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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들레 Apr 17. 2024

'균열'내기

<당신의 일, 노동, 작업을 주제로 글쓰고 나누기> 두 번째

“엄마, 나 근데 이상한게 하나 떠올랐어! 왜 학교에서 알림장을 주면 항상 엄마만 사인을 하는 거야? 아빠도 할 수 있는건데. 선생님도 보통은 부모님께 사인받아 오라고 하는데 가끔은 엄마한테 사인받아오라고 말씀하실 때도 있어.”      


첫째 아이가 어느날 갑자기 성차별(?)이 하나 떠올랐다면서 나에게 던진 질문이다. 2월 말에 기혼여성 페미니즘 모임 <부너미>에서 키즈부너미가 열려 성역할 사전을 만들어봐서 그런걸까. 아이는 부쩍 그 이후로 성역할, 성차별에 관한 이야기를 꺼낼 때가 종종 있다. 둘째 아이가 “나는 남자라서 머리를 기르고 싶은데 기르면 안 돼..”라고 하면 “무슨 소리야. 남자도 머리 길러도 돼. 머리 기르는데 남자라서 여자라서 그런 거 없어.”라고 알려준다.      


아이의 알림장의 사인에 대한 말을 시작으로 내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게 된다. 가만보자. 내가 이 집안에서 수행하고 있는 역할은 뭐가 있었더라. 한번 나열을 해봐야겠다.    

  

엄청나게 다양한 집안일(평일 밥하는 건 당연한 거고. 생필품이 떨어지면 그때 그때 체크해서 채워넣기. 휴지, 치약, 칫솔, 냉장고의 각종 식품들, 키친타올, 각종 양념, 샴푸, 린스, 비누 등등등), 아이 돌봄 (정서적인 부분부터 교육까지 매일 시간과 관심이 필요), 등하원 및 등하교, 일정 관리, 교우 관계, 틈틈이 부업으로 하는 업무처리, 두 아이 선생님들과의 소통, 학원 라이딩, 옷과 신발 상태 챙기기, 도서관 다니니, 기관에서 하는 체험 챙기기 등등     


비단 내가 지금은 어떤 직업이라고 할만한 타이틀을 가지고 있지 않아서 이 모든 일을 해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맞벌이이던 시절에도 이 모든 일은 나의 역할이었다. 심지어 아이가 아플 때면 휴가를 쓰는 문제를 배우자와 함께 논의하는 것이 당연한데 기관에서 연락을 언제나 엄마 쪽으로 하고, 그러면 나는 배우자에게 눈치를 봐가며 휴가를 써달라고 요청을 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심지어 아이가 5일을 입원해야 한다고 치면 언제나 내가 3일 휴가, 배우자는 2일 휴가를 내는 식이었다. 첫째 아이가 3살일 때, 계속 둘째 임신이 계류유산으로 끝나버려 왕복 2시간 거리의 출퇴근이 무리가 되는 것일까, 첫째 아이가 계속 아파 내가 신경이 예민해져서 그런걸까, 온갖 원인을 나로부터 찾으려다 결국은 퇴사를 하고 말았다. 맞벌이일 때 하던 나의 역할은 그대로, 아니 더 가중되어 전업주부인 내 삶에 이어졌다.      


'고작' 전화 한 통, '겨우' 문자 하나같이 말하기도 치사하고 엄살로도 인정받기 어려운 일, 애매하고 자잘하고 느닷없는 일이라서 나누어질 수 없는 짐이 있었습니다. 그게 자동으로 엄마에게 부과된 거죠. 가부장제 시스템에서 주 양육자의 초기값은 엄마로 설정돼 있으니까요. 20년 넘게 시달리고서야 차곡차곡 막아내고 해결했던 그것들이 고작과 겨우가 아니었음을 ‘육아 말년’인 지금에야 깨달았습니다.      


은유작가의 신간 <해방의 밤>을 읽다가 이 문장을 발견했다. 그동안 나의 불편한 감정의 원인이 무엇인지 조금을 알게 되었다. 내가 해오던 역할이 어떻게 보면 드러내기 애매한 ‘고작’, ‘겨우’의 경계에 있던 수많은 것들이었다. 인정받기에는 너무나도 하찮고 자잘한 일들이지만, 이것들을 손에 놓기에는 집안이 돌아가는데 큰 구멍이 생기는 것들.  

   

여자의 일, 남자의 일이 다를게 없듯이 엄마의 일, 아빠의 일도 굳이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한 아이의 입장에서는 알림장의 사인을 엄마만 하는 것이 성차별처럼 느껴졌을까. 잠자리 독서도, 아이의 학교생활을 살피는 것도, 아이들의 일상을 나누는 것도 등등 오랜 시간과 상황을 거쳐오면서 굳이 네가 하네 내가 한다는 식으로 그 역할을 왈가왈부 따지는 것의 감정 소모가 크기에 좀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하고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내가 하는것이 낫겠다며 살아왔다. 그런데 아이의 말 한마디에 불편함의 시간을 가지는 건 피하는 것이 아니라 필수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도 집안의 작은 ‘균열’ 내기는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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