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틀
그동안 말 못 한 나의 속마음을 엄마에게 하나씩 털어놓으며 흙탕물을 계속 들이켰다. 별을 안주 삼아 마시는 흙탕물은 아주 달았다. 누군가와 이야기할 때면 항상 호응이 좋던 엄마였는데 아무 말이 없어 이상했다. 엄마 쪽으로 시선을 돌리니 엄마는 입술이 파르르 떨린 채 눈물을 흘리고 계셨다.
“엄마, 울어요….?”
“엄마는… 생각도 못 했다, 정말…. 엄만… 우리 딸이 항상 밝고 자신감 넘치던 돌이라고 기억하는데…. 얼마나 혼자 힘들어했겠어!”
난 엄마가 그렇게 펑펑 울며 소리 지르는 것을 여태껏 본 적이 없었다. 가슴을 치며 우는 엄마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고 그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한참을 울던 엄마는 조금은 진정이 되셨는지 목소리를 가다듬으시고 나에게 다시 질문을 하기 시작하셨다.
“그러면 너…. 지금까지 어디에서 지낸 거야? 16년 동안 정처 없이 떠돌아다녔던 거야…?”
“계속 떠돌기만 했던 건 아니에요. 몇 달간 떠돌아다니다 바닷가에서 만난 좋은 인연이 있었어요. 덕분에 그 후로는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었고요.”
“그래? 다행이네. 바닷가 돌들은 텃세를 심하게 부리지 않았니? 엄마 때는 풀숲 지역이랑 바다지역 돌들의 갈등이 심해서 근처에 가지도 않았었거든….”
“정말요? 돌들은 다 잘해줬어요. 그런데 갈매기들은 진짜 무서웠어요. 저를 보자마자 둘러쌓고 서로 쪼아대는데 너무 아팠어요. 몸에 금이 가기 시작하고 부스럼이 나는데 이대로 죽는 건가 싶었죠. 그때, 아기 갈매기 꽁이를 만났어요. 꽁이는 잽싸게 저를 물고 새들이 없는 곳까지 데려다줬어요. 다른 새들이 오면 날개에 저를 숨겨줬고요.”
“정말 좋은 친구네. 아니었으면 너도 구멍이 생길 뻔했구나.”
엄마의 말대로 꽁이는 정말 착하고 좋은 친구였다. 하지만 그가 또래 갈매기들에 비해 몸집이 크다는 이유로 다른 갈매기들이 그를 ‘돼갈이’라고 매일같이 놀렸다. 당사자가 아닌 내가 봐도 화가 나는데 꽁이는 아무렇지 않아했고 그런 모습에 속상했던 난 꽁이에게 물어봤다.
"꽁이야, 이제껏 저런 말을 계속 들으며 살았던 거야? 너는 안 속상해? 왜 반박을 안 하고 있어...내가 만약 너라면 자존감도 많이 낮아지고 힘들 것 같아. 내가 다 속상하다 정말...'
"물론 안 괜찮지. 나한테 저런 소리를 하는데 어떻게 상처가 안되겠니. 처음에는 나도 화내고 맞서 싸웠지만 오히려 그걸 재밌어하며 더 놀리더라고. 그러다 내 스스로가 지치게 되어 놀리는 그 말들을 전부 사실로 받아들이고 믿게 되었어. 그러던 어느 날, 모래사장에 아기 거북이를 발견했거든? 그게 나의 생각을 바꿔주는 계기가 되었어."
"거북이가? 어떻게?"
"그날도 난 다른 갈매기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모래사장에서 펑펑 울고 있었어. 그런데 옆에서 버려진 양동이 하나가 꿈틀거리며 움직였어. 그 안에는 아기 거북이 한 마리가 있었고 난 꺼내 주려 했지만 거북이는 양동이 밖을 나가면 자기가 죽을 수도 있다며 계속해서 더 깊숙이 안으로 들어가더라고. 바다로 나가면 오히려 자유롭게 잘 살 수 있다고 내가 말해줘도 그 거북이는 말을 듣지 않고 스스로 가두기만 하더라. 주변 친구들이 이 양동이가 없으면 죽을 수 있으니 절대 나오지 말라고 하더래. 그것을 보고 난 마음이 아파졌어. 그 말이 틀이 되어 그 아기 거북이를 나오지 못하게 막고 있던 거였으니까. 그리고 '어쩌면 나도 다른 새들이 만든 틀에 나 스스로를 가둔 게 아닐까?’라는 생각도 했어. 새들이 말한 기준들은 그들의 기준이지 내 기준이 아니니까. 그리고 그 틀을 벗어나지 못하면 그 말에 갇혀 평생 나오지 못할 거니까. 그래서 난 나 자신을 그런 틀에 가두지 말고 자유롭게 풀어주자고 생각했어. 그러고 나니 다른 갈매기들이 아무리 심하게 놀려도 넘겨지더라."
꽁이의 이야기를 들은 후 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난 남의 말에도 날 가두었지만 내 스스로 틀을 만들어 가두며 살기도 했기에 그런 나만의 틀에서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때, 계속해서 꽁이에게 조개껍데기를 던지던 갈매기를 한 사람이 쫓아내주었고 그 사람이 바로 리원이 언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