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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 은 May 27. 2024

죽이고 싶은 마음

그 사람의 존재는 나에게 고통이다.

엄마의 흐느끼는 소리를 듣는 순간 나는 정신이 나가는 듯했다. 참는 데도 한계가 있는데 나의 인내는 이미 바닥을 친 지 한참이었다. 피가 섞인 그 사람은 삼십여 년이 되는 시간을 희생한 아빠를 볼품없이 만들고, 엄마를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다. 그저 자신의 욕심 때문에.


살면서 엄마, 아빠는 우리에게 단 한 번도 돈을 벌어오라고 혹은 돈을 많이 벌라고 한 적이 없었는데. 그 사람은 괜한 부담감으로 결국 우리의 부모, 아니 나의 부모를 비참하게 만들었다. 엄마, 아빠는 그 사람에게 책임을 물겠다고 말했지만, 실제로는 계속 감싸기만 하는 모습뿐이었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더니.


그날 밤 엄마와 아빠는 나의 방으로 들어와 이야기를 좀 나누자고 했다. 듣고 싶은 말도, 하고 싶은 말도 없었다. 자식 한 명만 감싸는 부모는 다른 자식에게는 모진 부모가 된다. 엄마는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 차분히 설명해주었지만 그것마저도 나에겐 고통이었다. 결국 나는 참다못해 입에 담지 못할 말을 내뱉었다.

“그래서 어떡하라고? 엄마, 아빠. 난 죽어버리고 싶어. 맨날 바깥 창문 보며 뛰어내릴 생각 한다고! 알기나 해?”


침묵이 흘렀다. 어려서부터 아빠를 좋아하고, 때로는 무서워했던 내가 이렇게 소리 내어 화낸 건 처음이었다. 당황한 아빠는 할머니가 들을 수도 있으니 우선 진정하라고 이야기했다. 할머니 집에 얹혀사는 우리는 울음도, 화도 마음대로 낼 수 없는 상황이었다.


눈물이 뚝뚝 흘렀다. 세상이 원망스러웠고 이 모든 상황이 아팠다. 그 사람을 죽이고 나도 죽어버리고 싶었다. 그런데 그럴 수가 없었다. 눈앞에 앉아 있는 이 두 사람 때문에 나는,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거라곤 이들의 잘못도 아닌 걸 이들 탓으로 돌리며 소리 지르는 것밖에.


한숨을 크게 내쉬던 아빠는 나를 붙잡고 말했다.

“그래도 가족이잖아. 우리 아니면 안아줄 사람도 없단다. 힘든 거 알아. 조금만 버텨보자. 너도 그렇겠지만 엄마, 아빠는 네 오빠가 안 좋은 생각을 할까 봐 하루하루 불안해.”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던 날에도 그렇게 슬픈 눈을 하지 않았던 내 아빠. 매일 그 사람만 걱정하는 줄 알았더니 보이지 않는 곳에서 혼자 힘들게 버텨내고 있던 나의 아빠. 그럼에도 또 나를 토닥이는 내가 사랑하는 우리 아빠. 그렇게 오늘도 나는 그 사람에 대한 원망을 삼켜내며 아빠 품에 안겨 숨죽여 울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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