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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강물처럼' 주인공은 나?

자립선언한 사춘기를 둔 갱년기 엄마

by 여토

거실 한켠, 식탁 맞은편은 이제 딸의 빈자리가 되었다.

함께 밥을 먹자고 부르면, “됐어, 안 먹어”라는 차가운 목소리만 돌아왔다. 예전엔 발랄하게 웃던 아이였다. 엄마가 늦게 돌아오면 문 앞에서 기다리던, 유치한 농담에도 깔깔 웃던 아이였다.


그러나 이제 그 딸은 방문을 닫은 채 침묵했고, 가끔 입을 열면 그 말끝엔 날이 서 있었다.


“엄마는 진짜 왜 저래? 제발 나 좀 내버려 둬.”


딸의 말은 칼처럼 그녀의 가슴을 베었다. 설명할 틈도 없었다. 변명할 틈도, 다가설 틈도.


어느 날, 묵은 먼지 낀 책장 한구석에서 《흐르는 강물처럼》을 꺼냈다.

파울로 코엘료의 문장 하나하나가 심장을 두드렸다.


“우리는 흐르는 강물과 같다. 거슬러 오르려 하지 말고 흘러야 한다.”


그 문장을 읽으며 가슴이 저며왔다.

지금이 바로 거슬러 오르고 있는듯 하다.


딸의 마음을 되돌리려, 예전의 웃음을 되찾으려 발버둥 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물은 거슬러 흐르지 않는다. 억지로 움켜쥐려는 손을 놓아야 비로소 흐름 속에 있을 수 있다.


기억을 더듬었다.


며칠 전, 딸이 휴대폰을 보며 비웃듯 말했다.


“엄마가 뭘 알아? 내가 뭘 겪는지도 모르면서.”


그 말에 숨이 멎는 줄 알았다.

몰랐던 게 아니라, 딸이 말을 안 해주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순간, 어떤 말도 무너진 다리를 잇지 못할 것 같았다. 눈물은 밤이 오고 나서야 비로소 터졌다. 딸이 잠든 방을 바라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내가 너무 밀어붙였나… 너무 사랑했던 걸까?’


책은 속삭였다.

사랑은 흐르는 강물처럼 고요히, 때로는 말없이 스며들어야 한다고.


세상의 모든 상처는 시간이라는 물에 씻겨 나갈 수 있다고.

그 말을 붙잡았다.

사랑이 때로 침묵이 되어야 한다면, 지금 자신이 해야 할 일은 멈추지 않고 흐르는 것이다.


이해받지 못해도, 무시당해도, 딸의 말 한마디에 무너져도.


제3자의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매일 무너지고도 매일 다시 일어나는 사람이다.


‘엄마’라는 이름으로.


딸이 그 모든 말들 속에 담지 못한 혼란과 외로움을 지나, 언젠가 다시 엄마에게 다가올 날을 믿으며.


이 책을 통해 배웠다. 강물은 언제나 흐른다.


흐르며 길을 만들고, 흐르며 모든 것을 다 품는다. 엄마 역시 그런 강물이어야 했다.

억지로 품으려 하지 않고, 다만 그 자리에 머물러 딸이 닿을 수 있게.


《흐르는 강물처럼》은 삶을 울리는 낮은 울림이었다.

사랑은 소리치지 않아도 흘러야 하며, 진심은 언젠가 도달한다는 믿음을 주는 책.


오늘도 조용히 딸의 문 앞을 지난다.


문틈으로 새어나오는 음악 소리에 마음이 무너지려다 다시 붙든다.


“괜찮아, 나는 여기 있어. 넌 너의 강물로 흘러가도 돼. 나는 끝까지 너를 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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