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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영훈 Sep 08. 2022

맛집

사물의 우연 : 두 번째 서랍 - 데이트

맛집의 기원 

맛집이란 단어가 언제 생겼는지는 정확히 모른다. 그러나 그 명칭의 대중화의 기원을 찾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만나게 되는 <국풍 81>이라는 극적인 순간을 무시할 수 없다. 여의도 광장에 전국의 유명 맛집을 모아놓고 먹자판을 벌였던 그 축제 말이다. 인터넷도 휴대폰도 없던 시대에 펼쳐진 이 극적인 한판으로 지역의 유명 음식과 무명의 식당들이 전국구로 발돋움했다.    

 

여기에 또 한 번의 계기가 더해진다. 바로 90년대 후반에서 2천 년대 초반, 인터넷 신문사들이 우후죽순 난립하기 시작한 것. 이들은 콘텐츠 확보와 수익성 확보를 위해 경쟁적으로 맛집을 발굴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 유명 일간지들은 앞 다퉈 인터넷 사이트를 만들었고 그 사이트들은 다시 지역 사이트로 분화했다. 이들 지역 사이트들은 기존 신문사나 잡지사의 사무실의 공간을 빌려 식당이나 기업에 전화를 돌려 맛집을 그야말로 “유치”했다. 그 결과, 당시에도 그랬지만, 요즘도 어떤 식당에 가보면 "00 신문 선정 맛집"이라는 현판을 쉽게 볼 수 있는 것이다. 필자도, 과거 좀 험하게 살 때 이런 업계에 잠시 몸 담은 적이 있었기에 누구보다 이 시기의 무법적인 유치 활동에 대해 잘 안다. 


맛집의 백화점

이제 맛집은 인터넷의 확산, 스마트 폰, SNS의 등장으로 그 활용의 범위가 넓어져서 지극히 주관적인 선택이 되어 버렸고 그 종류도 많아졌다. 그러나 80년대만 해도 데이트 때 먹는 거라곤 빵과 커피가 다였다. 다방과 빵집. 이 장소들이 데이트의 핵심 장소였다. 여기에 몇 개 안 되는 개봉관이 전부였고. 서양식 레스토랑도 드물었다. 이름은 들어봤는지 모르지만 예전엔 경양식집이라는 것이 있었다. 돈가스나 함박스테이크를 파는 약간 캐주얼한 레스토랑이었다. 이때 당시 이런 곳에 처음 가서 생긴 에피소드는 남자들이 심심하면 꺼내는 단골 유머 소재였다.  수프를 줬는데 그게 돈가스인 줄 알고 그것만 먹고 나오려고 했다는.     


돌이켜 보면 푸드 코트가 본격화되기 전인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이랬었다. 백화점의 푸드 코트가 언제 등장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고 어떤 형태의 매장을 푸드 코트라고 부르기 시작했는지 모르지만 대략 90년대 중반 신촌의 그레이스백화점이나 강남의 삼풍백화점 등에 등장한 식당들을 그 원조로 보는 경향이 있다. 응답하라 1994에서 삼풍백화점에 냉면을 먹기로 약속하는 장면이 있는데 서울의 백화점에 이렇게 푸드 코트나 식당들이 일반화된 것은 이쯤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전까지의 데이트 먹거리는 철저히 각자의 경험이나 선배의 입소문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자연스레 빵집과 분식집, 다방의 답습이었다. 이런 답습과 선택의 갈등을 완전히 해결해 준 것이 백화점의 푸드 코드였다. 이것은 입소문과 구전 정보에 의한 선택에서 벗어나 맛과 품질이 보장된 음식, 그리고 다양한 메뉴를 한꺼번에 선택할 수 있다는 장점으로 인해 많은 연인들의 고민을 해결해줬다.      


고독한 미식가, 격식 있는 레스토랑

사실 식사는, 이노가시라(고독한 미식가의 주인공)의 말을 빌리지 않아도, 상당히 사적인 행위다. 김종국의 말처럼 인간이 증기기관차라면 그것을 움직이게 하는 연료 보충의 시간인 것이고 이노가시라의 말을 빌리자면 사회적 존재임을 잊고 온전히 미각에 집중하는 탐미적인 시간인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더하자면 친밀한 사람끼리의 대화의 시간이고 사회적으로는 비즈니스와 거래의 시간이다.      


이런 식사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한 번에 보여주는 영화로는 역시 <대부> 시리즈, 그것도 1편이 대표적이다. 이 영화에선 결혼 피로연, 가족 간의 식사, 동료들 간의 식사, 협상과 비즈니스를 위한 식사가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극명하게 보여준다. 특히 그 유명한 알 파치노의 총격 장면에서의 공적인 식사 장면은 이것이 얼마나 긴장된 상황인지 보여준다. 또 <귀여운 여인>에서 나온 M&A 상대와의 식사 또한 비즈니스 식사가 얼마나 긴장된 탐색전이며 치열한 격전의 장인지 알게 해 주고. 


이제 막 데이트를 하는 8,90년대의 청춘들 대부분은 경양식 식당에서의 식사 경험이 거의 없었다. 그 장소의 문턱은 그 낯섦으로 높아졌고 그 높아진 문턱이 일종의 상징적 자본 역할을 했다. 그건 미국 등 다른 서양 문화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영화 <오만과 편견>을 보면 알겠지만 불과 이 백 년 전까지만 해도 연인 간의 식사에도 나름 예절과 격식이 필요했다. 심지어 이차대전 즈음까지도 레스토랑마다-가격과 역사, 명성에 따라 그 형식과 엄격함은 달랐지만-그 나름의 격식이 필요했다. 이제 갓 임금 노동자에 진입한 청춘 커플의 데이트 코스에 격식을 차려야 하는 이런 레스토랑에서의 식사가 들어올 수는 없었다. 상징적 자본이 으레 그렇듯, 상징이 일을 하는 법을 익혀야 했고, 그 익힘을 위해선 교육이 필요했으며, 그 교육은 그런 수준을 가진 가정에서 이뤄졌기 때문이다.


캐주얼 레스토랑/패스트푸드의 등장

이런 상징적 자본의 문턱을 해체한 것이 패스트푸드다. 패스트푸드 브랜드가 등장한 건 50년대 초반이다. 버거킹이 1954년, 맥도널드는 1955년이다. 피자 헛은 1958년이고 도미노 피자는 1960년이다. 미국의 유명한 멕시코 레스토랑인 타코벨도 1960년, TGIF는 1965년에 탄생했다. 놀라운 건 KFC만 1938년에 등장했는데 이 음식, 흑인 노예의 삶과 슬프게 연결되어 있는 프라이드치킨의 역사를 생각해보면 그렇게 빠른 것도 아니다. 또 드라이브인 레스토랑으로 유명한 소닉 드라이브인이 1953년에 만들어졌고 현재는 3천5백 개가 넘는 매장을 미국에 갖고 있다. 이런 데이트 외식 문화는 미국의 영화와 함께 전 세계로 퍼졌고 이런 매장들의 세계 진출과 함께 캐주얼한 데이트 공식 루트로 정착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런 캐주얼한 선택 앞에서 망설이는 것은 우리 앞에 너무나 많은 선택지와 변수가 놓여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만난 지 얼마 안 된 사람과 밥을 먹는 행위는 상식적으로도 불편하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이때는 웬만한 흠조차 예쁘다. 예를 들어 고개를 처박고 열심히 밥을 먹는 남자의 모습은 연애 초기에는 다부져 보이고 복스럽게 보인다. 그러나 그 사람이 싫어지면 추접스럽게 보인다. 


맛집과 관계의 질

결국 메뉴나 식당의 선택은 관계의 성격과 질에 따라 결정된다. 오래된 연인들에게 식당과 메뉴에 대한 고민은 미식의 맥락과 크게 관련이 없다. 밥을 먹는 행위보다 연애의 텐션을 유지하는 게 그야말로 관건이기에 메뉴와 공간의 선택 또한 그 맥락에서 이뤄진다. 그 반대의 대척점에는 아무거나 먹거나 소위 말해 연인만의 단골집이 생길 수도 있다. 이것은 반복에 대한 해석 차이다. 이 해석 차이로 인해 오랜 된 사랑과 연인을 어떻게 볼 것인가의 문제가 따라오며, 그 결과 매번 새로운 식당을 찾을 것인지, 아니면 단골집으로 가서 자신들만의 이야기를 견고히 쌓아나갈 것인지가 정해진다.     


연인이 오래 사귀면 당연히 반복되는 것이 많다. 양쪽 집을 오갈 것이고 데이트 장소 또한 양쪽 집 근처와 제3의 거점이 될 것이다. 섹스도 당연히 늘 같은 사람-바람을 안 핀다는 전제하에-과 할 것이고 그러다 보면 두 사람의 창의력 한계 내에서 체위와 그 밖의 퍼포먼스가 행해질 것이다. 이런 반복이 익숙함을 만들고 익숙함은 두 사람의 역사가 된다. 그 역사의 무게가 만만치 않게 되면 결혼을 생각하게 되는 것이고. 


그러나 이 반복을 지겨움으로 해석하게 되면 지층이 쌓이듯이 쌓이게 되는 역사의 생성은 불가능해진다. 편안함 대신 노력이라는 것을 하게 되고 연애는 이때부터 미션과 성과가 된다. 새로운 것을 찾아야 하는 미션, 새로운 식당과 메뉴를 찾아야 하는 미션. 


이 미션은 모두의 책임이지만, 남자의 몫이 조금 클 것이다. 남자가 차가 있다면 연인은 그 차를 이용해 더 멀리, 더 낯선 곳으로 이동하면서 새로움을 찾아 탐험을 한다. 처음 먹어보는 메뉴를 먹고 방송에 나왔던, 블로그나 페이스북에서 봤던 그 맛집을 찾는다. 그러는 동안 연인의 존재가치는 주말 혼밥을 막는 방지책으로 전락하거나 맛집에 함께 줄 서는 동반자로 격하된다.     


"나 이러려고 만나?"

맛집과 핫플레이스 순례의 반복 속에서 “나”라는 존재를 사랑해주는 타자에 대한 경이감과 경외감은 상실된다. 우리가 밥 한 끼의 소중함을 쉽게 잊고 사는 것처럼. 한 명의 타자가 내 앞에 있기까지의 시간과 수고를 생각하면 타자와 함께 누리는 이 시간과 공간의 가치는 결코 가볍지 않다. <아비정전>에 나온 대사를 우린 잊지 말자.


 "1960년 4월 16일 3시 1분 전 당신과 여기 같이 있어요. 

난 우리 두 사람이 함께 했던 1분을 잊지 않을 거예요."     


한 사람과 마주 앉아 밥을 먹는다. 그 소중한 행위를 나하고 한다. 먹는 데 십 분도 안 걸리는 컵라면을 먹든, 두 시간이 걸리는 프랑스 정찬이 됐든 그 사람은 나와 인생의 십분, 또는 두 시간을 함께 해준 것이다. 우린 그것을 당연시한다. 배고프니 밥을 먹고, 만나서 놀다 보니 때가 돼서 같이 밥을 먹는 정도로 생각하면 모든 존재와 그 만남은 언젠가 진부해진다. 


함께 시계를 보며 인생의 수많은 순간 중 단 1분을 함께 했음을 기억하려는 노력. 우린 어쩌면 식당에 앉아서 밥이 나올 때를 기다리며 이 시간을 함께하고 있음을 기억하려는 이 노력을 해야 하지 않을까. 이 신비하고 신기한, 나 같은 사람과 마주 앉아 밥을 먹어주는 한 존재에게 감사를 하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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