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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빈슨 크루소'와 격정의 사춘기

언제쯤 파도가 잔잔해질까

by 여토
혼돈의 섬에서 벗어나기 위해



『로빈슨 크루소』는 무인도에 홀로 남겨진 한 인간이 극한의 고립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과정을 그린 이야기다. 처음에는 절망과 공포에 휩싸인 크루소였지만, 그는 점차 자연에 적응하며 집을 짓고, 농사를 짓고, 스스로 문명을 만들어 나간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한동안 계속 마음이 무거웠다. 주인공이 처한 고립된 상황이, 나의 가정이 처한 감정적 고립과 너무 닮았기 때문이다.



우리 가족은 지금 어쩌면 감정의 무인도에 고립되어 있는 것 같다. 유학을 보냈던 딸은 예상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돌아왔다. 매일 밤 외국 남자와 통화하며, 용돈을 술과 담배, 수십 개의 피어싱에 쏟아붓고, 거짓말을 일삼는다. 함께 어울리는 친구들은 불법 도박까지 권유한다.

그 아이는 밖에서는 천사 같은 이미지로 사회생활을 잘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집에 들어오면 가족을 깔보며 온갖 갑질을 한다. 그녀가 언제 또 폭발할까 무서워 조심스럽게 말조차 걸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은 마치 로빈슨 크루소가 갑자기 폭풍우에 휩쓸려 무인도에 홀로 남겨진 것과 같다. 아무도 도와줄 수 없고, 누구와도 소통할 수 없는 외로운 상황.

하지만 크루소는 거기서 무너지지 않았다. 그는 스스로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돌아보고, 외부 환경이 아닌 자신의 내면을 변화시켜 나가기 시작했다.

크루소는 하루하루를 계획하며 성실하게 살아갔다. 처음엔 단순히 생존을 위한 노동이었지만, 점차 그것은 그를 안정시키는 루틴이 되었고, 결국에는 자신만의 삶을 만들어가는 수단이 되었다.


나는 이 점이 지금의 우리 가족에게 가장 필요한 메시지라고 느꼈다. 혼란스럽고 어두운 상황 속에서도, 누군가는 자기 자리를 지키며 중심을 잡아야 한다. 아무리 상대가 마음대로 행동하고 실망을 안겨준다고 해도, 내 감정이 휩쓸리면 더 큰 혼돈이 온다.

책을 읽으며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크루소가 ‘프라이데이’를 만나게 되는 장면이다.


외로움 속에서 살아가던 그에게 찾아온 인간 관계. 하지만 그는 단순히 반가워한 것이 아니라, 프라이데이를 이해하려 애쓰고, 함께 살아가기 위해 노력했다. 지금의 내 상황에서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인물이라도, 언젠가는 대화할 수 있는 순간이 올지 모른다는 희망을 느꼈다. 비록 지금은 내 딸이 외국 문화에 물들어 상처 주는 말과 행동을 일삼고 있지만, 언젠가는 진심이 통할 수 있을까.

결국 이 책은 단순한 표류기나 생존기가 아니었다. 인간의 고립과 회복, 그리고 관계에 대한 이야기였다. 우리는 누구나 마음속에 무인도를 가지고 살아간다.


특히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도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고립되는 경우가 많다. 내 딸 역시 어쩌면 자신만의 고립된 섬에 갇혀, 방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크루소가 절망 속에서도 자신을 지키며 살아남았듯이, 나 또한 지금의 현실 속에서 내가 지켜야 할 가치를 잃지 않으려 한다.

『로빈슨 크루소』는 나에게 단순한 고전이 아닌, 지금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거울 같은 책이었다. 지금 우리 가족은 혼돈 속에 있지만, 나는 크루소처럼 포기하지 않고 중심을 잡고 싶다. 언젠가는 진심이 통하고,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 믿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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