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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자린 Nov 16. 2021

겨울냄새와 죽음의 냄새

 새벽, 잠결에 들이쉰 공기의 차가움에 질식이라도 할 듯이 눈이 갑자기 떠진다. 

 그토록 좋아하는 겨울 이건만 6년 전부터 공기에서 겨울 냄새가 날 때마다 나는 저 깊은 바닥 없는 얼음물 속으로 한없이 가라앉는다. 


 그날은 1월 마지막 주 어떤 날이었다. 결혼한 지 4개월이 막 지났을 때였는데 새벽에 전화가 왔다. 

 엄마였다. 엄마는 울고 있었다. 아빠가 자는 도중에 심정지가 왔다고 했다. 

 나는 대충 옷을 주워 입고 남편과 친정 근처에 있는 병원으로 갔다. 아빠는 그곳 응급실에 있었다. 그 병원에서는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옆 도시에 있는 심장으로 유명한 병원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아빠는 골든타임을 놓쳤고 의식이 없는 상태였다. 그리고 6개월 동안 숨이 멎을 때까지 의식은 돌아오지 않았다. 


 아빠는 쓰러지기 바로 전날 엄마한테 우리 딸내미는 어디 갔냐고 물어봤다고 했다. 아직 환갑도 되지 않은 나이에 아빠는 치매를 앓고 있었다. 엄마는 시집간 지 반년이 다 되어가는 딸은 왜 그렇게 찾냐고 타박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아빠는 한동안 멍하니 있다가 밤에 그렇게 의식을 놓고 말았다. 

 자주 찾아가 보지 못했던 것, 아빠가 나를 보고 싶어 했을 때 그때 없었던 것, 이런 것들이 단단하게 뭉쳐 죄책감으로 마음속에 자리 잡았다.  항상 나는 내일이, 다음이, 언젠가가 내가 원할 때에 언제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면서도 치매로 기억을 잃어가고 반짝거리는 눈빛을 잃어가는 아빠를 외면하고 싶었다. 오늘 외면해도 내일은 볼 수 있을 줄 알았다.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기에 더 이상 아빠와 얘기를 할 수도 없고 함께 술 한잔도 할 수 없게 된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고통스러웠다. 

 그런 죄책감을 덜고 싶었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매일매일 중환자실에 갔다. 7시부터 30분 동안만 허락된 저녁 면회시간에 맞추기 위해 6시에 퇴근하자마자 지하철을 타고 아빠를 보러 갔다. 가면 아빠가 기적처럼 깨어 있었으면 좋겠다는 기대를 항상 품고 갔다가 여전히 산소호흡기를 달고 미동도 없이 누워있는 아빠를 보면 눈물이 나서 얼어버린 얼굴이 따끔거렸다. 

 친구가 해준 얘기가 있었다. 자기 친척동생이 사고로 의식불명 상태로 한 달가량을 중환자실에 있었는데 나중에 깨어나서 하는 말이 간호사들이 기저귀를 갈아줄 때가 가장 창피했다고 했다고 한다. 의식도 있고 들리기도 하는데 소리쳐도 아무도 들리지 않는 깜깜한 곳에 갇혀있는 느낌이었다고. 

 아빠도 지금 어딘가 어두컴컴한 곳에 갇혀있는 거야. 내가 끊임없이 얘기하면 그 소리를 길잡이 삼아 그 어둠에서 나올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렇게 옆에 앉아서 면회시간이 끝날 때까지 아빠 일어나, 아빠 일어나, 아빠 힘내라고 귀에 속삭이기도 하고 아빠가 좋아하던 노래들을 이어폰으로 들려주기도 했다. 


 아빠를 보러 오는 1시간은 기대감으로 춥지 않았다. 하지만 기적이란 없음을 30분간 깨닫고 돌아가는 1시간은 너무 추웠다. 눈물은 얼굴에서 그대로 얼어버렸고 들이쉬는 숨에 섞인 차가운 공기는 송곳처럼 날카로워 내 몸속 구석구석 난도질을 했다. 시간이 지나도 나아지는 것은 없었고 병원에 가면 아빠가 앉아서 맞아줄 거라는 기대도, 희망을 가지는 것도 더 이상 하지 않게 되었다. 


 그때 이후로 겨울은 항상 고통스럽다. 공기가 차가워질 때면 그때 병원을 나와서 들이쉬던 죽음의 공기가 생각이 난다. 겨울에 따뜻한 바람이 불지 않는 이상 앞으로 나의 겨울은 항상 고통스러울 것이다. 

 혹시 모른다. 내가 아빠처럼 치매에 걸려 아빠의 존재 자체를 잊거나 아빠의 아픈 모습을 잊었을 때, 그때 다시 겨울이 좋아질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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