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사춘기
괴테의 『파우스트』를 덮는 순간, 나는 가슴 깊숙이 내려앉는 한숨을 내쉬었다. 한때 지혜를 탐했던 박사 파우스트는 결국 메피스토펠레스와 계약을 맺고, 젊음과 쾌락을 얻는 대가로 자신의 영혼을 내놓는다. 끝없는 욕망과 방황 속에서 진리를 좇던 그의 이야기가, 믿기 힘들 만큼 지금의 우리 딸과 닮아 있었다.
딸은 지금 사춘기의 한복판에 서 있다. 매일 밤늦게 통화하는 외국 남자친구, 점점 진해지는 화장, 서랍 깊숙이 숨겨둔 전자담배 액상들, 그리고 매번 “괜찮아, 엄마. 나도 알아서 할 수 있어”라는 그 말이, 마치 메피스토펠레스가 파우스트에게 속삭이던 것처럼 들린다. 그 속삭임이 딸의 자존감을 부풀리고 자유를 환상처럼 안겨주는 것 같아 두렵기만 하다.
『파우스트』 속 파우스트는 진리를 알고 싶어 밤새 책을 파헤치지만, 결국 인간의 한계를 넘지 못하고 절망한다. 그때 메피스토펠레스는 달콤한 제안을 한다. 젊음, 사랑, 쾌락, 모든 것을 누리게 해주겠다며 다가온다. 하지만 그 대가는 너무나 크고 깊은 회한으로 남는다.
내 딸에게도 메피스토펠레스는 이미 곁에 와 있는 듯하다. SNS에서 만난 낯선 남자, 그가 보여주는 이국적이고 자극적인 말투와 감정들, 또래 친구들과의 비밀스러운 파티, 편의점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술과 담배, 그것들이 딸의 허전한 마음을 달래주는 ‘악마의 계약서’는 아닐까.
나는 그녀가 왜 자꾸 자신을 던지듯 살아가는지 이해하려 애써본다. 어쩌면 그녀도 파우스트처럼, ‘내가 누구인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알고 싶은 걸지도 모른다. 엄마라는 이유로 아이의 자유를 통제하려 하고, 그녀의 혼란을 나의 불안으로만 바라봤던 나는, 어느 순간 그녀의 눈을 진심으로 들여다보지 않았다.
『파우스트』에서 가장 가슴 아픈 장면은, 파우스트가 그레첸을 유혹하고 결국 그녀를 파멸시키는 대목이다. 딸에게 그레첸 같은 순수함이 남아있기를 바라는 나는, 세상이 그녀를 소비하고 버리는 일이 없기를, 끝내 책임지지 않는 파우스트 같은 이들로부터 멀어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러나 『파우스트』는 비극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파우스트는 끝내 참된 의미를 깨닫고 구원을 얻는다. 삶은 허무하고 욕망은 배신할지라도, 사랑과 헌신,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가 결국 그를 살린다.
그래서 나는 오늘 딸의 방문 앞에 조심스럽게 서본다. “같이 얘기할래?”라는 말 한마디, 그것이 내가 딸에게 내미는 구원의 끈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녀를 단죄하거나 구속하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믿어주고 사랑하는 것이다. 어쩌면 그것이 이 험한 사춘기의 밤을 통과하는 유일한 길인지도 모른다.
파우스트처럼, 우리 딸도 방황하고, 때로는 잘못된 선택을 할 것이다. 그러나 그 역시 인생의 일부이며, 우리는 그 과정을 통해 성장한다. 나는 더 이상 그녀를 바꾸려 하지 않으려 한다. 대신 그녀 곁을 지키며, 언제든 돌아올 수 있는 따뜻한 등불이 되어주려 한다.
『파우스트』는 내게 말했다. “유혹과 실수도 인간이다. 그러나 그 끝에서 돌아올 수 있다면, 그 모든 고통은 의미가 된다.” 나도 그렇게 믿고 싶다. 오늘은 조금 더 따뜻한 눈빛으로, 딸을 기다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