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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 은 May 17. 2024

안방에서 들리는 울음소리

그리고 희미하게 내뱉는 기도

집에 돌아와 한참을 생각했다. 은행 앱을 켜서 대출을 얼마나 받을 수 있는지 확인하고 창을 끄기를 몇 번이고 반복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아는 오빠는 자신의 주식 중독 때문에 부모님을 핑계로 나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할 사람은 아니었다. 어쩌면 그렇게 믿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혼란스러운 밤을 보내고 다음 날 오빠에게 또다시 연락이 왔다.

“아마 무조건 청약될 거야. 그러니까 미리 좀 부탁해.”

“결정했어?”

“안 해주면 이제 나 어떻게 될지 몰라.”


점점 달라지는 말투와 설득이 아닌 협박 같은 연락들. 결국 혼자 해결할 수 없을 거란 판단이 들었고,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자초지종 설명하자 너무나도 단호하게 대출해 주지 말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제주도에서 봤던 형부의 표정만큼이나 차갑고 날이 선 말투였다. 일에 집중하지 않으면 안전에 위협이 생기는 직업을 가진 나는 그날 종이에 손을 크게 베였다.


집에 돌아오는 내내 오빠가 보낸 메시지를 보며 혹여나 잘못되진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나를 짓눌렀다. 극단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처럼 메시지를 보내는 오빠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았다간 큰일이 날 것만 같았다. 두려운 마음을 어떻게든 풀어보기 위해 언니에게 계속해서 메시지를 보냈다.


“오빠 잘못되면 어떡하지? 너무 걱정돼.”   

- “걱정 마. 절대 그럴 일 없어.”


어렸을 때부터 중요한 순간에 언니의 말은 항상 강직하고 믿음직스러웠다. 늘 그렇듯 그저 그 말만 믿은 채 집으로 향했다. 평소와 달리 온 집안의 불이 꺼져있고 안방에서 희미한 빛만 새어 나올 뿐이었다. 엄마에게 다녀왔다는 인사를 건네려고 하려던 찰나에 들린 건 엄마의 흑흑거리는 울음소리와 희미하게 내뱉는 기도였다. 순간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온몸에 땀이 나기 시작했다.


‘아닐 거야. 아니어야만 해.’

나를 엄습했던 두려움이 아무것도 아니길 바랐다. 덜덜 떨리는 두 손으로 안방 문 손잡이를 잡고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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