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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대로되는사람 Oct 10. 2021

제일 늦게 보내고,
제일 빨리 데려온 엄마의 속사정

  여섯 살이 되면서 유치원에 가게 되었으니, 아이의 적응 문제는 이미 어느 정도 각오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이가 상처로 남을 상황들이 생긴다면 언제든지 유치원 생활을 접을 생각도 함께 가지고 보냈다. 꽤 오랫동안 교육현장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해오면서 느낀 것 중 하나는 아이의 사회성이 중요하긴 하지만 사회성의 잣대로 아이를 교육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도 함께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던 엄마는 결국 유치원에 제일 늦게 가고, 제일 빨리 데려오는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되었다. 그리고 그 선택에 전혀 후회가 없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내 딸아이는 여섯 살, 늦은 나이에 유치원에 처음 보내게 된 것도 모자라 아이의 등원은 4월부터 가능했다. 다리가 부러지는 사고로 미뤄졌다. 3월 한 달 동안 다른 아이들은 이미 적응 기간도 끝났고, 친구관계도 형성된 상태였다. 더욱이 다리까지 완전히 치료되지 않은 상태여서 계속 절뚝거리고 있는 상태, 우리 아이를 바라보는 다른 아이들의 시선이 남다르게 느껴질 정도. 그런 환경 속에서 아이가 겪어내야 할 힘듦을 처음에는 몰랐다. 알았더라면 나는 절대로 기관에 아이를 맡기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리 힘들어도, 아무리 사회성이 부족한 아이가 되더라도 엄마인 나에게 내 아이의 마음에 남을 상처보다 그런 것들이 더 의미 있는 일은 아니었으니까. 


 아이가 다니게 된 유치원은 초등학교 내 병설유치원이었다. 지원한 사립과 국공립 유치원들 중 추첨으로 가게 된 곳이다. 그전까지 기관에 보내본 경험이 없는 나로서는 아는 것이라곤 유치원마다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정도였다. 그런데 생각했던 것보다 많이 달랐다. 아이는 유치원에서 점심을 전혀 먹지 않는다고 했다. 아이에게 물으니 급식실이 너무 크고 시끄러워서 무섭다고 했다. 음식은 너무 맵고, 커서 먹을 수가 없다고 했다. 여섯 살 아이가 초등학생들처럼 급식실에서 식사를 하고, 똑같은 메뉴에 식판정리까지 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엄마는 그때서야 처음으로 급식실을 방문해보았고, 아이 점심메뉴를 체크해 보았다. 정말 넓은 공간에 스테인리스 그릇 소리, 아이들 소리로 굉장히 분주한 곳이었다. 아이가 맵다고 했던 음식들은 육개장 국물, 김치, 매운 닭강정, 깻잎김치 등 맛깔스럽지만 내 아이가 먹기에는 힘든 음식들. 아이가 점심을 먹지 않으니 오후 시간까지 둘 수가 없어 일찍 데리러 가기 시작했다. 처음 아이가 유치원에 등원할 때는 시간이 필요하다고만 생각했지 아이 입장이 되어보지 못했다. 급식문제만이 아니라, 자신의 이름 석자도 모르는 까막눈 아이가 몇 년씩 기관 생활을 거쳐온 아이들과 한 유치원에서 함께 적응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텐데... 그땐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엄마였다. 아직도 갈 길이 먼 엄마지만, 보통의 엄마들이 겪지 않았을 육아라는 거친 길을 좀 걸아보고 나니 아마도 지금이라면 나는 내 아이에게 맡는 보육 중심의 다른 기관이나 당장 그만두는 것을 선택하는 쪽이 백번 옳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그때는 아는 것이 없으니 무식하기까지 했다. 아이가 처음 유치원에 등원할 때는 시간이 필요하다고만 생각했지 전혀 아이 입장이 되어보지 못했다. 아무것도 모르고, 세상 눈치 같은 것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자연인 같은 내 아이는 새로운 환경이 얼마나 공포스러웠을까? 물론 처음 며칠 동안은 새로운 환경이 마냥 신기하고 즐거웠던 것 같다. 선생님의 통제와 눈치, 친구들의 방어가 무엇인지 몰랐기에 밝은 얼굴로 등원을 했다. 그러나 정말 며칠이었다. 시간이 갈수록 아침마다 은근한 신경전을 벌이는 횟수가 많아졌다. 언어로 자신의 의사표시가 정확하지 않은 아이가 서툴게 내뱉는 한마디, 한마디가 엄마 가슴에 비수처럼 꽂혔고, 유치원에 들어갈 때마다 어느 순간 밝음은 사라지고, ‘긴장’과 ‘경직됨’이 느껴지는 아이의 표정과 몸짓에서 마음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유치원 선생님의 반가운 아침 인사도, 친절하고 상냥한 얼굴 표정에도 아이는 편치 않은 얼굴이었다. 유치원에서 친구들만큼 뭔가를 잘 해내지 못해 늘 ‘도와줘’라는 말을 해야 하는 아이, 대화가 지속되지 못해 놀이를 이어가거나 주도적으로 활동에 참여하지 못하는 아이라는 것을 스스로 너무 빨리 알아버린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친구들이 놀아주지 않아.’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아이를 위로했지만 가슴이 아팠다. 정말로 내 아이는 어떤 상황에 어떻게 말하고 행동해야 하는지 몰랐다. 가르치지 못한 엄마의 잘못이 크다. 여섯 살 또래 친구들의 인내심 정도를 고려해 보았을 때 내 아이의 언어 속도는 너무 느려 기다려줄 수 없었고, 발음도 부정확하고, 언어 표현방식도 서툰 아이는 정말로 말로 표현할 수 없어서 행동이 앞서갔다. 그런 경험들이 쌓이면서 아이는 전보다 빠르게 자신감을 잃어갔고, 집에 데려오면 지친 듯 바로 잠이 들었다. 아이는 분명 힘들어하고 있었다. 선생님께는 항상 “조금만 기다려주세요,”라고 말씀드렸지만, 하루에도 수십 번씩 소수 인원의 사립유치원을 생각해보고, 유치원이 아닌 가정보육도 생각해보았다. 하지만 일하는 엄마에게는 어떤 결정도 쉽지 않았다. 


 더 이상 이대로 있을 수는 없는 상황, 엄마는 유치원을 계속 보내는 대신 가장 늦게 등원하고 가장 빨리 하원 하는 방법을 택했다. 무엇보다 내 아이의 감정이 중요하니까. 준비되지 않은 아이의 상태에서 겪어내야 될 일이 아니라면, 경험하지 않아도 될, 아니 경험해야 될 일이라고 하더라도 아직 아이의 인지 정도가 상황을 받아들이기에 너무 이르다면, 천천히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아이의 나이와는 큰 상관이 없음을 나는 뒤늦게 깨달았다. 좀 느려도 아이는 반드시 성장한다는 사실을 이제는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후에 출근하는 내 스케줄에 맞추어 늦은 아침까지 나는 아이 얼굴을 쓸어주며 침대에서 뒹굴뒹굴 누워있기도 하고, 함께 책도 읽어주고, 말공부도 하고, 필사도 하고, 강아지와 시간을 보내기도 하면서 아이의 기분을 한껏 끌어올린 후 등원을 시켰다. 일찍 등원해야 친구들과 관계 형성이 빠르고, 적응이 빠를 것이라는 선생님의 충고는 이제 더 이상 귀에 들리지도 않았던 때이다. 처음엔 몇 개월만 이렇게 해보려고 했다. 엄마와 함께 있고 싶어 하는 아이에게 일하는 엄마에 대한 배고픔을 달래주고 싶었다. 함께 하는 시간을 늘려주고 싶었을 뿐이다. 사실 그 마음이 제일 컸지만, 점점 이 시간에 아이의 느린 발달 상황에 맞춘 엄마의 ‘느린 엄마표 시도’들이 조금씩 아이를 변화시키고 있다는 게 느껴지면서 나는 더 많은 것들을 아이와 해보고 싶어졌다. 


 그때부터 밤을 새워가며 책을 찾아보고, 느린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들의 조언에도 귀 기울이며 내 아이에게 적용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아이가 눈치채지 못하게 여러모로 시도했다. 그런 내 모습을 바라보며 가족들이 놀랄 정도였고, 그렇게 몇 개월이 지나면서 아이는 지금껏 누구에게도 표현하지 않고, 말하지도 않았던 이야기들을 내게 비밀스럽게 전하기 시작했다. 물어도 대답조차 하지 않아 속을 태웠던 아이가 유치원에서 있었던 일, 친구들의 표정, 선생님의 표정과 언어들을 흉내 내며 내게 짧은 단어들로 툭툭 내뱉는 순간들이 많아지면서 나는 감동했다. 어쩌면 이렇게 오전 2~3시간, 오후 2~3시간을 아이와 보낼 수 있으면 또래 아이들과의 간격을 훨씬 빨리 좁힐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에 나는 약간 흥분해 있었다. 더 열심히 아이와 놀며, 언어가 트일 수 있도록 말공부를 했다. 책을 읽어주고 글을 가르쳐주면서 내 아이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 그렇게 보낸 8개월. 어느 날 아이가 말공부를 할 때 사용했던 낱말카드와 문장 카드 등을 가지고 와서 내게 읽어주기 시작했다. ‘금세 외웠구나!’ 하며 지나치려는데 아기 때 읽어주었던 책을 가지고 와서 읽기 시작한다. 그때도 아이가 그림을 보며 외워서 읽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택배로 배달된 바로 옆에 놓여있던 상자 위의 글씨를 정확하게 읽는 게 아닌가? 그래서 내가 읽고 있던 책의 페이지를 열어 읽어볼 수 있는지 물었더니 아이가 더듬더듬 읽는다. 그동안 반응 없는 아이를 보며 지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는데 인풋이 되고 있었다는 사실에 놀라웠고, 감사했다. 


 그렇게 아이는 여섯 살 해를 끝내는 겨울방학을 맞이했다. 나는 홀가분한 마음과 감사한 마음으로 울컥했다. 아울러 학교에 들어갈 때까지 남은 1년의 시간을 어떻게 아이와 보내야 할지 조금은 설렘 가득한 조급함으로 마음이 복잡했다. 소근육 발달도 느렸던 아이가 드디어 연필을 잡고 글 쓰는 것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방학 두 달 동안 유치원에 가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아이에게 성경구절과 동시 등을 써주며 따라 쓰게 해 주었다. 그런 활동과 함께 이야기처럼 꾸며진 논술책과 대화연습용 그림책을 구입해 병행했다. 두 달 동안 아이의 어휘력과 문장력이 훨씬 좋아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일곱 살 3월, 다시 유치원에 등원. 하지만 나는 여전히 아이와 엄마가 보내는 시간을 동일하게 유지하고 싶어 유치원에 양해를 구했다. 그리고 아이는 글을 알게 되자 책 읽기를 더 좋아하게 되었고, 읽는 책의 양이 부쩍 늘었다. 글쓰기도 병행되어 그림일기 쓰기, 한 줄 독서노트 쓰기까지 해 나가면서 많이 성장할 수 있었다. 아직 발음과 사회성이 숙제처럼 남기는 했지만, 일곱 살 유치원 생활은 아이에게도, 엄마인 내게도 가장 즐겁고 보람 있고, 뜻깊은 시간이었다. 연세가 많으신 유치원 선생님은 늘 아이의 발달이 눈에 띄게 빨라지고, 안정되어 가는 모습을 보인다며 엄마인 나를 안심시켜주셨다. 이미 성인이 된 선생님의 자녀 중에도 말이 늦어서 걱정된 아이가 있었지만 시간이 걸릴 뿐 아무 문제없었다며 인사를 건네주셨다. 그것만으로도 감사했다. 스무 명이 넘는 아이들을 지도하시는 선생님께 세심한 관심을 기대하는 것은 욕심이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아이는 정확하게 지금도 얘기한다. “00 선생님은 참 좋아. 나를 사랑해줬어.” “어떻게?”라는 엄마의 짓궂은 질문에 항상 “그냥, 나를 사랑해줬어.”라는 대답으로 끝내지만, 엄마는 안다. 아이의 그 짧은 대답에, 아이의 가슴으로 내뱉는 그 말에, 얼마나 많은 뜻들이 담겨있는지... 정말 감사할 일이다.      


 한순간 한순간이 고비라고 생각했는데, 한 고개, 한 고개를 넘을 때마다 숨이 차올라 다음 고개는 보이지도 않았는데, 나에게도 이렇게 감사가 넘치는 날이 오다니 믿기지 않으면서도 즐기고 있다. 육아는 시간이 약이라는 말도 실감이 되고, 육아는 부모의 관심과 사랑이 만들어낸다는 사실도 깨달으며, 이제야 아이 키우는 재미와 즐거움과 감사함을 누리고 있다. 실컷 누리며, 지지고 볶으며 아이도 행복하고 엄마도 행복한 우리의 역사를 만들어낼 볼 생각이다. 오늘 더 많이 사랑하며 그렇게 아이와 함께 만든 오늘이라는 시간의 역사가 또 지나간다. 이 모든 순간이 소중하고 감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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