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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영훈 Sep 09. 2022

승부 속옷

사물의 우연 : 두 번째 서랍-데이트

쇼부를 보는 날     

승부 속옷이라는 말은 일본에서 유래됐다. 일본 아가씨들은 데이트를 몇 번 하다가, 이 남자와 끝까지 가보고 싶다는 결심이 서면 그때부터 승부 속옷을 입는다고 한다. 비싼 건 십만 원 가까이한다고. 일본의 한 속옷 브랜드에서 승부 속옷 색상 선호도를 조사한 적이 있다. 핑크색이 압도적으로 많았고 도쿄는 빨강, 보수적인 교토는 흰색, 시코쿠 지방은 호피 무늬를 선호했다.      


승부는 알다시피 쇼부다. 우리도 종종 은어로 사용한다. 승부를 본다는 건 결판을 낸다는 건데 이 결연한 의지가 겉으로 드러나야 상대도 결연해지고 당연히 승부도 가열 차 질 것이다. 그런데 승부 속옷이라니. 뭔가 이율배반적인 단어 아닌가?     


2012년, 오스트리아의 인스브루크 대학 연구팀이 렘베르크 성에서 팬티와 브래지어 세트를 발견한 이후 15세기 때부터 브래지어를 착용해 왔다는 것이 관련 학계의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전까지는 코르셋이 사라진 백 년 전부터 브래지어를 착용했을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정설이었다. 그럼 이때부터 승부 속옷이 존재했을까? 당연히 아니다. 아무리 인터넷을 뒤져도 언제부터 이런 말을 사용했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대략 일본어를 소개해주는 블로거들이 2007년을 기점으로 이 단어를 새롭게 소개하는 걸 보면 아마 그즈음이지 싶다.      


속옷의 아이러니

원래 속옷은 안 보여야 정상인 옷이지만 결정적인 순간엔 보이면서 그 기능 이상의 기능을 수행하는 옷이다. 이 "결정적인 순간"을 제외한 대부분의 시간과 장소에선 속옷을 보여줄 일이 없다. 잘해야 수영장이나 헬스장 라커룸에서나 보여주는데 그것 또한 동성 간, 아무 사이 아닌 사람끼리 보여주는 것이어서 남자들은 거의 신경을 안 쓴다. 반면 여자들은 이 때도 제법 신경이 쓰이는 모양이다. 필자의 아내도 수영장 다닐 때는 세트로 된 속옷만 입었다.


어찌 됐든 승부라는 건 결국 섹스를 하기로 결심했다는 것인데, 입술을 앙다물고 눈에 힘주고 힘을 줘 아랫배를 누르고 앉아 있어도 그 결연한 의지가 상대방에게 제대로 전달될 리 없다. 그렇다고 만난 지 얼마 안 된 남자에게 은근히 속옷을 노출할 효과적인 방법이, 나로서는 도저히 생각이 안 난다. 결국 승부를 보기 위해선 영화 제목처럼 그날의 분위기를 조성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내면의 승부수가 겉으로 드러나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눈치 없는 남자여도 "오늘이 그날이구나. 이런."하고 호흡을 가다듬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야구로 말하면 2대 0으로 지고 있는 팀이 공격하는 9회 말 투아웃, 주자 만루에 4번 타자가 들어서는 순간의 분위기다. 이때 구장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승부처라는 걸 안다. 야구의 문외한조차도 말이다. 이런 장면이 조성되면, 연애 초짜라도 오늘 승부처인 걸 안다. 그래도 눈치 못 채면... 헤어져야지.


승부 속옷과 맥거핀     

승부 속옷은 어찌 보면 성적 자기 결정권, 또는 성적인 상황에서의 주도권을 남자에게 미뤄온, 또는 남자에게 뺏기고 살아온 일본 여자들의 내면의 외침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이를 눈치채고 만화와 드라마, 그리고 아주 똑똑한 속옷업체들이 마케팅을 했을 테고. 그래서 여자들은 승부를 보고 싶을 때마다, 또는 언제가 올 그 남자를, 그리고 그 남자와의 그날을 그리워하며 속옷을 사서 쟁여 놓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건 에이브람스 감독의 토끼 발 같은 거다.      


에이브람스 감독은 네티즌과 영화팬들 사이에선 낚시질 잘하기로 유명한 감독이다. 일명 떡밥의 제왕. 이 사람이 <로스트> 때부터 관객에게 뿌려온 떡밥은 워낙 유명하다. 특히 <클로버필드>에서 뜬금없이 괴물이 나오는데 이 괴물에 대한 설명이 전혀 없다. 가장 최고는 역시 <미션 임파서블 3>. 그 유명한 토끼발이 나온다. 다들 아는데 정작 본 사람은 없다. 이런 떡밥이 통하려면 영화 속 모든 인물이 그것에 대해 다 알거나 공포를 느끼거나 해야 한다. 즉 관객은 몰라도 되지만 극 중에선 아주 중요한 것이다. 아니 정말 중요한가? 어쩌면 맥거핀일 수도 있겠다. 관객들은 정말 중요한 것이라 생각하며 영화 초반부터 머릿속에 넣고 영화를 보지만 정작 영화 중반쯤엔 사라져 버리는 단서나 물건, 사람 같은 거 말이다.     


맥거핀에 속지 말라

사실 커플이 첫 번째 섹스를 위해 모텔이나 자취방에 입성하면, 그전의 모든 상황과 소품은 맥거핀처럼 잊혀진다. 그런 장치들이 섹스라는 드라마의 절정에 가기 위한 정교한 플롯과 복선을  위햐 것이었다면 , 그래서 잊히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하지 않나? 게다가 대체로 아무런 기대도 안 했는데 섹스로 훌쩍 들어 가버리는 경우가 더 많지 않을까? 그게 또 자연스럽고 말이다. 승부처라는 건 결국 모든 상황과 조건이 맞아떨어져야 발생하기도 하지만 예상치 못한 우연한 승부욕으로도 발휘되니까 말이다.


승부 속옷에 연연하는 이와 맥거핀에 집중하는 관객은 같은 실수를 한다. 영화 팬들이 아무런 의미도 없이 버려질 맥건핀에 신경 쓰느라 정작 중요한 단서는 놓치는 실수를 범하듯이, 승부의 순간이 도래할 때 승부 속옷 색깔이 뭐였는지 생각하는 사이 앞에 앉은 남자로부터 던져진 결정적인 단서를 놓치는 실수를 말이다.


더 큰 실수는 이러다가 승부처를 놓치는 것이다. 축구 감독에게는 세 명의 교체 카드밖에 없고, 야구 감독에게도 대타 찬스는 많아야 한 게임에 두세 번 밖에 없다. 그 찬스를 놓치면 찬스는 다시 안 올 수도 있고, 조금만 늦으면 게임을 날려버릴 수 있다. 결국 승부처에 승부를 낼 수 있는 건 실행이지 몰래 숨겨 놓은 카드가 아니다.


차라리 예고편을 보내라

섹스는 연애와 사랑에 있어서 가장 육체적인 실행이다. 선물도, 눈빛도, 심지어 말조차 해석이 필요하지만 몸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내 주장이 아니라 FBI의 말이다. 그들은 언어나 문자 커뮤니케이션보다 심문 대상의 눈빛, 몸짓, 손짓, 피부, 자세 바꿈 등을 눈여겨본다. 그러나 이런 보디랭귀지의 해석은 노련한 사람에게나 쉬운 것이지 우리 같은 일반인에겐 지난한 작업이다.


그래서, 오늘이 그날임을 남자에게 직접 말하지 않고 무언의 행동으로 표현하고 그걸 알아주길 기대하는 건 서로를 피곤하게 한다. 서로에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의도를 해석하기 위해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라면 먹고 갈래는 정직하다. 1980년대 뽕이라는 영화에서 뽕 따러 가자라는 말만큼 아주 명확한 의사표현이다. 은유인데 은유가 아닌 것이다.      


정말 중요한 승부라면 서로가 준비할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냥 술김에, 손잡은 김에, 키스한 김에. 마치 켠 김에 왕까지 가보자는 생각으로 섹스까지 진도 나가는 건 연인과의 첫 섹스의 긴장을 너무 떨어뜨린다. 그 9회 말 투아웃에서 배리 본즈 같은 4번 타자가 들어섰다면 수비 쪽에서는 마리아노 리베라 같은 마무리 투수가 나와야 경기장의 모든 관객들이, 그리고 시청자들이 그 어떤 은유 없이도 긴장된 순간임을 알 것이다. 야한 속옷을 입었다면 보여주고 싶다고 얘기하는 것이 시간 절약이다. 아니 아예 만나기 전에 미리 말하는 게 낫지 않을까?      


"오늘은 십만 원짜리 승부 속옷을 입고 나갈 거다. 그러니 너도 각오 단단히 하고 와라. 오늘 컨디션 괜찮나? 난 오늘 컨디션이 최상이어서, 날 잡았다."     


이 얼마나 정직한가. 그러면 아마 어린 왕자의 대사처럼 만나기 전부터 흥분되어 있을 거다. 불필요한 점심이며, 술이며, 영화를 보느라고 시간과 체력을 낭비하지 않을 것이고, 모텔의 불빛과 연인의 얼굴을 번갈아 흘깃 거리며 눈치 보는 수고로움도 하지 않을 것이다.


하면 얼마나 하고 산다고

늘 하는 얘기지만 우리가 성적으로 왕성한 시기는 인생 전체에서 절반도 안 된다. 백세까지 산다고 하면 많이 잡아야 40년 정도라는 얘기다. 그나마 매일, 매년 하고 사는 것도 아니다. 20대 때는 취업준비다 시험 준비다 뭐다 해서 한눈-청춘이 섹스를 하는 게 한눈파는 건지 솔직히 의심스럽다-팔 새가 없다. 30대 접어들면 직장 생활하고 결혼하고 애 키운다는 핑계로 소홀해진다. 애 좀 크고 안정 좀 된 40대쯤 되면 서서히 청춘이 저무는 소리가 들린다. 50대가 되면 여자나 남자가 갱년기가 찾아오고 폐경도 찾아온다. 남자들은 전립선 약 광고가 눈에 들어오고 한두 군데씩 고장 난다.


솔직히 20대 때 바쁘지 않더라도 연인을 만나 섹스까지 하게 되는 경우는 결코 흔치 않다. 당신이나 나나 그저 그런 사람이니까. 얼굴이든, 몸이든 말이다. 게다가 무지하게 바쁘고 말이다. 그런 이유로 성적으로 자유로울 것 같은 미국 사람들조차 평생 열 명 안팎의 섹스 파트너를 만날 뿐이다. 미국국립건강통계센터의 2009년 조사에 의하면 여성의 평생 섹스 파트너는 4명이고 남성은 7명이다. 이 통계엔 당연히 매춘은 제외된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주기적인 관계를 맺어온 상대만 헤아려 보면, 그러니까 돈을 지불하거나 받지 않고 2회 이상의 섹스를 한 상대는 당연히 저 정도 숫자다. 평생 말이다. 그러니 좋은 섹스를 평생에 걸쳐 할 수 있는 기회는 그렇게 많지 않은 것이다. 서로 다른 사람하고는 더욱더.       


물론 요즘처럼 섹스리스가 만연한 시대엔 같이 사는 사람과도 일 년에 10회를 채우기도 어렵다. 그러니 결연한 의지를 품은 채 데이트 장소에 승부 속옷을 입고 와서 오늘이 그날임을 알아채 주기 바라면서 의지의 메타포를 던지며 해석을 바라는 쓸데없는 짓은 하지 말아라. 그 은유와 해석의 난무로 저녁 시간을 가득 메우는 것이 얼마나 세월을 낭비하는 일이고 안타까운 일인지  아직도 모르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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