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ᆢ
마지막 잎새, 아직 지지 않은 너를 위하여
몇 달째, 우리는 서로 말이 없다.
밥을 차려두면 조용히 가져다 먹고,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는다. 말 한 마디 없는 그 문 너머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귀를 기울인다.
혹시 울고 있는 건 아닌지, 혹시 나를 부르는 건 아닌지.
처음에는 화가 났다.
왜 대화를 피하는지, 왜 그렇게까지 예민한지. 하지만 이젠 안다.
네가 싸우는 상대는 나이기보다, 네 자신이라는 것을.
세상이 내미는 질문지에 아직 준비되지 않은 답을 요구받는 아이가, 혼란과 두려움 속에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껍데기일 뿐이라는 것을.
그럼에도, 담배 냄새는 견디기 어렵고, 누군지도 모를 남자아이와 밤늦게 나누는 전화는 내 걱정을 무게 있게 짓누른다.
너는 몰랐겠지만, 나는 네 휴대폰 진동에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너를 의심해서가 아니다.
너를 너무 사랑해서다.
그러나 말만 걸면 화를 내는 너에게,
나는 감히 다가서지 못한다.
이해해보려 다가간 손이 물리칠까봐. 모처럼 낸 용기가 “됐어, 왜 이래”라는 말에 꺾일까봐. 그래서, 나는 『마지막 잎새』를 떠올린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날, 노화된 벽에 매달려 있던 단 하나의 잎사귀. 친구를 살리기 위해 끝까지 지켜낸, 그 작은 초록 하나.
나는 그 잎을 그렸던 베어먼 노인을 닮고 싶다. 당장의 소통은 없을지라도, 너의 마음 어딘가에 내가 여전히 서 있다는 걸, 결코 떨어지지 않을 거라는 걸 전하고 싶다.
그래서 오늘, 나는 너의 문 앞에 편지를 남기고 싶다.
‘많이 힘들지? 엄마는 여전히 여기 있어. 네가 필요할 때, 열어줘.’
하지만 그조차 이제 용기가 나질 않는다.
나는 그 문이 열리기를 기다린다.
내가 아닌, 네가 먼저 열어주기를. 하지만 만약 그날이 오지 않더라도, 나는 끝까지 너의 마지막 잎새가 되고 싶다.
너를 향해 떨어지지 않는 존재로, 조용히 버티고 서 있으리라.
사춘기란 계절은 언젠가 지나간다.
그날이 오면, 우리는 다시 마주 앉아 따뜻한 국을 함께 떠먹을 수 있기를.
그리고 그때, 네가 이렇게 말해주기를.
“엄마, 나 사실... 엄청 보고 싶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