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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 은 May 13. 2024

갑자기 오빠가 찾아온 날

기대한 내가 잘못이지

불안한 예감이 지워질 때쯤 평소와 별다를 것 없이 평범한 날이었다. 아침에 겨우 눈을 뜨고 샤워를 한 후 만원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직업상 늘 점심을 10분 안에 먹어야 했고, 그렇게 생긴 역류성 식도염으로 인해 속은 울렁거렸다. 거기다 넘쳐나는 사람들 사이에 공황증세가 일어나기 직전이었다. 매일 퇴사를 생각하다가도 최선을 다해 살다 보면 나도 결국 언니, 오빠처럼 경제적으로 넉넉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외제차 한 대쯤은 거뜬하게 끌고 다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여러 가지 생각에 잠긴 채로 멍을 때리자 금방 역에 도착했고, 갑자기 오빠에게 메시지가 왔다. 내가 의심하기 시작한 이후로 처음 연락하는 거라 무슨 일인가 싶었는데 오늘 퇴근 후 뭐 하냐며 저녁이나 한 끼 하자는 내용이었다. 웬일로 회사 앞까지 온다는 건지 살짝 의아했지만, 그래도 나를 보러 멀리까지 와준다는 게 고마워서 이따 보자고 답장을 남겼다.


퇴근 시간에 맞춰 오빠는 회사 앞에 외제차를 끌고 나를 데리러 왔고, 우리는 광화문의 한 식당으로 향했다. 요즘 일은 어떤지, 서로 잘 지냈는지, 연애 전선은 문제없는지 등 소소한 대화를 나누며 우리는 식당에 도착했다. 먹고 싶은 걸 다 시키라는 오빠 말에 스테이크, 피자, 타코, 에이드까지 잔뜩 메뉴를 골랐다. 돼지 같다는 말을 내뱉으며 장난스러운 미소를 짓던 오빠의 눈빛이 뭔가 어색해 보였다.


하나둘씩 나오는 음식을 보며 식사를 시작했다. 분명 오빠가 나에게 할 말이 있는 듯한 표정이었는데 왠지 머뭇거리는 느낌이었다. 궁금한 건 못 참는 성격이기에 무슨 일 있냐고 물었다. 오빠는 고민하는 표정을 짓더니 이제 곧 아빠가 정년퇴직을 두고 있는데 마땅한 집 한 채가 없어서 청약을 해보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최근 사업이 어려워져 내 명의로 대출을 받아달라고 했다. 금방 벌어서 줄 테니 엄마, 아빠를 위해서 조금만 투자해 달라고, 대신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말아 달라고.


느낌이 싸했다. 이해되지 않는 난 날이 선 말투로 대답했다.

“엄마, 아빠를 위한 건데 비밀로 하라고?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평생 우기는 거 하나 없이 차가운 현실 앞에 그저 모든 걸 쏟아내 살아왔던 오빠는

“그냥 좀 해줘. 한 번만 해줄 수 있잖아.”라며 막무가내로 나왔다.


나는 고민했다. 작년 이맘때쯤 오빠는 주식 중독으로 몇억의 돈을 잃고 따고를 반복했고, 심지어 최근에 그 앱을 사용하는 걸 봤던 게 떠올랐다. 내가 동생이라는 이유로 나에게 한 번도 부탁이라는 걸 해본 적 없는 오빠의 부탁을 들어줘야 할지, 아니면 의심하고 신중해야 하는지 혼란스러웠다.


결국 나는 조금 더 생각을 해보고 연락을 준다고 했다. 같이 차에 타고 내가 내릴 역까지 데려다주는 동안 우리는 아무 말도 없었다. 온전히 나를 보기 위해서 온 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목적을 두고 온 게 실망스러웠다. 나는 오빠의 눈도 보지 않은 채 인사를 건네고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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