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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yownangle Jan 02. 2024

EP.4 "요즘 세상에 종교가 필요해?"

성경학교 출신이 화엄사로 찾아간 이유

기억 속에 나는 꽤나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 매주 일요일이면 엄마와 함께 단 둘이서 하는 교회 데이트도 한 몫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때는 친구의 전도에 힘입어 교회에 다녔고, 그곳에서 다른 학교의 언니 오빠들과 무리 지어 놀았다. 필통 안에는 성경의 한 구절이 코팅된 책갈피가 있었다. 시험 치기 전에는 그 문장을 되뇌면서 기도했다. 엄마는 장난 삼아 늘 나에게 말했다. "네가 좋은 대학교 간 건 엄마 기도빨이다!" 어쩌면 맞을 수도 있다. 학창 시절,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나는 손을 모아 기도했다. 


하늘과 땅 사이에 오롯이 내가 최고인 것 같은 대학생 시절을 보냈다. 틈틈이 우울하고 불안한 때도 있었다. 그래도 대체로 즐겁게 살았고, 삶 속에 종교는 사라졌다. 그 자리에는 변하기 쉬운 것들이 들어찼다. 이를테면 친구들과의 음주 타임 혹은 소모적인 문화생활들. 그리고는 좋은 성적과 취업을 달성하기 위해 일요일은 덤으로 생긴 날처럼 집중하기에 적당했다. 그렇게 하루하루 신성한 것들과는 거리를 두게 되었다. 속세로, 더 속세로 달려갔다. 


그러던 내게 2023년은 새로운 세상을 찾게 했다. 큰 행복과, 그에 걸맞은 아픔을 준 해였다. 수년간 원했던 회사에 입사를 했지만 사람을 쉽게 믿는 나는 큰 내상을 입었다. 넋을 놓고 울던 나에게 번뜩 생각난 곳이 절이었다. 왠지 그곳에 가면 이 모든 세상의 걱정을 털어버릴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 대학교 기숙사에 살 때 바로 옆에 절이 있었다(이름도 개운한 개운사였다). 새벽 4시 정도면 그곳에서 종소리가 들렸다. 여름이면 절의 입구를 지날 때 은은한 향냄새가 났다. 눈을 감고 그곳을 생각했다. 나에게는 진짜 휴식이 필요했다. 


연말 계획은 간단했다. 절에 가는 것, 바다를 보는 것. 그 두 가지를 한 번에 할 수 있는 곳이 여수였다. 여수엑스포역에서 짙은 바다를 한 없이 보았다. 그리고 근처 구례의 '화엄사'를 찾았다. 천년 고찰이라는 닉네임도, 이미지로 본 풍경도 좋았다. 크리스마스를 반납하고 28일까지 쉴 새 없이 일했다. 서러움이 목구멍까지 치밀어올라도 휴~ 하며 다스렸다. 나는 화엄사에 갈 거니까. 그렇게 29일 새벽 7시, 여수로 가는 기차를 탔다. 


막상 화엄사에서 있었던 시간은 2시간이 채 되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한 동안을 살아낼 여백을 얻었다. 온통 둘러봐도 산 밖에 없는 곳, '해탈'이라는 멋진 이름을 가진 고양이, 길을 잃은 나에게 온 마음을 다해 설명해 주신 보살님, 사랑하는 사람들의 안녕을 빌었던 순간, 그리고 그곳에서 데려온 파란색 염주까지. 그러모아 볼수록 낭만적인 시간이었다.


오른쪽 눈이 아픈 해탈이. 다음에 다시 만날 때는 다 나아있기를.


앞으로도 한 달에 한 번은 절을 찾아갈 생각이다. 나에게 절은 종교의 공간이라기보다는, 비움의 공간 그 자체다. 부처님이 이런 내 마음을 아시면 이기적이라고 하실까. 모르겠다. 일단 저부터 좀 살고 볼게요 부처님. 어린 시절 선물받은 분홍색 성경을 챙겨 다니던 아이는, 파란색 염주를 선택하는 어른으로 자랐다. 특정 종교가 더 좋다의 문제가 아니다. 마음을 다해 마음을 놓을 여유가 내게는 필요했고, 비로소 한 발 내딛었다. 인생에서 오롯이 나의 길을 찾기 위해서. 나를 더욱 단단하게 사랑하기 위해서. 




Series. 20대 직장인의 뿌리 찾기 프로젝트

내 안을 채우고 있는 한 가닥을 찾아보는 과정.

그 한 가닥이 내 노잼을 뒤흔들 수 있다면.


프롤로그_ https://brunch.co.kr/@a0bd4d3b8469449/48

연재 요일 _ 화 /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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