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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미경 Apr 30. 2022

되돌릴 수 없는 시간들

눈부신 봄날

  당진에 이사 온 지 네 달이 지났다. 그동안 겨울이 지났고, 봄이 왔다. 하지만 내 마음은 아직 겨울처럼 스산하다. 코로나로 인해 걷는 것 외에는 밖에 나가지 않고 지내는 탓도 있지만, 아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는 이곳의 삶이 너무 낯설기 때문이다.

 포항에서 40년, 광양에서 20년을 살다가 다시 당진으로 이사 온 이유는 모두 가족의 행복을 위한 선택이었다. 포항에서 광양으로 이사 갔을 때는 젊었고 아이들이 곁에 있었고, 아는 사람도 몇 있어서 이방의 거리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취미생활과 봉사활동을 하면서 사람들을 만나고, 일도 하게 되면서 금방 적응이 되었다. 하지만 이곳 당진은 다르다. 성인이 된 아이들은 곁에 없고, 남편이 출근하고 나면 멍하니 앉아 있거나 잠을 자는 일이 일과가 되어버렸다. 30년이 넘도록 하던 일도 그만두고, 코로나로 인해 취미생활도 하지 못한다. 차 한 잔 같이 마실 이웃도 없다.

 늘 동동거리며 뛰어다니던 일을 그만두면 편하고 행복할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나 자신이 무능한 것 같고, 바보같이 여겨질 뿐이다. 이런 내가 너무 낯설다.

 남편과 아이들은 그동안 바빠서 하지 못했던 것들을 하라고 했다. 책도 실컷 읽고 글도 쓰고,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더 배우라고 했다. 하지만 시간이 많다고 하고 싶은 것을 다 할 수는 없다. 마음이 허락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이다. 

 글도 잘 써지지 않는다. 일을 그만두면 그동안 쓰다만 소설 몇 편을 완성시켜야지 했는데,  손도 대지 못하고 있다. 컴퓨터 앞에 앉는 것도 두렵고 무섭다. 전에는 글 쓰는 것이 가장 즐겁고 행복했는데 왜 두렵고 무서울까. 심장의 피가 마르는 것처럼 고통스러운 창작의 시간을  마주하고 싶지 않기 때문일까. 

 창밖을 바라보면 쓸쓸함만 몰려온다. 채 개발이 되지 않아 듬성듬성 서 있는 건물들과, 파 헤쳐놓은 땅들만 눈 안에 가득 들어온다. 길에는 사람들도 거의 다니지 않고, 오가는 차들의 숫자도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사람들과 사귀는 것이 무엇보다 힘든 나는, 앞집으로 찾아가서 차 한잔하자는 말도 하지 못한다. 더구나 지금은 사람 만나는 것도 지극히 조심해야 하는 시기이기에 누구를 찾아간다는 것 자체가 금기사항처럼 된 시대이다. 그러기에 더더욱 몸이 움츠려들 수밖에 없다. 쓸쓸함이 치솟으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난다. 어디라도 전화하고 싶은데 할 수가 없다. 혹시 바쁜데 내가 전화해서 마지못해 받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으로 선듯 전화번호를 누를 수가 없다. 언제라도 전화하면 반갑게 받아줄 엄마 아버지도 안 계신다. 

 오래된 앨범을 꺼내 들여다본다. 한참을 보다 보니 내가 언제 이렇게 나이를 먹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앨범 속에서 웃고 있는 30대의 나는 눈부셨다. 눈빛은 반짝였고, 얼굴에는 희망이 가득 차 있었다. 아이들은 어렸고, 엄마 아버지는 젊었다. 아이들은 내 가슴 안에 있었고, 엄마 아버지는 내가 힘들어할 때마다 달려오셔서 다독여주셨다. 하지만 그것은 이제 순간 속으로 사라지고 두 번 다시 되돌아오지 않는다. 아이들은 타지에서 자신들의 삶을 살고 있고, 온전한 내 편이었던 엄마 아버지는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영원히 떠나시고 말았다. 눈물이 흐르면서 슬픔의 장막이 휘어 감는다.

 쏟아지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어서 울다 보니 고양이가 놀랐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내 얼굴을 바라보고 있다. 나는 그런 고양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생각한다. 무엇이 이토록 나를 우울하게 만들고 있을까. 왜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멍하니 하루를 보내고 있는가. 

 나도 모르게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으면서 생각한다. 이대로 지내다 보면 나는 정말 바보가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너무 우울해서 세상을 잊어버리고 싶어 질지도 모른다.  

 여행이라도 다녀올까? 그럼 잠은 어디서 잘 것이며 먹는 것은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코로나 시대에 어디로? 그러다가 코로나에 걸리게 되면? 승용차로 갈까? 대중교통을 이용할까? 아는 사람들을 찾아갈까? 나를 반겨줄 사람이 있기나 할까? 절에 가서 한 달쯤 있다가 올까? 가서 소설이나 한 편 탈고하고 올까? 

 실행에 옮기지도 못할 생각들을 떠올리는 사이 새벽이 지나고, 아침이 오는 소리가 들린다. 남편은 내가 깜빡 잠든 새벽에 출근하고 고양이는 머리맡에 누워 잠자고 있다. 나는 고양이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 주고, 애써 우울을 떨치며 일어난다. 온몸이 천근처럼 무겁다. 고개를 들고 창문을 바라본다. 창가에 봄 햇살이 눈부시게 내리고 있다. 

 밤을 꼬박 새운 얼굴 위로 햇살이 달려온다. 햇살이 너무 강렬해서 눈을 가린다. 봄 햇살은 이렇게 눈부신 모습으로 내 손을 잡고 있는데,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나는 몸 구석구석 달려드는 쓸쓸함과 우울감을 몰아내며 일어난다. 내가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고양이가 눈을 뜬다. 나는 다시 한번 고양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부엌으로 향한다. 고양이가 나를 따라 일어난다. 

 전기 오븐에 고구마를 굽고, 우유를 한 잔 데운다. 갓 구워 향이 가득한 고구마와 우유를 쟁반에 담아 창가에 놓인 테이블 위로 간다. 얼마 전까지 삭막했던 창밖은 푸른 잎들을 피워 올리는 나무들을 데려다 놓았다. 나는 고구마를 한입 베어 물고 우유를 마신다. 또다시 눈물이 난다. 이 낯선 곳에서 앞으로 내가 살아갈 날들이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10년 후면 나는 노인이 된다. 그 생각만으로도 쓸쓸해진다. 누구든지 피할 수 없는 노년의 삶을 초연하게 받아들여야 하는데, 쉽지가 않다.

 10년 전만 해도 나는 지금의 나를 상상하지 못했다. 10년 후, 나는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을 했을 때 열심히 일하면서 멋지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내 모습이 그려졌다. 그런데 나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가. 행복하지는 못해도 만족은 해야 하는데 금보다 귀한 시간만 낭비만 하고 있다. 이대로 지낸다면 10년 후의 내 삶을 보장할 수 없다. 나는 하루하루 나이를 먹어갈 것이고, 내일은 오늘보다 더 늙을 것이고, 그 시간들이 이어지면 나의 노년은 후회와 고통으로 점철될 것이다. 시간은 결코 기다려주지 않는다. 내일, 또 내일 하고 미루다 보면  수많은 오늘들이 버려지고 고통과 슬픔 속에서 사라지게 될 것이다. 

 정신이 번쩍 든다. 이날을 헛되이 보내서는 안 된다.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한다. 그 하루하루가 쌓여 나의 노년을 만들 것이다. 그때 후회를 하지 않으려면 오늘을 열심히 살아야 한다. 

 나는 접시와 컵을 씻고 거울을 본다. 거울 속의 나는 아직 노년은 아니다. 그래, 오늘은 남은 내 인생에서 가장 젊은 날이다. 이 시간을 헛되게 보낸다면 노년이 될 그날에는 정말 후회를 할 것이다. 

 나는 컴퓨터 앞에 앉는다. 이제부터 글을 써야겠다. 바빠서 쓰고 싶어도 쓰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불러와야겠다.

 눈부신 봄날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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