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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운드 오브 뮤직' 그리고 사춘기 그녀

마리아와 갱년기 엄마

by 여토


요즘 우리 딸을 보고 있으면 참 많은 감정이 뒤섞인다. 초등학생 때까지만 해도 학교 다녀오면 "엄마!" 하고 팔 벌려 안기던 아이가, 이제는 눈도 잘 마주치지 않는다.


아침에 일어나 인사 한마디 없이 나가버리고, 휴대폰만 붙잡고 있거나 늦은 시간까지 연락이 닿지 않을 때도 많다. 옷에서 은근하게 풍기는 담배 냄새나, 술을 마신 듯한 눈빛을 보고 있노라면 가슴이 쿵 내려앉는다. 심지어는 가끔 이 아이가 요즘 뭘 하고 다니는지 몰라 무서운 상상까지 하게 된다.



이런 불안한 마음을 안고 우연히 『사운드 오브 뮤직』을 다시 읽게 됐다.

예전엔 그냥 감동적인 가족 영화로만 기억하던 이 이야기가,

이번엔 너무 다르게 다가왔다.


책 속 주인공 마리아는 자신도 혼란스러운 시기를 지나 트라프 대령의 집으로 가게 되고, 딱딱하고 폐쇄적인 그 집에 따뜻한 바람을 불어넣는다. 노래와 웃음, 그리고 진심 어린 관심으로 무장 해제된 아이들, 그리고 그 아이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점점 멀어졌던 대령까지 변화하는 모습을 보며, 내 딸과 나의 관계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요즘 내 딸을 두고 “왜 이렇게 됐을까”,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라는 생각만 하며 스스로를 자책하고 있었다. 하지만 마리아는 아이들이 울 때 같이 울고, 속상해할 때 다그치지 않았다. 기다려주고, 함께 노래하며 천천히 그들의 마음을 어루만졌다. 마치 그게 당연하다는 듯, 조급해하지 않고 말이다.

그 장면들 하나하나가 내 마음을 찔렀다. 나는 딸아이가 무언가 잘못하면 바로 화부터 냈다. “그렇게 살 거면 집 나가라”는 말까지 해놓고 후회하며 밤새 울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말들이 과연 내 아이에게 어떤 상처로 남았을까. 책 속 마리아처럼 아이의 눈높이에서, 아이의 마음으로 다가가려는 노력은 얼마나 했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마리아가 아이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는 장면은, 단순한 음악의 힘 이상이었다. 그것은 사랑의 언어였고, 마음을 열게 하는 따뜻한 도구였다. 내 딸도 예전엔 노래 부르기를 좋아했다. 요즘은 방 안에서조차 조용한 아이. 다시 그 아이의 노래가 들릴 수 있을까? 그 소리를 들으려면, 내가 먼저 귀를 열고 마음을 열어야 한다는 걸 이 책은 말해주었다.



『사운드 오브 뮤직』은 단순히 아름다운 가족 이야기, 감동적인 실화가 아니다. 나처럼 사춘기 자녀와의 관계에 지치고 외로움을 느끼는 부모에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와 따뜻함을 건네는 책이다. 변화는 큰 사건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여는 작은 노래 한 소절, 함께 걷는 짧은 대화 속에서 시작된다는 걸 배웠다.

딸아이는 아직 혼란의 터널 속에 있는 것 같다. 술, 담배, 거친 말투, 반항적인 눈빛. 겉으론 어른처럼 보이지만 마음속엔 여전히 불안한 아이가 숨어 있다는 걸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마리아처럼 나도 그 어둠 속에서 아이를 탓하기보다, 조용히 노래를 부르며 기다려보려 한다. 언젠가 딸이 그 노래를 들을 준비가 되었을 때, 내 곁에 내가 여전히 있다는 걸 알 수 있도록.

『사운드 오브 뮤직』은 나에게 부모로서의 길을 다시 묻게 만든 책이다. 마리아처럼 완벽하진 못하겠지만, 적어도 진심을 담아 한 걸음씩 내딛고 싶다. 우리 딸도 언젠가 이 책을 읽고, "엄마도 참 많이 고민하고 사랑했구나" 하고 느껴주길 바란다. 지금은 말없이 등을 돌리고 있어도, 그 마음이 닿는 날이 꼭 올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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