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계절에 와 있나요?

요양보호사 공부 2

by 씬디북클럽

요양보호사 공부 4주 차에 접어들었다.



매일 8교시의 수업이 있다. 오전 4교시를 무사히 마쳤다. 평소보다 부지런히 점심을 챙겨 먹고 커피 한 잔의 여유를 부리던 참이었다. 수업 시작까지 10여 분이 남았을까. SNS를 살피던 중 지인의 비보를 접했다. 덜커덕 마음이 내려앉았다. 수업이 시작되었다.


“이번 시간에는 ‘임종’에 대해서 진도 나가겠습니다.”


내려앉은 마음이 더, 더 깊은 곳으로 끝을 모르고 내려앉았다.



‘사전 연명의료 의향서’란 19세 이상인 사람이 자신의 연명의료에 관한 의사를 직접 문서로 작성한 것이다. ‘연명의료’는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에게 하는 심폐소생술, 혈액 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 등 치료 효과 없이 임종 과정이 기간만을 연장하는 의학적 시술을 뜻한다. ‘사전 연명의료 의향서’에 연명의료를 중단한다는 의향을 명시해도 통증 완화를 위한 의료행위와 영양분 공급, 물 공급, 산소의 단순 공급은 보류하거나 중단할 수 없다. 연명의료 중단은 회복 불가능한 말기 환자가 무의미한 치료를 중단하고 자연적인 죽음을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존엄사, 소극적 안락사와 유사하나, 말기 환자가 고통을 이겨낼 방법이 없을 경우에 한해 의사 도움을 받아 죽도록 하는 안락사와는 다르다.

(요양보호사 표준교재, 한국요양보호협회, p.500-501)



이여사는 사전 연명의료 의향서에 서명했다. 요양보호사로 근무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내린 결정이었다. 처음 들었을 때의 나는 깜짝 놀라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천천히 그녀를 이해할 수 있었다. 나 역시 같은 결정을 내리겠다고 생각은 하고 있다. 하지만 차마 용기 내기가 아직은 쉽지 않다. 조금 더 찬찬히 생각해서 결정하고 싶다. 나의 결정이 확고해진다면 남편에게도 권해 함께 서명하고 싶다.



E 퀴블러로스 임종 적응 단계 순서


1) 부정 : 충격적으로 반응하며 다시 회복될 수 있다고 믿고 싶어 한다.

“아니야, 나는 믿을 수 없어.”


2) 분노 : 반항과 분노를 표출한다.

“나는 아니야, 왜 하필이면 나야, 왜 지금이야.”


3) 타협 : 아무리 죽음을 부정하고 부인해도 피할 수 없는 상황을 알고 제3의 길을 선택한다.

“그래, 내게 이런 일이 벌어졌어. 그래도 우리 아이가 시집갈 때까지만 살게 해 주세요.”


4) 우울 : 자신의 근심과 슬픔을 더 이상 말로 표현하지 않고 조용히 있거나 울기도 한다.


5) 수용 : 죽는다는 사실을 체념하고 받아들인다. “나는 지쳤어.”



아빠가 뇌종양 판정을 받은 날, 이여사는 나와 동생을 붙들고 짐승처럼 울었다. 살고 있던 아파트 전체가 무너져 내렸다. 매일 새벽 용달차로 물건을 싣고 내리며 휴일도 없이 일하던 아빠가 하나하나 쌓은 벽이었다. 그가 가져다주는 한 푼 두 푼을 모으고 아끼고 불려 이여사가 세운 천장이었다.


아빠는 20년 넘게 트럭 운전을 했다. 갑자기 머리가 아프다며 가벼운 사고를 냈다. 약이나 타러 들른 동네 병원이 시작이었다. 큰 병원으로 더 큰 병원으로 옮겨갔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병원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아빠의 머리를 열었다 닫는 것뿐이었다. 집에서 가까운 작은 요양병원 중환자실에서 마무리되었다.


아빠가 자신의 병명과 남은 시간을 전해 들었는지는 모르겠다. 그가 임종 적응 단계의 순서를 거쳤는지도 알 수가 없다. 아직 의식이 살아 있을 때 가장 마지막으로 했던 말만은 또렷이 기억한다. “딸, 걱정하지 마. 다 잘 될 거야.” 임종 적응 단계에서 예로 언급된 그 어떤 말과도 일치하지 않았다. 트럭을 모는 아빠를 길에서 마주치면 모른 척했던 딸에게 한 말이었다. 나는 아빠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임종이 가까운 대상자의 죽음은 응급상황이 아니다. (같은 책, p.509)



청각은 가장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 감각이다. 귓속말은 환자에게 웅웅 거리는 소음으로 들릴 수 있다고 한다. 평상시와 같이 자연스럽게 말하고 손을 잡아주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마지막 인사의 방법이다.


'임종'부분의 다른 문장들이 나를 또다시 다른 시간과 공간으로 데리고 간다.


외할머니 홍여사의 임종이 임박했다는 소식에 가족들이 번갈아 병원을 찾던 겨울이었다. 이여사가 외손녀 왔다며 말을 전했다. 홍여사의 작은 눈은 더 작아졌고 가쁜 호흡이 끊어질 듯 이어지고 있었다. 잡은 손은 거칠고 투박했다. 얼굴 가까이에 대고 말했다. “할머니, 소영이 왔어요. 엄마를 낳아 주셔서 고맙습니다. 아빠를 돌봐 주셔서 고맙습니다. 저의 외할머니가 되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랑해요.” 울먹이는 가운데 누구도 못 알아들을 말이었지만, 홍여사는 분명 듣고 계셨다.




“어르신 학생들도 합격하는데, 나이도 젊으시고 쉽게 합격하실 수 있을 거예요.”


학력 제한이 없고 객관식 문항 60점 이상이면 합격이다. 상담 선생님들은 모두 똑같이 말씀하셨다. 아니, 전혀 그렇지 않다. 내게는 이 수업을 듣는 자체가 어려운 일인 것 같다. 매시간 마음이 저만치 꺼져 내려가는 기분이다.


최연소 학생은 자꾸만 마음이 먹먹하다. 눈을 비비는 척 물기를 닦는다. 교재를 읽고 밑줄을 치는 어르신 학생들은 아무렇지 않으신 건지 모르겠다. 어쩌면 그들에게는 그저 천천히 다가오고 있는 평범한 미래들 중 일부일지도 모르겠다. 어르신 수강생들은 어떻게 수업 듣고 계실까. 어떤 마음이실까.



우리들 모두가 떨어집니다. 이 손이 떨어집니다.

그리고 보세요 다른 것들을, 모두가 떨어집니다.


그러나 저기 누군가가 있어,

그의 두 손으로

한없이 부드럽게 떨어지는 것들을 받아주고 있습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가을 中)



어르신 학생은 시를 낭독하고 다른 학생들은 시를 감상했다. 두 눈을 반짝이며 어르신 교수님께 질문을 하셨다. 나머지 공부도 기쁘게 하셨다. 떡이 아직 말랑하니 어서 먹어보라고 내게 건네주셨다. 주춤주춤 꾸벅 인사를 하고 살짝 마스크를 내려 입 속에 쏙 넣었다. 맛있었다.


인생을 사계로 떠올려 본 적이 있었다. 나의 계절은 어디쯤 왔을까. 뜨거운 한여름은 진작에 지난 것만 같았다. 노랗고 빨간 단풍이 시들어가는 가을의 끝자락 정도 아닐까 싶었었다. 옆 자리의 어르신 학생 반장님께 살짝 여쭤볼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모의고사 답안지를 채우느라 컴퓨터용 사인펜을 쥐고 계신 손이 바쁘다. 그 곁에서 푸르른 내음이 물씬 났다. 싱그럽고 정겨운 계절의 내음이.


당신은 지금,

어느 계절에 와 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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