함께 자다 깨지 말고 주무셔주세요.

(응답하라 1988 볼 떼 제외)

꽃 나의 예쁘고 귀여운 꼴.

나를 향해 피어있네.

내일도 나를 향해 피어주세요.

어머니 사랑해요.         


  



아홉 살 소년은 한 때 시인이었다.     


서너 손가락으로 키보드 자판을 두드려 글자를 썼다. 하트 이미지도 찾아 넣었다. 이면지 아닌 새 종이에 프린트까지 했다. 소년은 시가 적힌 편지를 건넸다. (시에서 언급된 바로 그) 어‘어머니’는 뭉클해하며 웃었다.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말라 했다. 약속을 지키려 안방 옷장 안쪽 문에 붙여 놓고 혼자 읽었다. 어머니는 기꺼이 아홉 살 시인의 유일한 독자가 되었다.      


팔을 다쳐 칭칭 동여맨 소년의 깁스에선 오랫동안 제대로 씻지 못한 특유의 고릿한 냄새가 났다. 숙제를 하고 밥을 먹고 목욕을 할 때 어머니는 소년의 수발을 들어주었다. 인상 한 번 쓰지 않던 어머니의 모습에 소년은 감격했다. 세 살 터울의 소녀는 진작에 자기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은 반면, 소년은 대부분의 시간을 어머니 곁에 있었다. 어머니와 함께 잠을 자려했다. 소년이 먼저 잠이 들면 어머니는 몰래 나와 음량을 작게 틀어 드라마 재방송을 보던 시절이었다. 언제까지 엄마랑 잘 거냐고 물으면 ‘58살이요. 어머니 사랑해요.’ 하면서 입술을 덮치던 시기였다. 어머니는 손사래를 치면서도 기꺼이 입술을 내어 주곤 했다.      


열두 살이 된 소년은 또 다른 시를 공개했다. 무려 윤동주 시인의 ‘별 헤는 밤’의 오마주이다.      




‘독서록 쓰는 밤’으로 제목을 달리 한 시에서는, 학교 숙제로 급히 페이지를 채우려는 조급함과 얼른 마치고 핸드폰 게임을 하려는 다급함이 묻어난다. 그 와중에도 ‘어머니 어머니 어머니’를 ‘선생님 선생님 선생님’으로 바꾸어 시의 절정으로 치닫는다. 국민 시인 윤동주 님에게 대단히 송구했다. 개구쟁이 소년에게 아프지 않은 꿀밤을 주었다. 꿀밤을 주면서도 어머니의 입가에는 미소가 번졌다.      


열두 살 시인은 이제, 래퍼가 되었다.      


집에 오면 책가방을 던져 놓고 냉장고 문부터 열었다. 간식을 들고 방에 들어가 문을 닫았다. 느린 심장 박동 어쩌고 하는 알 수 없는 가사들이 문틈으로 새어 나왔다. 유튜브로 랩 가사를 찾고 따라서 읊조렸다. 밥을 먹을 때를 제외하고, 소년의 입에선 엇박자의 문장들이 쏟아져 나왔다. 어머니가 씻겨주는 것을 좋아하던 소년은 목욕탕에서 음악을 틀고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며 혼자 씻었다. 어머니가 91살 될 때까지 한 침대에서 자겠다는 약속은 슬그머니 사라졌다. 어머니가 쭈욱 내민 입술을 못 본 체 씨익 웃으며 굿나잇 인사를 전했다.       


열두 살 시인이자 래퍼가 잠든 밤, 어머니는 살며시 소년의 방문을 열었다. 불 꺼진 방을 더듬어 소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뺨을 매만지고 입을 맞췄다. 몸은 뒤척이며 잠결에 입맛을 다시는 중에도, 소년의 입가에 어렴풋이 미소가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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