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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 은 May 31. 2024

최악의 생일

태어난 것 조차 괴로웠다.

미워하는 것도 에너지가 필요한 일이었다. 멈추지 않고 오빠에 대해 생각하고 원망하는 건 나를 지치게 만들었고, 오빠의 상태도 만만치 않았다. 내가 죽이기 전에 죽어버릴 것 같은 사람처럼 스스로 목숨 끊는 법에 대해 검색하고, 집 밖으로 며칠을 나오지 않으며 은둔생활을 했다. 부모님은 혹여나 오빠가 잘못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에 매일을 긴장하며 살았고, 언니와 나는 지금 오빠가 그렇게 넘어지는 모습 조차도 꼴 보기 싫었다.


추운 겨울, 암흑 같은 날은 반복됐고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일에 전념했다. 그러다보니 나의 생일이 다가왔다. 상황이 좋지 않았던 만큼 생일에 대한 기대 없이 미친듯이 닥치는 대로 일을 하며 지냈다. 이유도 말하지 않고 일만 하는 내가 안쓰러웠는지, 아니면 무슨 일이 있는지 눈치챘는지, 늘 내 곁에 있는 친구들은 평소보다 더 밝게 생일을 축하해줬다. 내 이름이 적힌 케이크와 정성이 가득한 편지, 그리고 내가 갖고 싶다고 했던 신발을 선물해주었다. 간만에 살아있음을 감사하는 날이었다. 태어난 것 조차도 괴로웠던 요즘, 곁에 있는 사랑하는 이들 덕에 숨 쉴 구멍이 생긴 날이었다.


소중한 존재 덕분에 오랜만에 기분 좋은 하루를 보내고 자취방에 돌아와 몸을 녹이고 있었다. 영하 20도가 되는 날씨였다. 누워서 친구들과 찍은 사진을 보며 미소를 짓고 있는데 갑자기 아빠에게 전화가 왔다. 받지 말까, 자는 척 할까 고민했지만 결국 전화를 받고 말았다.


“생일 축하한다. 그런데 오빠가 상태가 좀 안 좋은 것 같아. 전화 한 번해서 다독여 줄 수 있겠니?”

 침묵이 흘렀다. 눈에 눈물이 고였다. 원래도 잘 우는 난 그날 또 눈물이 가득 차올랐다.

“네. 안녕히 주무세요.”

겨우 울음을 삼킨 채 아빠에게 알겠다고 말했다.


또 다시 차가워진 마음으로 나는 전화를 끊고 엉엉 울었다. 내 생일인데, 그래도 내가 태어난 날인데 나의 부모는 오빠만 생각했다. 오빠에게 전화는 무슨, 저주를 퍼붓지 않은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마음 약한 나는 고민 끝에 오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좀 어때?”   

- “아까보단 괜찮아졌어. 미안해 동생. 최악의 생일을 맞이하게 해서.”


아, 알고는 있었구나. 오늘 생일이 태어난 중 가장 최악이라는 걸. 그런데 미안하다는 오빠의 말에 마음이 찢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이상했다. 너무 미운 그 사람. 오빠라고도 부르고 싶지 않은 나의 혈육. 동생의 생일날 축하 대신 사과를 하는 오빤 얼마나 힘들까 라는 생각이 머릿 속에 스쳤다. 마음이 약해진 나는 문득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곤 오빠에게 메세지를 보냈다.

"축하해줘서 고맙고, 죽지 않고 살아줘서 고마워. 힘내자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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