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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 은 Jun 03. 2024

하루 200통의 전화

우린 이겨낼 수 있을까

나의 문자 덕분인지, 부모님의 걱정 덕분인지 오빠는 다시 일을 하기 시작했다. 하고 있던 사업은 대금으로 인해 잠시 중단되었기 때문에 여러 가지 아르바이트를 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은 마트 홍보, 어느 날은 음식점 서빙, 어느 날은 물류창고에서 일했다. 하루 열 시간이 다 되어가는 시간 동안 몸을 써가면서 일했지만 오빠가 벌어들이는 돈은 빚에 비해 터무니없이 적은 돈이었다. 그럼에도 매일 일이 끝난 후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엄마, 세상에 힘들게 사는 사람들이 참 많았어. 나도 정신 차리고 제대로 살게요. 미안해요.”라는 말을 남기곤 했다.


그렇게 한 달 정도의 시간이 지나고, 오빠는 아르바이트로는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없다는 판단을 하면서 사업을 복구시키기로 계획했다. 역시나 쉽게 될 리가 없었다. 대금도 해결해야 했고, 계약자로부터 신뢰를 잃었기에 많은 노력과 증명이 필요했다. 오빠는 전처럼 다시 미친 듯이 발로 뛰어다니며 사람을 만나 설득하고 사업을 되살리기 위해 애썼다. 그 과정에서 아빠는 오빠의 상사를 만나기도 하고, 엄마는 대금업자를 만나 설득하기도 했다. 본인이 저지른 실수를 나열하며 인정하는 오빠도, 그걸 함께 겪는 우리 가족도 또다시 그때의 상황을 마주해야 하는 힘든 시간을 걸어왔다. 우리의 미래는 안개가 껴 뿌옇다 못해 깜깜했다.


어두컴컴한 날을 매일 걸어도 죽으라는 법은 없나 보다. 상사가 오빠의 성실했던 모습을 기억하고 한 번 더 기회를 주겠다고 부모님에게 직접 연락을 한 것이다. 처음에는 이게 정말 사실이 맞는지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엄마가 직접 문자를 보여주자 그제야 온몸에 소름이 돋기 시작하면서 ‘정말이구나. 진짜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빠에게 전화를 걸자 근 일 년 만에 들뜬 목소리로 통화를 했다. 앞으로 정말 잘해보겠다는 말과 함께. 나와 엄마, 아빠는 그날 오빠와 통화를 마치고 서로를 부둥켜안으며 신께 감사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복구하는 과정에서 넘어야 할 산은 많았지만, 사업을 할 수도 없었던 전에 비해서는 과분한 상황이었다. 오빠는 매일 새벽같이 일어나 자정이 될 때까지 일했다. 하루에 200통이 넘는 문의 전화가 왔다. 쉴 새 없이 전화를 받아 대응하고 설명하고 확인하는 일을 반복했다. 안타깝게도 그에 비해 계약이 체결되는 건은 적었다. 오빠는 예민한 티도 낼 수 없는 입장이기에 매일 친절한 말투로 대응하며 그 덕에 오빤 편두통을 달고 지내게 되었다.


종종 부모님이 오빠와 통화하는 소리를 들으면 “열심히는 하고 있는데 잘되지 않으니까 답답해. 머리가 아프고 해결될 수 있을까 싶다가도, 엄마랑 아빠 생각하면서 버텨요. 제가 죄송해요. 누구보다 열심히 해볼게요.”라는 투정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오빠의 문장을 듣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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