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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 은 May 06. 2024

한 번은 실수니까

과연 실수였을까

10월의 제주도는 날씨가 무척 좋았다. 햇빛이 내리쬐고 선선한 바람이 부는 곳에 서서 바다를 마음껏 바라보았다. 큰 걱정 없이 우리는 여행을 즐겼다. 다 같이 사진도 찍고 산책도 하고 여유롭게 낮잠도 잤다. 언니 옆에서 자고 있던 나는 오빠의 통화 소리에 잠이 깼다. 비몽사몽으로 바라본 장면은 어딘가 심각해 보이는 오빠의 표정과 옆에 앉아 말없이 앉아 있는 형부였다. 


별일 아니겠거니 했지만, 자꾸 신경이 쓰였다. 그날 저녁, 오빠는 가족들에게 일 때문에 내일 먼저 서울로 돌아가야겠다는 말을 했다. 아빠와 엄마는 당황했지만, 오히려 언니와 형부는 이미 알고 있는 사람처럼 그러라고 했다. 정말 오랜만에 온 여행인데 오빠가 일찍 간다니 아쉬우면서도 느낌이 싸했다.


밤이 되어 자려고 누웠다가 계속 뒤척였다. 결국 언니와 형부가 있는 방에 문을 두드렸고, 그곳엔 오빠도 앉아 있었다. 세 명 모두 당황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고 순간 내 느낌이 틀리지 않았음을 직감했다. 나도 모르게 자연스레 언니 옆에 앉아 무슨 일이 있는지 물었다. 오빠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고 형부는 한숨만 내쉴 뿐이었다. 언니는 조금 고민하는 듯하더니 “진우 네가 직접 말해.”라고 했다.


오빠는 사업이 번창하기 시작한 이후로 미친 듯이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마치 어렸을 때 가난에 가까웠던 집안 사정을 부정하려는 듯. 자신의 노력만으로 몇억을 모으기 시작한 오빠의 욕심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여기서 좀만 더 하면 더 많이 모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다가 손을 대기 시작했지.”

몇억으로 만족하지 못했던 오빠는 몇십억의 단위를 만들기 위해 투자 방법을 찾아보게 되었고, 친구의 추천으로 주식 중 선물이라는 방법을 택하게 됐다.


선물은 천만 원이 십억 원이 될 수 있고, 반대로 십억 원이 천만 원이 될 수 있는 리스크가 매우 큰 방법이다. 오빠는 처음에 이익을 보다가 점점 손해를 보기 시작했고, 사업 자금까지 손을 대기 시작한 것이다. 당장 다른 회사에 계약금을 보내야 하는데 그 돈마저 투자에 써버렸기에 언니와 형부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예전에 비해 벌 만큼 벌었으면서 욕심을 내는 게 도무지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언니와 형부는 인생에서 한 번쯤 할 수 있는 실수라며 다시는 위험한 투자에 손대지 않는 조건으로 계약금을 빌려주기로 했다. 


다음 날 오빠는 수심이 가득한 얼굴로 떠났고, 언니와 형부는 부모님에게 모든 정황을 설명했다. 이야기를 듣던 아빠는 “이제 너희들한테 아빠랑 엄마는 보호자가 아니냐? 그런 걸 왜 너희들끼리 해결하니?”라고 이야기했다. 조금 화가 나보였다. 그래도 아빠는 금세 화를 추스르고 이미 벌어진 일이니 앞으로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주의를 주기로 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서울로 돌아간 오빠는 마지막 투자금이 크게 올랐고 그걸 마지막으로 다시는, 두 번 다시는 주식에 손을 대지 않기로 했다. 오빠의 한 번의 실수가 하나의 에피소드로 남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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