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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에 계획 그리기

by 이 은

“파리는 꼭 가야지?”

- “당연하지. 그럼 프라하는?”


응암동 작은 한 카페에서 우리는 계속해서 계획을 세워나갔다. 지도를 보면서 가고 싶은 나라를 하나씩 칠했다. 그러자 유럽의 반 정도는 색칠이 되어있었다. 가고 싶은 나라가 많았나 보다. 가득 칠해진 지도를 보며 우리는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생각보다 많네. 그럼 우리 며칠 더 고민하면서 찾아보고 결정하자. 아직 시간 많으니까.” 그렇게 우리는 잔뜩 올라간 광대를 숨기지 못한 채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주디언니와 비행기 티켓을 끊고 나서 며칠 내내 유럽만 검색했다. 누구는 이탈리아를 꼭 가보라고 하고, 누구는 스위스는 좋지만 너무 비싸다며 진지하게 고민해 보라고 했다. 머리가 터질 듯했다. 가기 싫은 나라는 없었고, 가고 싶은 나라는 많았기 때문이다. 여러 고민과 많은 검색 끝에 우리는 총 7개의 나라 그리고 15개의 도시를 정하게 되었다.

유럽 7개의 나라: 영국 - 네덜란드 - 프랑스 - 스위스 - 오스트리아 - 체코 - 독일

그리고 경유지 싱가포르까지 총 8개 국가를 거쳐 가기로 했다.


나라를 정한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든 생각은 ‘이제부터 진정한 시작이네. 루트도 짜야 하고, 숙소랑 일정도 짜야 해.’ 긴장을 풀 수 없다는 걸 느꼈다. 여행 계획을 업무처럼 짜기는 또 처음이었다. 하지만 멀리, 그것도 유럽으로 처음 떠나는 것이기에 자세히 알아보는 건 필수였다. 그래야 더 행복하고 알찬 여행을 할 수 있으니까.


그렇게 장장 6개월이라는 시간을 계획했다. 계획 과정은 이러했다.

1. 비행기 티켓 예매

2. 가고 싶은 나라, 도시 선택

3. 도시별 여행 기간 정하기

4. 여행 업체에 문의해 간단한 동선 짜기

5. 도시별 숙소 서치&예약하기

6. 도시별 가고 싶은 곳, 관광지, 식당 계획

7. 도시별 대중교통 파악

8. 투어&공연 예약

9. 환전 계획

10. 필요한 물품 서치&구매


이 외에도 캐리어 짐 목록 적기, 기념품 서치 등 10가지가 넘는 할 일이 있었다. 우리는 마치 2인 1조 팀플레이 과제처럼 계획을 세웠다. 각자 맡은 파트를 집에서 찾아오고, 함께 만나서는 의견을 나누며 공유했다. 한 번 만나면 기본 5시간은 넘게 계획 짜는 데 시간을 쏟았다. 어느 날은 점심에 만나 밥을 먹고 카페에 가서 계획을 세우고, 바쁜 날에는 각자 일정을 마치고 패스트푸드점에서 간단하게 요기를 때우기도 했다. 가끔은 “언니 너무 힘들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불평 아닌 불평이 나왔다. 그래도 눈과 손은 검색하는데 여념이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주디&은 유럽 여행 가이드북>을 완성했다.


하지만 끝이 아니었다. 환전을 해야 했고, 출발 이틀 전 생활용품점에 방문했다. 소매치기가 상당히 많은 유럽에서 휴대전화나 가방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물품이 필요했다. 그리고 빨래를 할 수 없는 상황을 대비해 빨래 비누 같은 자잘한 물건들을 구매했다. 대망의 짐 싸기. 20인치 캐리어와 백팩 하나가 가득 차도록 짐을 쌌다.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서 옷도, 생활용품도 가득 챙겼다. 그렇게 우리는 D-1에 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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